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애송시

입술 - 허수경

풍월 사선암 2009. 1. 2. 22:13

 

입술  / 허수경             


너의 입술이 나에게로 왔다.

너는 세기말이라고 했다.

나의 입술이 네 볼 언저리를 지나갔다.

나는 세기 초라고 했다

 

그때 우리의 입김이 우리를 흐렸다.

 

너의 입술이 내 눈썹을 지나가자

하얀 당나귀 한 마리가 설원을 걷고 있었다.

나의 입술이 너의 귀 언저리를 지나가자

검은 당나귀 한 마리가 석유 밭을 걷고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거리의 모든 쓰레기를 몰고 가는 바람

 

너의 입술이 내 가슴에서 멈추었다.

나의 입술이 네 심장에서 멈추었다.

너의 입술이 내 여성을 지나갔다.

나의 입술이 네 남성을 지나갔다.

 

그때 우리의 성은 얼어붙었다.

 

말하지 않았다.

입술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