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병 전쟁 40년, 비타민C와 글루타치온으로 희망 찾은 재미의사 투병기(2)
“서양의학은 ‘반쪽 의학’, ‘해줄 게 없다’는 의사는 의사 아니다”
하병근 의사, 의학박사(신경과학) byha84@hanmail.net
비타민C와 NAC의 기적
자연의학에 관심이 많은 과학자 마크 노블 박사를 만난 건 2001년 즈음이었다. 그와의 만남은 커다란 행운이었다. 그는 로체스터 대학 교수로 줄기세포와 글루타치온 생성물질 NAC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와의 첫 만남은 내가 일하던 실험실에서 이뤄졌다. 당시 우리 실험실은 척수손상 연구로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척수손상을 입은 쥐의 척수에 줄기세포를 이식해 신경조직을 재건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줄기세포에 대해 연구하던 마크 노블은 다른 과학자들이 신물질 연구에 혼을 쏟는 것과 달리, 이미 잘 알려진 물질인 NAC에 심취해 있었다. NAC는 타이레놀 과다복용으로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들에게 해독제로 쓰여 더 잘 알려져 있었지만, 그는 줄기세포의 분화와 암세포 연구에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나와 마주앉은 노블은 과학 얘기도 했지만 거의 모든 시간을 비타민C와 NAC 이야기로 채웠다. 내가 개인적 체험을 토대로 비타민C에 몰입하고 있는 것처럼 노블 역시 자신의 체험을 발판으로 NAC의 효과를 재조명하고 있었다. 노블은 자신도 비타민C를 연구에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거미에 물린 경험을 들려주며 “NAC에 강력한 항산화 작용과 항염증 작용이 있다”고 했다.
“거미에 물린 적이 있어요. 심하게 부풀어 오르더군요. NAC를 투여했더니 가라앉기 시작하더군요. 이것이 NAC 효과인지 확인하기 위해 NAC를 투여하지 않자 다시 부풀어 올랐어요.”
“나도 객담을 묽게 하고 숨쉬기 편해지도록 하기 위해 NAC를 투여해봤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 무렵 나는 ‘객담을 묽게 하고 폐 기능을 돕는다’는 문헌자료를 토대로 내 몸에 NAC를 투여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헌이 잘못됐는지 별다른 효험이 없었다. 내 말을 듣자 노블은 “NAC를 어디에서 샀느냐”고 물었다. 건강식품점에서 샀다고 했더니 그는 대뜸 “그런 건 쓰레기(garbage)”라고 했다. 그는 “미국에서 제대로 된 NAC를 구할 수 있는 곳은 한 군데뿐이다. 그래서 나는 독일 등 유럽에 가면 오랫동안 사용할 만큼의 충분한 양의 NAC를 사온다”라며 생산회사 이름과 상품명을 가르쳐줬다. 그리고 그 독일 제제를 수입해 파는 캐나다 회사의 이름도 가르쳐줬다.
NAC는 그 자체로도 강력한 항산화물질이지만 인체에 꼭 필요한 항산화제 글루타치온을 만들어내는 물질이기도 하다. 타이레놀을 과다 복용하면 간독성이 나타나는 것도 간에서 글루타치온이 고갈되기 때문이다. 글루타치온은 유해한 타이레놀 대사 물질을 무해한 성분으로 바꿔 배출하는데, 타이레놀의 양이 글루타치온의 처리능력을 벗어날 만큼 많아지면 간세포가 부서지며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 이때 NAC를 투여하면 글루타치온을 재생시키고 새로운 글루타치온을 만들어내 간의 제독 작용을 원상복구시킨다.
왜 내게 이런 일이…
나는 노블이 알려준 곳에서 제제를 구해 투여하며 그 효과를 다시 관찰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그 고약한 객담이 묽어진 것이다. 숱한 처방약과 고가의 신약제제가 해내지 못한 일을 NAC가 해낸 것이다.
논문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결국 NAC가 나타내는 많은 작용은 글루타치온의 작용과 연결되며, 글루타치온은 세포 내에서 비타민C와 더불어 강력한 항산화 작용을 하고 세포의 건강을 책임지는 첨병 노릇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미 많은 의료인이 비타민C와 NAC를 비롯한 여러 항산화제가 난치의 만성 소모성 질환 환자들을 도울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사실도 알게 됐다. 그런데 정작 의사인 내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글을 쓰고 책을 펴내기 시작했다. 국민을 계몽하고 의사들을 교육하기 위해서였다. ‘신비로운 비타민C’ ‘우리집 홈닥터 비타민C’ ‘숨겨진 비타민C 치료법’ 등이 그것이다. 2003년, 드디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격무에 시달렸지만 고국에서 강연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난 것이다.
그런데 내가 꿈꾸던 의학을 내 나라에 전한다는 흥분에 나는 몸을 혹사하고 말았다. 의대 재학 시절 한달음에 산을 오르며 피를 쏟았던 그 순간처럼 나는 내가 30대 후반의 난치병 환자라는 사실을 잊고 뛰었다. 시차 적응도 안 된 상황에 서울대병원으로 달려가 선후배 및 동료 의료인들에게 강연했다. 다시 일반인을 상대로 강연을 한 후 나는 몸에 이상이 왔다는 느낌을 받았고 서둘러 미국으로 돌아왔다.
미국에 와서 오하이오 주립대 병원에 입원했다. 그런데 그만 이곳에서 의료사고가 났다. 의사들이 기관지 내시경 검사를 하다 폐 속의 동맥을 터뜨려버린 것이다. 그들은 터뜨린 동맥을 잡아내는 데 5시간을 허비했고, 나는 이틀간 의식을 잃은 채 중환자실에서 잠들어 있었다. 눈을 떴을 때 내 몸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변해 있었다. 출혈로 이곳저곳에 커다란 피멍이 생겼고 얼굴과 몸은 심하게 부어올랐다. 폐 속 터진 동맥을 잡기 위해 대퇴부 안쪽을 절개하고 심장으로 향하는 카테타를 넣었는데, 첫 시도가 실패했는지 한쪽 다리에는 커다란 피멍 자국이 남았고 다른 쪽 다리에는 카테타가 그대로 달려 있었다.
사람은 양쪽 폐 중 하나만 온전해도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다. 나는 긴 세월의 투병으로 폐 하나에 해당하는 만큼의 기능을 잃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더 주저앉으려는 폐 기능을 내가 배운 의학으로 이제 막 잡아가고 있는데 그만 이런 사고가 난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후 자리에서 일어나 걸으려 하자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숨이 차올라 세수조차 할 수 없었다. 내게는 산소통이 주어졌고 그 산소통을 메지 않고는 제대로 걸을 수도 없었다. 가혹한 운명의 시련은 나를 또다시 절망의 늪으로 몰아갔다.
불면의 밤이 이어졌다. 숨을 쉬는 게 너무나 고통스러워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몹쓸 생각도 했다. 수면제에 절었고 수면제가 가져다주는 유쾌하지 못한 느낌 속에서 절망의 세월을 보냈다. 왜 내게, 왜 내게…. 하려던 일을 진정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 순간 나는 그렇게 무너져버렸다.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니고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내 몸은 부서졌다. 성경을 붙잡고 찬송을 불렀다. 그것말고는 의지할 데가 없었다.
의료사고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의학의 길에서 피할 수 없는 걸림돌이기도 하다. 하지만 누구든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일 사람은 없다. 사고 후 남아 있는 폐 기능을 살핀 의사는 “이 정도의 폐 기능을 가진 내 환자들은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그때 나는 내가 찾은 의학을, 환자를 치료하는 임상의학으로 옮겨놓기 위해 병원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동물실험을 통해 아무리 효과를 보여줘도 환자에게 적용되지 않는 현실을 뒤집기 위해 실험실을 박차고 나오기로 한 것이다. 이런 계획을 들은 주치의는 내게 “현실적으로 생각하라(Be realistic!)”라고 했다. 그는 ‘불가능’만을 생각했다.
“약은 있다”
폐 기능 검사치의 숫자만 지켜볼 뿐 내 얼굴에 비친 투병 의지를 읽어내지 못한 의사는 자신이 배운 것만 이야기했다. 낮아진 폐 기능 검사 수치에 주눅이 든 듯, 그에게서 희망의 이야기란 찾아볼 수 없었다. 숫자의 볼모가 된 의학의 현실을 보면서 이후 나는 재활에 온 힘을 쏟았다. 숨이 턱에 차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몰려들었지만 이겨냈다. 누구도 가능하다고 생각지 않던 그 순간을 내 삶의 의지가 열었다. 재활 프로그램을 완전히 소화하고 난 후 무리 없이 걸어 다니기 시작한 나를 보고 의사는 “Possible!”이라면서 더는 내 앞길을 막아서지 않았다.
이후 나는 생을 건 전쟁을 벌였다. 불가능이라고 하는 것들에 대한 무한도전을 감행했다. 걷는 것만으로도 도전이 되는 인고의 삶. 말을 듣지 않는 몸. 그럼에도 끝없이 달려나가는 마음. 그런 심신의 괴리는 엄청난 고통으로 다가왔다.
나를 무엇보다 더 견디기 힘들게 한 것은 ‘왜 내게?’라는 의문, 그리고 희망을 던져주지 못하는 의학의 고질적 패배주의였다. ‘왜 내게?’라는 물음으로 되살아나는 잔인한 기억이 가져오는 고통. 그 고통에 무뎌지는 데만 3, 4년이 걸렸다. 계단 위를 오르기 힘들어지면 주차장 건물 계단을 한달음에 달려 올라가던 예전 내 모습이 떠올랐고, 몇 걸음 옮기지 못하고 숨이 찰 땐 볼링장에서 몇 시간씩 공을 굴리며 즐거워하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지금의 내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든 순간, 그 순간이 가장 힘들었다.
그 후에도 주류의학은 내게 잔인한 이야기들만 쏟아놓았다. 의사만 만나고 오면 풀이 죽어 절망감에 빠져드는 내 모습에 아내는 “더 이상 의사를 만나지 말라”고까지 했다.
“폐를 좋아지게 하는 약은 없다.”
‘다시 일어서야 한다’
내게 끊임없이 던져지던 한마디. 한계에 다다른 의학의 패배주의는 이 한마디로 선명하게 드러난다. 지금 이 말을 믿는 호흡기 내과 의사가 있다면 당장 이 모토를 지워주기 바란다. 사람이 아픈데 쓸 약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간 엄청난 연구비를 소모한 의학이 “약이 없다”라는 말만 반복하면 되는가. 정말 없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생각하는 답은 ‘아니올시다’이다. 내가 눈물로 찾은 의학에는 분명 치료약이 있다.
요즘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내가 어린시절에 느끼던 따뜻함과는 거리가 멀다. 숫자가 점령한 컴퓨터 의학, 머리로 하는 의학보다 가슴으로 하는 의학이 더 큰일을 할 수 있는 법인데 현대의 의학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미래를 향한 의지로 투병하는 환자들 앞에서 냉정한 숫자에 얽매여 그 희망을 꺾어버리는 ‘잔인한 조언’만은 그만뒀으면 좋으련만 의학은 내게 늘 ‘차가운 선택’만을 제시했다. 아무리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라 해도 완전하지 않은 의학의 절대적 예견은 큰 가치가 없다. 세상에는 아직 주류의학이 알지 못하는 치료법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대체의학자의 논리도 아니고 보완의학자의 주장도 아닌, 의학을 공부한 동료·선후배 의료인들이 자신의 진료실에서 환자들을 도운 바로 그 치료법들이 우리 곁에 있다는 얘기다.
웃음과 비타민C 치료법으로 난치병을 극복하고 ‘질병의 해부(Anatomy of an Illness)’라는 베스트셀러를 쓴 노먼 카슨스는 이런 말을 했다.
“의학이 당신에게 내린 진단을 결코 부인하진 마세요. 하지만 그 진단과 함께 따라 들어오는 잔인한 예후의 선고는 절대 받아들이지 마십시오(Never deny your diagnosis, but do deny the verdict that may go with it).”
2007년 2월 겨울이 다 지나가던 어느 날 오후, 의학은 내게 또 맥빠지는 이야기를 했다. “수년간 치료해왔지만 나아지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면서 나빠진 폐를 다시 좋아지게 만들 약은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나는 긴 상념에 빠졌다.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부모가 아닌 이상 다 떠난다는 그 자리, 그 긴 시간을 불평불만 없이 지켜준 아내 정현. 피아노를 치던 가녀린 몸으로 이제 어떤 궂은일도 마다않는 아름다운 사람. 함께 뛰어놀아주지 못하는 아빠를 탓하지 않고 늘 내게 따뜻하고도 어른스러운 눈빛을 보내주는 내 아이 지안이. 함박눈이 쏟아지던 어느 겨울 날, 혼자 바깥으로 나가 눈 위에 뒹굴다 어쩌다 만들어진 눈사람을 보고 마냥 좋아하던 얼굴이 눈에 선했다. 서울에 계신 어머니,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고 시카고에 계신 장인, 장모님의 얼굴도 그려졌다. 나를 위해 간구의 기도를 해주던 많은 이, 병실을 찾아 기도해주시던 목사님도 스쳐갔다.
서양의학은 ‘반쪽 의학’
내 마음속에서 뜨거운 것이 솟구쳐 올랐다. 상처 받은 내 정열이, 내 희망이 가슴속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내 의학을 이제야 찾았는데 이렇게 주저앉을 순 없다’는 생각과 ‘내가 아니면 이 험난한 길을 걸어갈 의료인이 없을 것이다’라는 생각에 나는 다시 일어섰다. 아니 일어서야만 했다. 병상에 누운 환자들을 위해서라도 박차고 일어서야 했다.
의료사고를 당한 후 나는 주류의학의 치료법을 한걸음 물리고 내가 추구하던 의학을 다시 전면에 내세우며 새로운 투병을 시작했다. 주류의학이 한계를 보이던 날 내 의학으로 돌아와 힘찬 투병을 시작한 것이다. 그들이 부숴놓은 몸이지만 이제 추스를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었고, 나를 세울 의학 역시 그간 주류의학에 의해 한지로 밀려난 바로 그 의학이었다.
내가 찾은 의학으로 힘차게 투병을 재개한 후 다시 만난 의사들은 내게 “좋아졌다”고들 했다. “어떻게 한 것이냐”는 물음에 그간의 치료법들을 알려주고 그 논리를 설명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이야기를 진료기록에 꼼꼼히 적어넣는 호흡기 내과 의사도 있었다.
10여 년간 혼을 쏟아 미국에서 공부한 나의 의학은 자연의학이다. 기존의 주류의학이 크게 의존하는 신물질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눈을 돌려 나를 구원할 물질을 찾아온 길. 그 길에서 나는 의학을 다시 배웠고 왜 서양의학이 그 긴 세월 내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는지도 알게 됐다. 왜 끊임없이 염증이 지속되며, 불타오르는 내 몸에 왜 진화제를 뿌려줄 수 없었는지 그 이유도 캐냈다. 이러한 깨달음은 곧 내가 찾은 의학이 나와 같은 환자들을 도울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줬다.
서양의학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질병을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 편향돼 있어 치료법이 답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대학 문턱을 넘어서던 20여 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의 서양의학은 훨씬 화려하지만 그 뒤안길에 가려진 골은 더 깊어졌다. 그때도 고칠 수 있던 질환들은 차세대 신약들이 쏟아져 나오며 치료법이 계속 개선됐지만, 난치로 묶여 있던 질환은 여전히 난치 상태로 남아 있다.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단 말인가.
도그마를 깨라
환자는 의학의 스승이다. 의학은 환자들의 고통을 담보로 발전해왔고 그들의 고통이 밀알이 되어 성장해왔다. 그 고통에 대한 의학의 선물은 치유의 기쁨이 되어야 한다. 주류의학은 환자들의 고통과 시련을 새로운 치료법으로 승화시키지 못했다. 환자들의 고통은 대답 없는 메아리일 뿐. 의학의 한계라고 말하지만 그건 패배자의 변명일 뿐이다.
건강은 질병이 없는 상태가 아니듯 질병을 잡아낸다고 환자의 건강이 저절로 지켜지는 것도 아니다. 건강과 질병은 0과 1의 디지털 개념이 아니라 아날로그 선으로 이어지는 연속선상의 개념이다. 그래서 의학은 질병관리와 더불어 건강관리도 함께 해줘야 사람들에게 건강한 삶을 돌려줄 수 있고 질병으로 빠져드는 것도 막아낼 수 있다.
지금 난치병으로 규정된 질환들은 대부분 서양의학이 질병관리 측면으로만 접근하다 두 손을 든 것들이다. 질병관리가 벽에 부딪히면 치료법이 없다고 널브러진다. 그래서 지금의 서양의학은 반쪽 의학이다. 질병관리가 벽에 부딪히면 건강관리로 돌아서 치료에 임해야 한다. 그런 것이 의학이고 그런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의사다.
서양의학의 질병관리에 사용되는 물질은 대부분 신물질이다. 다국적 제약사가 ‘특허’라는 이름을 걸고 들여와 자본을 바탕으로 의학을 교육하고 진료실로 옮겨놓은 신개념의 치료제다. 이러한 신물질들은 서양의학을 발전시키는 데 커다란 기능을 해왔고 인류를 여러 질환으로부터 구원한 고마운 것들이다. 항생제와 같은 신물질 치료약들은 인류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전염병의 공포로부터도 해방시켰다. 하지만 항생제의 눈부신 성공은 이후의 의학을 신물질을 이용한 공격 일변도의 의학으로, 질병관리에 편향된 의학으로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한 살생의 공격철학은 이제 서양의학의 도그마가 되어버렸다. 항암제를 보면 그런 도그마의 무한질주가 얼마나 큰 부작용을 낳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의학 교과서 역시 질병관리에만 집중했다. 신물질로 만든 치료제만이 치료약인 듯 서술돼 있다. 이로 인해 자연물을 이용한 건강관리의 중요성은 의료인의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렸다. 건강관리를 팽개치고 질병관리에만 치중하면 그 부작용은 환자의 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내야 하고, 호미로 막아낼 병을 가래로 막아야 하는 역효과도 나타난다. 수술은 잘됐는데 환자가 사망했다든지, 암 조직은 항암제로 초토화시켰는데 환자의 상태가 더 악화됐다든지 하는 사례들은 결국 질병관리에 치중한 반쪽 의학의 결과다.
질병관리의 측면으로만 접근했을 때 도저히 해답이 나오지 않는 질환들이 있다. 자가면역 질환, 여러 바이러스 질환, 수십 년째 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만성 폐쇄성 폐질환들이 그러하다. 이러한 질환들은 건강관리 개념으로 돌아서 접근하면 치료의 길이 열린다. 이러한 난치 질환들이 몸 속에 뭔가 부족해서 생기는 질환이 아닌지,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면 질병을 이겨낼 수 있지 않을지를 고민하다 보면 뜻밖의 길이 열린다.
서양의학이 두 손 들고 물러나고 숱한 동양의학 대가들이 객기를 부리다 도망간 내 몸,그렇게 부서져 들어가던 내 몸을 겨우 돌려세울 수 있었던 것은 자연물을 이용한 건강관리 측면에서 내가 지닌 난치병을 들여다보고 그 해법을 찾아가다 발견한 치료약들의 도움 덕분이었다. 내 몸은 그 자연물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여왔고 이러한 반응은 내 몸에서만 일어나는 특이한 반응이 아니라 이를 투여받은 사람들에게서 일어나는 자연적 현상임을 깨닫자 벅찬 감격이 몰려왔다.
씨앗보다 밭이 중요
더 이상 나와 같은 불행한 젊은이가 나와선 안 된다는 생각과 내가 겪은 잔인한 고통을 우리 아이들에게 대물림해선 안 된다는 신념으로 나는 이렇게 글을 쓰고 홈페이지(vitamincworld.ohpy.com)를 만들어 내가 찾은 의학을 알리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찾은 의학, 즉 건강관리 측면으로 접근하는 치료의학은 어떤 모습으로 설명될까.
곡식과 채소를 풍성하게 거둬들이려면 좋은 씨앗이 있어야 하고 병충해를 막아줘야 하고 농부의 부지런한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씨앗을 길러낼 토양이다. 밭에 씨를 품어낼 능력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종자를 심고 병충해를 완벽하게 차단한다 해도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없다.
서양의학은 인간에게서 씨앗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모든 질병의 원인을 씨앗에서 찾으려 들고 병충해와 같은 외부 환경에서 찾으려 한다. 씨앗을 개량하고 병충해를 막아서는 것에 서양의학은 모두 걸기를 했다. 그런 모두 걸기가 듣지 않으면 서양의학은 “치료법이 없다”고 한다. 밭으로 눈길을 돌려보면 해법의 실마리가 나타날 법도 한데 좀체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내가 미국으로 건너와 과학을 공부하던 1990년대, 의학은 유전학에 심취해 있었다. 분자생물학과 유전학으로 대변되는 현대과학의 흐름은 휴먼 게놈 프로젝트를 만들어내며 ‘유전자를 바로잡으면 질병이 치료된다’는 환상을 세상에 불어넣었다. 막대한 자본이 여기에 쏟아 부어졌고 그 자본으로 연구를 진행하던 위대한 과학자, 의학자들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올해의 논문’을 쏟아냈다. 그때 인류 구원을 외치던 ‘올해의 과학자’ ‘올해의 의학자’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그들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이젠 다들 ‘줄기세포’가 답이란다. 유전자면 된다던 그들이 이젠 줄기세포면 모든 것이 된단다. 그리고 또 10년이 지나면 그들은 어디에 가 있을까. 밭을 이해하지 못한 유전자와 밭을 이해하지 못한 줄기세포는 환상일 뿐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누구나 안다. 농사에 견주면 밭이 바로 환경이다. 인체를 구성하는 세포 역시 자라나는 환경에 커다란 영향을 받고, 이 세포 안팎의 환경이 바뀌면 외부 자극에 대한 세포의 반응도 크게 달라진다. 음이 양이 되고 양이 음이 된다. 세상에 음양이 있듯 세포에도 음양이 있다. 세포의 음양은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도 판이하게 만들 만큼 강한 조절작용을 한다. 그런데 서양의학은 이 부분을 놓쳤다.
세포를 살려낸다
세포 내의 음양은 비타민C와 글루타치온이라는 두 가지 주요 조절물질에 의해 좌우된다. 최근 들어 항산화제가 화제에 오르면서 사람들이 비타민C에 조금씩 눈을 뜨고 있고 한국에서도 비타민C가 화두가 되고 있지만, 한국의 비타민C 이야기는 아직 예방의학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비타민C는 사람이 만들어내지 못하는, 그래서 외부로부터 섭취해야 하는 항산화제로 세포 내의 음양을 조절하는 강력한 물질이다. 비타민C는 세포 안에서 혈액 속 양의 10배가 넘는 고농도로 존재하면서 음양을 다스린다.
비타민C와 더불어 또 하나의 강력한 음양조절 물질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글루타치온이다. 글루타치온은 인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강력한 항산화제이지만 외부 환경의 변화, 노화, 약물복용, 그리고 질병 등으로 인해 현저히 저하되어 있는 물질이다. 이렇게 글루타치온이 부족해진 사람에게는 인위적으로 공급해줘야 하는데 경구용으로 복용해서는 체내 흡수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초 재료, 즉 NAC를 투여해 세포 내 글루타치온의 농도를 상승시켜야 한다.
비타민C와 글루타치온으로 세포 내의 음양을 적절하게 조절해주면 세포가 살아난다. 염증에 시달리던 세포가 다시 살아나고, 무섭게 분열하던 암세포의 성장이 둔화된다. 만성 질환에 허덕이던 환자가 생기를 찾는다.
2007년 4월, 나는 10여 년간 추구해온 나의 의학을 미국 의사들에게 설명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동안 거들떠보지도 않던 나의 논리를 그들이 안아들기 시작했다. 백혈병 환자들을 세포 내 음양 조절로 도울 수 있다고 하면서 그 원리를 설명하고 참고 논문을 제시했다.
“동양에는 음양사상이 있습니다. 음양철학은 한국의 태극기 문양에도 잘 나타나 있는데, 여기 이 여가수의 가슴에 그려진 문양이 바로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태극문양입니다….”
음양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는 이방인들을 내 논리로 끌어들이기 위해 우선 태극기를 보여주려 했다.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변변한 태극기 이미지를 찾기 힘들어 겨우 찾아낸 것이 가수 장윤정이 2006년 독일월드컵 때 태극기 옷을 입고 한국팀 경기를 응원하며 노래하는 장면이었다.
“이러한 음양의 개념은 여러분 곁에도 늘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동양이 서양을 만납니다.”
‘East meets West’ 라는 말과 함께 펩시의 로고를 보여주니 모두가 웃었다. 이들이 내 음양론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펩시는 한국 정부에 태극문양 로열티를 줘야 한다”고 우스갯소리도 했다. “동양의 이런 철학은 여러분이 익숙한 서양의 과학과 의학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음양철학으로 세포를 다시 들여다보면 그동안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들에도 눈을 뜨게 됩니다.”
그러고는 세포의 도안을 보여주고 이들이 음의 영역으로 다가섰을 때와 양의 영역으로 다가섰을 때를 초록색과 붉은색으로 각각 달리 채색해 대비시켰다.
“이처럼 우리 몸속의 세포는 음과 양의 세계를 수시로 넘나듭니다. 음양을 넘나드는 세포는 그들이 그 음양선상의 어느 곳에 서 있는지에 따라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이 달라집니다. 이러한 세포 속 음양은 여러분이 익숙한 서양의 과학으로는 리독스(redox)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환원을 의미하는 리덕션(reduction)에서 ‘red’ 세 글자를 가져오고, 산화를 의미하는 옥시데이션(oxidation)에서 ‘ox’ 두 글자를 가져와 조합하면 ‘redox’가 되는데 이것이 바로 세포가 갖는 산화 환원의 지표이고 동양철학이 말하는 음양입니다.”
이방인들의 눈이 열리고 동양의 음양이 자연스럽게 서양의 리독스로 풀어지면서 내 이야기는 이들의 머릿속으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암세포는 미친 듯 세포분열을 계속하며 자기복제를 합니다. 이런 암세포는 양의 기운이 넘쳐나는 세포들입니다. 그래서 산화 환원 지표인 리독스 역시 산화상태에 치우쳐 있습니다. 이러한 양의 기운을 음으로 대체하면 뜻밖의 결과가 나타납니다. 양의 기운이 넘쳐 분열하는 암세포의 환경을 환원상태로 전환하면 암세포는 분열을 멈춥니다. 세포 내에 음기운을 불어넣으면 분열하던 세포는 분열을 멈추고 분화하게 됩니다.”
세포 내의 산화환원을 조절해 암세포와 줄기세포의 성장을 조절할 수 있다는 기존의 연구결과를 보여주고 “앞으로의 암 치료법은 암세포를 죽이는 데에만 집착하는 단편적인 수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차세대의 암 치료법은 음양조절을 통해 세포라는 밭을 전환하는 새로운 접근법도 안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이곳 병원으로부터 백혈병 환자들의 혈액을 이용해 실험을 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다. 내가 추구하는 ‘리독스의 음양론’을 미국 땅에서 실존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서막이 열린 셈이다. 나는 이 연구에 온 정열을 바쳐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십년째 난치병, 불치병으로 낙인찍힌 자식을 구원하기 위해 전국의 명의를 찾아 헤매고 있을 수많은 모정(母情)이 있고, 치유의 희망을 간구하며 눈시울을 적시고 있을 조국의 젊음이 눈에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의학의 잔인한 한마디에 상처 받은 가슴들을 데워주고 이 땅의 의학에 희망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라도 나는 목숨을 걸고 달릴 것이다.
의학의 본질은 ‘사랑’
마지막으로 내 나라의 의학과 의료인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내가 진정 난치병 환자들을 도울 수 있는 치료법을 가장 많이 배운 곳은 의학교육을 받은 서울대 의대도 아니고, 과학교육을 받은 오하이오 주립대도 아니며, 지금 일하고 있는 메트로헬스 메디컬센터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치유의 희망을 간구하는 환자로서 내 스스로의 모습과 이를 차마 저버릴 수 없었던 의사로서의 내 모습이었다. 냉철한 머리로 하는 의학보다 뜨거운 가슴으로 하는 의학이 더 큰 것을 보게 해준다는 것을 전하면서 내가 늘 가슴속에 담고 사는 말 한마디를 옮겨본다.
“Cure Sometimes, Heal Frequently, Help Everytime.”
의학은 때로 환자를 완치시키고, 자주 치유하지만, 늘 환자들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완치를 바랄 수 없다고, 치유를 기대할 수 없다고 환자에게 “해줄 게 없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의사가 되던 날 가슴에 손을 얹고 선서한 히포크라테스 정신과도 거리가 멀다. 병상에서 의사가 쥐어주는 따뜻한 손길, 그 손길 하나에도 두려움이 걷어지는 여린 사람들이 바로 환자이고, 의사의 따뜻한 눈길 하나에서도 희망을 찾는 사람들이 환자다. 희망이 살아 숨쉬는 곳이나 두려움이 몰려드는 어두운 공간에서나 그 어느 순간에도 의학은 환자를 도울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의학이고 그 일을 해야 할 사람들이 우리들이다.
치료법이 없다면 공부하자. 현재의 의학이 던져놓은 그 좁은 텍스트만 부여안고 있지 말고 새로운 의학을 찾아보자. 우리가 배운 의학은 반쪽일 뿐. 그렇다면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가야 한다. 그 길에서 우리는 환자를 도울 수많은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의학은 그 본질 자체가 사랑에서 출발한다. 무엇으로도 흉내 낼 수 없는 그 무한의 사랑 앞에 불가능은 없다.
(끝)
하병근
● 1966년 부산 출생
● 서울대 의대 졸업,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박사(신경과학)
● 現 미국 클리블랜드 메트로헬스 메디컬센터 레지던트(병리학)
● 2007년 월간 문학세계 신인문학상
● 저서 : ‘히포크라테스의 번민’ ‘비타민 박사의 비타민C 이야기’ ‘신비로운 비타민C’
‘우리집 홈닥터 비타민C’ ‘숨겨진 비타민C 치료법’
<신동아 / 2008,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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