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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미스터리 5가지

풍월 사선암 2008. 10. 26. 13:33

<한국 경제 미스터리 5가지>

연합뉴스 | 기사입력 2008.10.26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최현석 기자 = 원화가치가 폭락하고 증시가 세자릿수로 추락하는 등 우리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세계적인 금융위기 여파라고 하지만 최근 한국 경제를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은 국내 총생산(GDP) 규모로 세계 13위, 외환보유액 6위의 `경제대국'이고 `펀더멘털(기초체력)이 튼튼하다'고 하는데도 신흥국보다 대외신인도 면에서 더 낮게 평가받고 달러화 대비 원화통화 가치 하락률도 더욱 가파르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렸는데도 시장금리는 오르고, 시중에 풀린 돈은 많은데 은행과 기업들은 돈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시중 통화량 많은데 "돈 없다" 아우성

한은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광의 통화(M2)는 작년 같은 달보다 14.8% 늘었다. 이는 전달의 15.1%보다는 둔화한 수치지만, 여전히 높은 증가율이다. 불과 두 달 전까지 만해도 한은은 추가 물가 상승을 우려해 금리를 올려 유동성을 흡수해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국내 은행들은 "유동성이 부족하다"며 한은에 손을 벌리고 있다. 기업들도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이러한 `풍요 속 빈곤' 현상은 돈이 돌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예금은행의 회전율을 보면 7월 4.7에서 8월 4.0으로 떨어졌고 요구불예금 회전율도 4.7에서 4.0으로 낮아졌다.


회전율은 예금 지급액을 예금 평잔액으로 나눈 것으로 이 수치가 높아졌다는 것은 자금수요가 늘어 예금 인출이 빈번했음을 뜻하며 낮아진 것은 반대를 의미한다.


통화유통속도 역시 최근 들어 크게 낮아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금융기관들끼리 서로 믿지 못해 돈을 빌려주지 않는 데다 채권 발행이 어려워진데 따른 것이다. 또 은행들이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면서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줄이면서 영세 업체를 중심으로 자금난을 겪고 있다.


◇외환보유액 든든한데 유독 원화만 약세

달러화 대비 주요국 통화 절상률을 보면 작년 말 대비 한국의 원화는 34.2%나 하락해 유로(-11.5%), 영국(-18.3%), 호주(-23.5%), 뉴질랜드(-22.4%), 태국(-13.2%), 대만(-2.6%), 싱가포르(-4.0%) 통화보다 하락 폭이 컸다. 이는 한국에서 빠져나가는 외화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많아 달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최근 4개월간 국내 증시에서 빠져나간 외국인 주식투자 자금은 150억 달러로 아시아 주요국 중 가장 많았다. 대만 증시에서는 총 113억 8천만 달러, 인도 증시에서는 53억 1천만 달러가 각각 유출됐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무역수지가 146억7천500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한 점도 달러부족의 한 이유다.


같은 기간 수출기업의 선물환 순매도 규모가 661억 달러에 달하는 등 나중에 받을 외화를 미리 당겨 판 것까지 감안하면 실제 달러 부족 규모는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2천400억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액으로도 환율 급등을 막지 못하는 걸일까.

이달 들어 24일까지 현물환 거래량은 745억 달러에 불과한 수준이다. 한은이 마음만 먹고 대규모 달러화 매도 개입에 나선다면 환율을 급락시킬 수도 있다.


한은이 이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자칫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시장의 불안감이 남아있는 상황에서는 환율을 끌어내리더라도 이내 반등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또 당국의 방어선이 뚫렸다는 인식이 형성되면 시장이 패닉(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지면서 환율 폭등과 같은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도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신용도, 타이보다 나쁘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의 대외신인도를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을 보면 한국의 신용은 타이나 말레이시아보다 낮다. 5년 만기 외평채 CDS 프리미엄은 지난 22일 4.6%에서 23일 5.57%로 1%포인트 가까이 치솟았다. 반면 말레이시아의 CDS프리미엄은 23일 기준 4.22%이며 타이는 4.14%다.


CDS란 채권이 부도가 났을 때 손실을 보상해 주는 계약인데, CDS프리미엄이 높을수록 그만큼 부도 위험이 크다는 뜻이다. 한국의 신용 위험이 커진 것은 대외 의존도가 높고 경제 규모가 다른 신흥국보다 크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그만큼 `외풍'에 잘 흔들리고 타격도 많이 받을 거라는 우려가 반영됐다는 것이다.


특히 파키스탄의 구제금융 신청과 같은 `흉흉한' 소식들이 잇따라 들리면서 외환위기 경험이 있는 아시아 국가들, 특히 익스포져(위험 노출)가 큰 한국에 대해 불안하게 보는 시각이 늘었다는 설명이다. 한국의 올해 8월까지 경상수지 적자가 125억9천만 달러에 달하고 순채무국 전락에 대한 우려도 반영됐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타이는 경상수지가 올해 흑자이고, 외채도 한국보다 적다"며 "한국의 수출, 수입 비중이 높다 보니까 국제적으로 신용이 경색되면 타격을 많이 입을 것으로 보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하루 만에 CDS 프리미엄이 1%포인트 가까이 뛰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한은 관계자는 "시장에서는 말레이시아와 타이 채권에 대한 CDS 거래가 사실상 중단된 상태이고 그나마 한국물은 거래가 간간이 이뤄지고 있다"며 "실제 거래는 없는 상황에서 호가만 치솟고 있어 CDS 프리미엄이 사실상 국가 신용도를 온전히 반영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청개구리' CD금리 왜?

통상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리면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도 내려가고 CD와 연동한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내려가게 돼 있다. `바늘과 실' 관계였던 기준금리와 CD금리는 요즘에 따로 움직이고 있다.


한은이 이달 9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렸음에도 CD금리는 24일 현재 연 6.18%로 지난 9일부터 0.22%포인트나 올랐다. 금리정책과 거꾸로 가는 것이다.


은행채 역시 마찬가지다. 남은 만기가 3개월인 은행채 금리는 연 6.25%로 리먼 브러더스 사태 직후인 9월 16일부터 이달 23일까지 0.62%포인트 급등했다.


CD금리와 은행채 금리가 치솟는 이유는 매수세가 실종됐기 때문이다. 리먼 사태 이후 은행에 대한 신용위험이 커진 데다 증권사 등 기관투자가들의 자금사정이 악화하면서 매수는 커녕 보유하고 있는 은행채마저 내다 팔고 있는 상황이다. 사려는 세력이 없으니 채권 값은 더욱 내려가고 금리는 높아진다.


은행채 금리가 오르면 같은 신용도와 만기를 가진 CD 금리도 덩달아 상승한다. 즉 은행채 금리 상승→CD금리 상승→주택담보대출 금리 상승→ 가계의 이자부담 가중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정부가 CD금리를 낮추려고 한은에 은행채를 사들이라고 압박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 증시 폭락은 왜?

세계적인 신용경색의 원인은 미국인데도 국내 주가가 융단폭격을 맞고 있는 이유는 외국인들이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은 올해 들어 36조7천억원 가량 주식을 순매도했고 지난달 30일 이후로는 이달 14일 하루를 제외한 17거래일 연속 매도우위를 나타냈다.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도 있지만 한국에 대한 투자 위험이 크다고 느낀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키코(KIKO) 등 파생상품 투자로 중소수출기업과 은행이 동반 부실 우려도 제기되는 점도 원화자산 매각을 재촉하고 있다. 하나금융지주[086790]는 지난달 19일 태산엘시디[036210] 와의 파생거래 관련 평가손실이 2천861억원이며 이 중 피봇 관련 평가손실은 1천388억원이라고 공시했다. 하나금융의 2분기 순이익 3천96억원인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큰 규모다.


복잡한 파생금융상품의 속성상 부실 규모가 얼마일지 알 수 없는 점이 시장 심리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작년 말 국내 파생금융상품 거래 규모는 6경6천301조원으로 전년 대비 47.9% 급증하면서 재정의 330배에 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