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애송시

열애 - 신달자

풍월 사선암 2008. 10. 10. 12:01

 

 

열애 - 신달자


손을 베었다

붉은 피가 오래 참았다는 듯

세상의 푸른 동맥속으로 뚝뚝 흘러내렸다

잘 되었다

며칠 그 상처와 놀겠다

일회용 벤드를 묶다 다시 풀고 상처를 혀로 쓰다듬고

딱지를 떼어 다시 덧나게 하고

군것질하듯 야금야금 상처를 화나게 하겠다

그래 그렇게 사랑하면 열흘은 거뜬히 지나가겠다

피흘리는 사랑도 며칠은 잘 나가겠다

내 몸에 그런 흉터많아

상처가지고 노는 일로 늙어버려

고질병 류마티스 손가락 통증도 심해

오늘밤 그 통증과 엎치락 뒤치락 뒹굴겠다

연인몫을 하겠다

입술 꼭꼭 물어뜯어

내 사랑의 입 툭 터지고 허물어져

누가봐도 나 열애에 빠졌다고 말하겠다

작살나겠다

                                          <2007년>


 

상처처럼 온 당신… 그리움으로 욱신거린다
 
모과 장수가 등장했다. 서늘한 저녁 거리에서 그 열매를 만나면 사야만 할 것 같지 않은가? 수더분한 모양과 고즈넉한 빛깔과 향기로 우리의 마음을 빼앗는다. 두어 개를 사가지고 오다가 그만 하나를 깨고 말았다. 허나 책상머리에서 그 상처난 모과는 마치 어떤 속삭임과도 같은 짙은 향기로 진동한다. 모과에게 상처는 아픔이겠지만 동시에 향기이기도 하니 시인 신달자(65)의 시 〈열애〉와 닮았다. 상처의 향기를 위해 영원히 상처를 덧나게 하겠다는 사랑에 대한 인식은 요즘 세태의 단발성 '일회용 밴드'적 사랑과는 근원이 다른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상처 받을 때가 있다. 몸에 난 상처는 제아무리 심해도 치유가 되지만 마음에 난 그것은 잘 아물지 않을 때가 많다. 사랑의 감정은 실은 일종의 상처처럼 온다. 그 상처에는 여느 감정의 상처와는 다르다. 증오나 절망 대신 그리움이 감미롭게 욱신거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어떤 이는 사랑을 '봉변'이라고 재치 있게 말하기도 한다.

<열애>는 상식적 차원의 사랑을 단호히 거부하고 끝끝내 '감염'된 상처를 안고 가겠다는 '신달자 식' 사랑을 엿보게 한다. 시인은 언젠가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다. "고통과 상처와의 연애가 내 삶의 긴장을 돋우는 일일 것입니다. 제게 사랑이라는 것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전 잠수형이에요. 요령 한 번 피우지 못하고 계산은 아예 할 줄 모르고 바닥까지 푹 빠져 버리는 수렁이 제 사랑법입니다. 허망의 극치를 달리는. 제 경험으로는 나같이 푹 빠져 주는 사랑은 잘 없었어요. 있었다면 제 남편이었는데 그 덕분에 생을 모조리 탕진하는 거렁뱅이로 고통의 수심 깊이에서 살아 왔어요."

사랑으로 생을 탕진하고 거렁뱅이가 된다는 것은 얼핏 낭만적이다. 실현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 삶일 땐 성스럽기까지 하다. 시인의 내면을 '사랑의 거렁뱅이'로 만든, 먼저 이승을 하직한 남편을 시인은 이제 덤덤히 노래한다. '여보! 비가 와요/ 무심히 빗줄기를 보며 던지던/ 가벼운 말들이 그립다/ 오늘은 하늘이 너무 고와요/ 혼잣말 같은 혼잣말이 아닌/(…)'(〈여보! 비가 와요〉) 한 세계가 되기까지 시인은 상처를 긁고 뜯어서 그것을 봉합하지 않고 아프게, 살아 있게 만들었다. 그 아픔이 더욱 향기롭게 다가오는 것은 그 사랑에 '아련함'만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질게/ 욕이나 할까부다// 네까짓 거 네까짓 거/ 얕보며 빈정대어 볼까부다// 미치겠는 그리움에/ 독을 바르고// 칼날같은 악담이나/ 퍼부어 볼까부다'(〈그리울 때는〉)라는 지독한 사랑의 '현장감'은 차라리 숙연하다. 정말 그리워 미칠 지경이 되면 지독한 악담이라도 하고 싶다는 것을 아는 자, 사랑을 아는 자다.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