입술 / 허수경 너의 입술이 나에게로 왔다. 너는 세기말이라고 했다. 나의 입술이 네 볼 언저리를 지나갔다. 나는 세기 초라고 했다
그때 우리의 입김이 우리를 흐렸다.
너의 입술이 내 눈썹을 지나가자 하얀 당나귀 한 마리가 설원을 걷고 있었다. 나의 입술이 너의 귀 언저리를 지나가자 검은 당나귀 한 마리가 석유 밭을 걷고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거리의 모든 쓰레기를 몰고 가는 바람
너의 입술이 내 가슴에서 멈추었다. 나의 입술이 네 심장에서 멈추었다. 너의 입술이 내 여성을 지나갔다. 나의 입술이 네 남성을 지나갔다.
그때 우리의 성은 얼어붙었다.
말하지 않았다. 입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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