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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라는 노래를 들을 때 떠오르는 가사는?

풍월 사선암 2008. 3. 8. 18:32

 

‘어머니’라는 노래를 들을 때 떠오르는 가사는?

 

[JES 송원섭] 40대 이상이라면 현인의 <비 내리는 고모령>에 나오는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에’를. 그 아래의 세대는 god의 <어머님께>에 나오는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어쩌면 신세대는 테이의 ‘곁에 있어서 잘 몰랐던 사람’이나 박효신의 ‘내가 걱정이 돼 잠 못 이루는 당신’이라는 가사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한국 가요의 빼놓을 수 없는 소재였던 ‘어머니’가 다시 가요계로 돌아왔다. 최근 나온 테이의 <어머니>와 박효신의 <1991년 찬바람이 불던 그 밤>은 모두 신세대풍의 사모곡. F&F의 <사랑하는 어머님께>도 경우는 좀 다르지만 소재가 어머님이란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면 이 노랫말 속의 어머니들은 그 전 세대들이 불렀던 어머니와는 어떻게 다를까.

▨60년대. 애달픈 어머니

해방 후 60년대까지 한국 가요의 노랫말 속에 담겼던 어머니들은 모두 자식의 성공을 위해 머나먼 고향에서 갖은 고생으로 뒷바라지를 하고 있거나 그러다 돌아가신 애달픈 사연의 주인공들이었다.


‘불러봐도 울어봐도/ 못 오실 어머님을/ 원통해 불러보고/ 땅을 치며 통곡한들/ 다시 못 올 어머니여/ 불초한 이 자식은/ 생전에 지은 죄를/ 엎드려 빕니다’라는 <불효자는 웁니다>가 이 정서를 정확하게 대변해준다.


김희갑이 처음 부른 이 노래는 나훈아·하춘화 등도 이어 불렀고. 80년대 이후에는 악극으로 구성돼 무대에 올려지기도 했다. 나훈아의 <어머님의 영광>. 남진의 <어머님>. 남인수의 <어머님 안심하소서>에서 태진아의 <사모곡>이나 현숙의 <나의 어머니>까지 구성진 트로트 가락 속에서 이 정서는 면면히 숨쉬고 있다.


▨70~80년대. 새로운 어머니의 등장


1970년 맹인가수 이용복의 데뷔곡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는 이탈리아 원곡 <1943년 4월3일생>을 번안한 잔잔한 멜로디와 함께 ‘못다한 효도에 대한 한맺힌 노래’에서 탈피했다는 점으로 기록할 만하다.


‘바람이 휘몰던 어느 날 밤 그 어느 날 밤에/ 떨어진 꽃잎처럼 나는 태어났는데/ 내 눈에 보이던 아름다운 세상 잊을 수가 없어/ 가엾은 어머니 왜 날 낳으셨나요’라는 가사의 이 노래는 72년에는 동명의 영화 주제곡으로 사용됐고 최근엔 박해일·염정아 주연 영화 <소년 천국에 가다>에서 박해일의 목소리로 다시 등장했다. 장애인으로 성장하느라 유난히 어머니와 사연이 많았을 이용복은 71년 역시 이탈리아 가수 니콜레타의 원곡 <오 마미>를 번안해 소개한 적도 있다.


가사 면에서 이전의 노래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노래가 가끔 동요로 오해받는 김창완의 <어머니와 고등어>(1983)다. 직설법에서 한 단계 올라서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냉장고를 열어 보니/ 한모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 나는 내일 아침에/ 고등어 구이를 먹을 수 있네’라는 노랫말을 통해 모자간의 정을 담아냈다. 그 이상 꾸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1985년. 그룹 들국화의 데뷔 앨범 수록곡 <사랑일 뿐이야> 역시 ‘어머닌 아마도/ 제게 하나뿐인 화가처럼/ 온세상 그대 손으로/ 아름답게 물들여요’라는 식으로 승화된 가사가 눈길을 끈다. 존경과 사랑의 대상이라는 점은 여전하지만 눈물도 없고 사무치는 그리움도 없다. 록의 시대와 함께 노랫말이 한층 세련되어 갔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 시기는 젊은이들이 팝송을 벗어나 가요를 다시 듣기 시작한 시점과도 일치한다.


▨90년대. 다시 직설법으로


1993년. 이승환과 김종서는 나란히 <내 어머니>와 <어머니의 노래>를 발표한다. 물론 당시 이승환은 <내게>. 김종서는 <겨울비>를 히트시키던 시점이라 이 노래들이 크게 주목받진 못했지만. 두 노래엔 묘한 공통점이 있다.


<내 어머니>는 ‘어머니 난 어쩌죠 너무 힘이 들어요/ 당신께서 가신 후 내 주윈 변해만 갔죠/…내 어머니 당신께 죄송스런 맘뿐이지만/ 아직도 난 당신께 투정만 부리고 있는군요’. <어머니의 노래>는 ‘Mother 흐린 두 눈에 내일의 꿈을 꾸나요?/ 마냥 녹슬어만 가는 당신의 어린 아이들 우렁찬 캐터필러 광란의 노래/ 다 포근히 감싸며 안아주셨죠’라는 식으로 진행된다.


<어머니의 노래>가 가리키는 ‘어머니’는 곧 ‘지구(earth)’라는 설명이 있긴 하지만 80년대에 비해 노랫말이 다시 직설법으로 퇴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두 사람 모두 록 그룹의 리드 보컬을 포기하고 보다 대중적인 음악을 지향하는 솔로 가수가 됐다는 사실과 묘하게 맞아떨어진다.


▨21세기. 연인이나 친구같은 어머니


<어머니와 고등어> 이후 어머니를 소재로 한 최고의 히트곡은 지난 1999년 god가 발표한 <어머님께>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 ‘어릴 때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어’로 시작하는 <어머님께>는 짜장면 한 그릇을 시켜 놓고도 아들을 위해 끝내 젓가락을 들지 않았던 어머니의 사랑을 절절하게 그려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힙합 곡인데도 중·장년층을 포함한 온 세대의 공감을 자아내며 히트한 데에는 ‘난 당신을 사랑했어요’라고 말하는 담담한 대화체의 정감 넘치는 가사가 절대적인 공헌을 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2007년. 테이의 <어머니>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한 사람/ 곁에 있어서 잘 몰랐던 사람/ 늘 고마웠어요 그 짙은 사랑을/ 표현조차 하지 못했던 바보 같은 나였어요’. 박효신의 <1991년 어느 추운 날에>는 ‘내 키가 더 자라서/ 항상 당신을 지켜준다고 했는데/ 내가 걱정이 돼/ 잠 못 이루는 당신에게 부탁해요’라고 노래한다. 이미 어머니는 존경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연인 못잖게 친근하고 사랑스런 존재다. 글머리에 나오는 ‘옷고름에 눈물 맺힌 노모들’과 이 어머니들의 차이를 이들 노랫말보다 더 잘 설명할 방법이 있을까


●이색적인 어머니들을 노래한 가요들


어쨌든 세월이 흘러도 여전한 것은 ‘모자간의 사랑’이지만 가끔은 예외도 있다. ‘어머님 용서하세요/ 그녀에겐 저밖에 없는데/ 그녈 버릴 수가 없어요’라며 어머니의 뜻에 반대해 혼자 멀리 떠나겠다는 뜻을 담은 F&F의 <사랑하는 어머님께>가 대표적인 경우다. 그룹 멤버 최성빈이 90년대 발표했던 원곡은 제목 때문에 어버이날이면 라디오 프로그램의 단골 신청곡이지만 가사 내용 때문에 정작 5월 8일 하루 동안은 방송된 적이 없다는 웃지 못할 전설의 노래이기도 하다.


또 지난 1996년 윤종신이 부른 <너의 어머니>에 나오는 어머니 역시 ‘어머니께선 내 생각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커다란 행복을 바라셨지/ 만족하신 듯 했어 고개를 떨군 나를 보시며/ 스무해가 훨씬 넘도록 곱게 키워 온 너에 대한 기대가 크다며/ 내게 설명해 주셨지 나보다 더 널 사랑하시는 것 같아’라는 식으로. ‘나’와 ‘너’의 사이에 가로놓인 장벽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진미령은 지난 2004년 발표한 <내가 난생 처음 여자가 되던 날>에서 ‘내일이면 나는 쉰이라네/ 딸아이가 벌써 시집을 간다/ 우리엄마 살아계셨더라면 얼마나 기뻐할까/ 그때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데/ 그옛날 엄마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아’라고 노래했다. 여가수가 어머니를 노래한 것도 드문 일이지만. 딸의 성장을 통해 어머니와 자신의 관계를 돌이켜본 것도 이제껏 한국 가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시각. 이 한편의 노랫말을 통해 한국 대중음악의 성숙을 말한다 해도 그리 지나친 말은 아닐 듯 싶다.


송원섭 기자 [five@jes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