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애송시

박두진 '해'

풍월 사선암 2008. 5. 28. 12:53

▲ 일러스트= 잠산

 

'해' 하면 떠오르는 시, 그것도 '새해' 하면 떠오르는 시, 현대시에서 드물게 희망으로 충만한 시, 중학교 1학년 교과서에서 읽게 되는 시가 바로 박두진의 '해'이다. 1946년에 발표된 이 '해'가, 해방을 염원하던 해든 해방의 기쁨을 담은 해든, 솟지 않는 해를 향한 촉구든 솟고 있는 해를 향한 경이든 무슨 상관이랴. 그 해가 여전히, 지금-여기에서, 이글이글 솟구치고 훨훨훨 분방하고 워어이 워어이 불러모으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막 솟는 해처럼, 말의 되풀이는 힘차고 뜻의 개진은 꿋꿋하다. 언어가 어떻게 되풀이되고, 그 되풀이가 어떻게 노래가 되고 주술에 가까워지는가를 보여주는 시다.


'씻고' '살라먹는', 그 세례와 정화에 의해 날마다 생생(生生)하게 새로 뜨는 해. 그 해 아래 시를 살(生)고, 사는(生) 시를 꿈꿔 보는 새벽이다. 삶 속에서 이글이글 솟아나는 예의 그 생생지락(生生之樂)과, 시 속에서 훨훨훨 깃을 치는 시시지락(詩詩之樂)을 꿈꿔 보는 아침이다. 미움과 갈등의 시간을 버리고 강자와 약자가 워어이 워어이 더불어 상생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꿔 보는 새해다.


우리는 이제 달밤에 벌어진 상처, 눈물 같은 골짜기에서 일어난 죄악을 (불)살라 태우고 '앳된 얼굴'로 다시 태어날 것이니, 새해야 부디 '늬'도 그렇게 솟아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세상의 모든 희망아, '늬'도 꼭 그렇게 고운 해처럼 오라. 삼백예순 날의 삶아, '앳되고 고운 날'들아, '늬'들도 꼭 그렇게만 좋아라. 백년의 백년 내내 낙희낙희(樂喜樂喜)하고 럭키럭키(lucky lucky)하게!

-정끝별·시인-

'행복의 정원 > 애송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성복 '남해 금산’'  (0) 2008.05.28
김수영 ‘풀’  (0) 2008.05.28
당신 나 만나서 행복했나요 -양애희  (0) 2008.05.27
연 인 - 이기호  (0) 2008.05.24
바람 부는 날의 풀/류시화  (0) 2008.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