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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민병돈]日人도 존경하는 ‘조선의 영웅’

풍월 사선암 2008. 12. 16. 12:55

 

  

日人도 존경하는 ‘조선의 영웅’후손인 우리가 잊고 살아서야

충무공 이순신 410주기 아침에


“해로로 말할 것 같으면 조선군은 일본군보다 우세한 함선을 보유하고 있어서 해상을 완전히 장악하고 단 하루에 300척의 수송선이 격침당하는 일까지 있었다. 일본군의 식량은 갈수록 악화되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병사가 탈영하여 귀로에 오르지만 기아에 쫓기고, 중도에포위하고 습격하는 조선인들의 손에 죽거나, 해안에 이르러도 탈 배를 구하지 못해 몰살당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안전한 은신처란 있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배는 매우 견고하고 거대하며 윗부분을 덮은 배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배들은 접전 시에 불을 내뿜는 장치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또한 일종의 철포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포탄을 쏘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꼬리 부분과 똑같은 형태의, 끝이 뾰족하고 어른의 다리만큼 굵은 화살(대장군전·大將軍箭을 정확히 묘사함-필자 주)을 발사했다.”


두 편의 글은 임진왜란 당시 스페인 출신의 예수회 신부로 일본에 파견된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가 가톨릭 신자인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부대에서 1년여 동안 종군한 후 내놓은 보고서의 일부이다. 성직자이며 지식인으로서 전장의 실상을 그대로 묘사한 내용이어서 충무공 이순신의 함대가 막강했음을 말해 준다. 일본인이 쓴 역사책에도 이순신 장군을격찬하는 내용이 적지 않다.

 

 

“이순신의 죽음은 넬슨의 죽음과도 같았다. 그는 이기고 죽었으며 죽어서도 이겼다. 조선역(朝鮮役·임진란) 7년에 걸쳐 조선에 책사·변사·문사가 여럿 있었지만, 전쟁에 있어서는 참으로 이순신 한 사람으로써 자랑으로 삼지 않을 수 없다. 이순신이 살아 있는 동안 일본 수군장수들은 뜻을 펴지 못했다. 그는 실로 조선역에서 조선의 영웅일 뿐만 아니라 (동양) 삼국을 통틀어 한 영웅이었다.”(근세일본국민사 제9권)

 

러일전쟁 때 러시아 연합함대와 일본제국의 운명을 건일전을 치르려고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휘하의함대가 1905년 5월 27일 오전 6시 반 진해만을 떠나 동해로 항진하는동안 해군장교 중에는 “이 싸움에서 이기게 해 달라”고 이순신 장군에게 기도한 이도 있었다.  

 

러시아 함대를 크게 격파한 도고는 일본의 영웅이 되었다. 도고 사령관은 찬사를 보내는 이들이 자신을 넬슨이나 이순신 장군에 비유하자 “나를 넬슨에 비유할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순신에 비유하는 것은 과하다”며 겸양의 태도를 보이곤 했다.


6월 서점에서 ‘이순신을 암살하라’는 다소 충격적인 제목의 책을 발견하고 호기심에 집어 들었더니 40대의 젊은 일본인 전기작가 아라야마 도루(荒山徹)의 소설을 번역한 것이었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하여 1년간 한국 유학 생활을 했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이 가고 수백 년이 흘렀건만 그는 아직도 일본인, 특히 지식인과 직업군인의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이다. 저들이 존경하고 연구하는 우리의 이순신 장군을 정작 우리가 잊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순신 장군에 관하여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이제는 일본사람들에게 물어봐야 할 상황이다.


그는 충성을 바쳤던 임금(선조)에게도 버림받았고, 혼신의 노력으로 목숨 바쳐 지켜준 조국의 후예에게도 잊혀지고 있다. 오늘 16일은 양력과 음력이 일치하는 충무공 이순신의 410주기이다. 못난 후예로서 옷깃을 여미며 고개 숙여 용서를 빌 뿐이다.


민병돈 전 육사 교장

  

  

황제폐하 이곳 조선에서 전란이 끝나면 조선의 왕에게 명을 내리시어 조선국통제사 이순신을 요동으로 오라 하게 하소서..

 

신(臣)이 본 이순신은 그 지략이 매우 뛰어날 뿐 만 아니라 그 성품과 또한 장수로 지녀야할품덕을 고르 지닌바 만일 조선수군통제사 이순신을 황제폐하께서 귀히 여기신다면 우리 명(明)국의 화근인 저 오랑케(훗날청國)를 견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저 오랑케의 땅 모두를우리의 명(明)국으로 귀속시킬 수 있을 것이옵니다.

 

혹여 황제폐하께서 통제사 이순신의 장수됨을 걱정하신다면 신(臣)이 간청 하옵건데 통제사 이순신은 전란이 일어나고 수년간 수십 차례의 전투에서 단 한 번도패하지 않았음에도조선의 국왕은 통제사 이순신을 업신여기며 또한 조정 대신들 또한 이순신의 공적에 질투를하여 수없이 이간질과 모함을 하였으며, 급기야는통제사의 충의를 의심하여 결국에는 그를 조선수군 통제사 지위를 빼앗아 백의종군에 임하게 하였나이다.

 

허나 통제사 이순신은 그러한 모함과 멸시에도 굴하지않고 국왕에게 충의 보였으니 이 어찌 장수가 지녀야할 가장 큰 덕목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조선국왕은 원균에게 조선통제사 지휘권을 주었으나 그 원균이 자만심으로 인하여 수백 척에 달한 함대를 전멸케하였고 단 10여척만이 남자 당황한 조선국왕은 이순신을 다시 불러 조선수군통제사에게 봉했으나, 이순신은단 한 번의 불평 없이 충의를 보여 10여척의 함대로 수백 척의 왜선을 통쾌하게도 격파하였나이다.

 

허나 조선의 국왕과 조정대신들은 아직도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또다시 통제사 이순신을 업신여기고 있나이다. 만일 전란이 끝이 난다면 통제사 이순신의 그 목숨은 바로 풍전등화가될 것이 뻔하며, 조정대신들과 국왕은 반드시 통제사 이순신을 해하려고 할 것입니다.

 

황제폐하 바라옵건데 통제사 이순신의 목숨을 구명해주소서. 통제사 이순신을 황제폐하의신하로 두소서. 황제폐하께서 통제사 이순신에게 덕을 베푸신다면 통제사 이순신 분명히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황제 폐하게 충(忠)을 다할 것이옵니다.

부디 통제사 이순신을 거두시어 저 북쪽의 오랑케(훗날의 청국)를 견제케 하소서.

 

- 명 황제 신종(만력제)이 조선에 파견된 진린 도독으로 부터 받은 서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