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양식/시사,칼럼

2010년'고교선택제' 시행되면…옛 명문고들 부활이냐 특목고 강세 지속이냐

풍월 사선암 2008. 9. 21. 15:42

2010학년도 '고교선택제' 시행되면…


옛 명문고들 부활이냐 특목고 강세 지속이냐

경기·서울·경복고 등 '재도약' 여부 관심

경기,서울,경복고 등 '재도약' 여부 관심

과학·외국어고 열풍 상대적 감소 가능성

"변해야 산다" 발벗고 뛰는 일반고도 주목


서울시교육청은 서울시내 11개 학교군을 31개 학교군으로 확대하는 '서울특별시 고등학교 학교군 설정안'을 행정 예고했다. 2008학년도 서울대에 입학생 중 특목고생 비중은 2005학년도 15%, 2006학년도 17%, 2007학년도 19%에 이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2010학년도 서울에서 고교 선택제가 실시되면 어떤 고교들이 새 명문고(名門高)가 될까? 70년대의 세칭 경기·서울·경복고 같은 옛 명문이 부활할까, 지금 같은 과고(科高)·외고(外高) 같은 특수목적고와 자립형사립고의 전성시대가 계속될까, 그것도 아니면 학교 교육에 열성인 공립고들이 주목받을까.


◆1975년도 11개 고교가 서울대 합격생 77% 차지


고교의 판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1975학년도 서울대 입학생의 출신 고교를 보면 지금과는 비교하기 힘들 만큼 쏠림현상이 있었다. 이때 서울대 입학자 2800여명 가운데 510명이 공립 경기고 출신이었다. 6분의 1을 넘는다.


100명을 넘는 학교로는 서울고(435명) 경복고(225명) 부산고(166명) 경남고(157명) 경기여고(129명) 광주일고(125명) 중앙고(124명) 용산고(120명) 경북고(103명) 경동고(100명)였다. 이 11개 학교의 출신 학생들이 서울대 입학생의 77%를 차지했다.


당시 '한국은 학벌 사회'라고 말할 때의 학교는 대학이 아닌 고교였던 것이다. 특히 경기고에 대해서는 "경기 나와 서울대를 못 들어가면 고교 때 엄청 논 사람", "경기 나오지 않은 사람이 서울대 총장하기는 하늘의 별따기", "경기고 출신으로만 내려가는 입시 족보 때문에 다른 고 출신 법대생이 4학년 내에 사시 합격하기는 불가능하다"는 말까지 있었다.


◆현재는 특목고 강세


올해 서울대 합격자를 보면, 과학고와 외국어고 같은 특목고 세상이다. 1975년에 훨씬 못 미치는 23%지만 일반고보다 압도적이다. 특히 서울은 지난 정권에서 찍어 누르는 바람에 외국어고는 달랑 6개밖에 없다. 사시 합격자 수 역시 대원외고가 수년째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과거의 명문고 중 비수도권 지역은 서울대 합격자만을 놓고 보면 명문고라는 이름을 붙이기 힘들 정도다. 1975학년도 100명 넘게 서울대 합격자를 배출한 4개 지방고 가운데 정원 내 최초 합격자 기준으로 경북고는 올해 서울대에 5명이 합격했고 부산·경남고는 단 1명씩, 광주일고는 없었다.


반면 2008학년도에 서울대에 그나마 많은 합격자를 낸 서울의 학교들은 거의 예외 없이 강남·서초·송파구나 목동에 있는 학교들이다. 이 가운데 서울·경기·보성·휘문·양정고 같은 옛 명문고가 10명 넘게 서울대 합격자를 냈지만 이 역시 해당 지역에 있는 유명 학원의 영향이라는 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이 학교들은 지금 있는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 반면 학원가가 발달해 있지 않은 지역에 그대로 있는 경복(6명)·경동(4명)·중앙고(3명)는 평범한 수준이다. 1970년대와 같은 쏠림현상은 그나마 완화하는 대신 학원 의존도가 훨씬 높아지는 단점이 나타난 것이다.


◆명문고의 재탄생 기대


그러나 고교 선택제 시행 이후 첫 졸업생이 나오는 2013년 초에는 지금까지와는 질이 다른 명문고가 탄생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 자립형사립고등학교(자사고)다. 비수도권 지역에 6곳이 있고 서울 학생들이 많이 가지도 않지만, 자사고는 상당한 합격생을 배출하고 있다. 전주의 상산고는 32명, 울산의 현대청운고는 10명, 부산의 해운대고 10명, 평창의 민족사관고 11명, 포항제철고 11명 등 6곳 중 5곳이 10명 넘는 합격자를 냈다.


이 학교들의 특징은 학교가 입시공부를 시킨다는 점이다. 일부 학교는 기숙사를 운영하면서 생활지도까지 한다. 학원에 갈 시간도 별로 안 준다. 과거 명문고 중에서 이 같은 길을 갈 수 있는 여력이 있는 학교는 부활을 꿈꿀 수도 있다.


변화의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학부모들이 우선 난리다. 고교 선택제의 원칙은 정보가 공개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요구에 이명박 정부는 학교 정보 공시제도를 앞으로 강화할 예정이다. 일반 고교들도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곳이 생겼고, 동문회로부터 지원을 받기 위한 노력도 가시화되고 있다.


이렇게 되자 구청까지 나서고 있다. 구청은 '교육경비 보조금'으로 관내 학교를 지원할 수 있는데 이미 '교육 지원 강화'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고 구청장에 당선돼 있는 구청장들이 많다. 한 예로 중랑구는 명문대 진학 성적이 좋은 4곳을 선정해 총 1억10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반면 성적이 그리 좋지 못한 특목고는 쇠락의 길을 갈 수도 있다. 특목고는 특정한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하지만 일반고는 그런 제약이 별로 없다. 일반고에서 어느 정도 성적만 낸다면 굳이 등록금이 비싼 외고를 들어 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조선일보 /정성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