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명상글

답설(踏雪)의 작자는 서산대사일까? 이양연일까?

풍월 사선암 2007. 2. 13. 19:43

 

답설(踏雪)의 작자는 서산대사일까? 이양연일까?

 

우선 너무나 잘 알려진 두시를 비교하여 보자.

 

서산대사의 시 답설(踏雪)

 

雪野中去(답설야중거) : 눈 덮인 들판을 갈 때에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 모름지기 어지럽게 걸어가지 말지니.

我行跡(금일아행적) :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취가

後人程(수작후인정) :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라.

 

이양연의 시 야설(野雪)

穿雪野中去(천설야중거) : 눈 길 뚫고 들길 가도

不須胡亂行(불수호란중) : 모름지기 어지러이 가지 말라.

我行跡(금조아행적) : 오늘 아침 내 발자국이

後人程(수위후인정) : 마침내 뒷사람의 길이 될 것이니.

 

단 세 글자가 틀리다.

 

한문학자인 정민교수등 최근 학계의 보고에 의하면, 이 시는 조선후기 문인 이양연(李亮淵, 1771(영조 47)~1853(철종 4)이 지은 것 한시연구논고에서 발표하였다.

 

이양연의 자는 진숙(晉叔), 호는 임연(臨淵)이다.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능으로 많은 책을 읽어 모르는 것이 없다는 평이 있다. 그는 조선후기의 문인으로서 호조참판을 거쳐 1852(철종 3) 동지의금부사에 이르고, 농민들의 참상을 아파하는 민요시를 많이 지었다. 율곡 이이 선생의 학문을 평생 사모하였고, 수 백수의 아름다운 시를 남겼다.

 

이양연의 문집인 '임연당별집(臨淵堂別集)'과 장지연이 편찬한 '대동시선(大東詩選)' 등에 이양연의 이 시가 수록되어 있다고 정민교수는 주장했다.

 

서산대사의 문집인 '청허집(淸虛集)'에는 이 시가 수록돼 있지 않기 때문에 서산대사의 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서예가들이 서산대사의 시로 알고 휘호하였기에 혼란이 적지 않게 되었다.

 

생몰연대로 보면, 서산대사는 이양연보다 150년 전의 인물이다. 일반적으로 서산대사가 지었다고 전하는 시와 이양연의 시를 비교하면, (穿)-(), ()-(), ()-() 등의 글자만 다르고 내용면에서는 차이가 없다. 이 시의 저자가 누구인지는 앞으로 더 많은 자료가 발굴되고 연구되어야 명확하게 판가름 날 것이다.

 

누가 지었느냐는 영원한 과제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 내용상으로 보면, 전인미답의 눈길을 걸어갈 때는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말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뒷사람이 그 눈 위에 새겨진 앞사람의 발자국을 보고 걸어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앞사람은 똑바로 걸어가야 한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백범 선생은 하루에 세 번씩 이 시를 낭송하고 실천했다고 하니 선구자의 삶이 얼마나 철저해야하는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흰눈이 내린 길을 걸어갈 때면 위의 시는 더욱 가슴으로 스며든다. 백범 김구 선생께서 붓글씨로 이 시를 휘호하였기 때문에 김구 선생의 시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학계등의 논문등과 달리 서산대사(西山大師, 1520(중종 15)1604(선조37)의 선시로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양연의 시 몇수

   

村 婦 - 마을 아낙네

君家遠還好(군가원환호) 자네 친정은 멀어서 오히려 좋겠네

未歸猶有說(미귀유유설) 집에 가지 못해도 할 말이 있으니

而我嫁同鄕(이아가동향) 나는 한동네로 시집 와서도

慈母三年別(자모삼년별) 어머니를 3년이나 못 뵈었다네

 

自輓 - 내가 죽어서

一生愁中過(일생수중과) 한 평생 시름 속에 살아오느라

明月看不足(명월간부족) 밝은 달을 보아도 만족하지 못했소

萬年長相對(만년장상대) 이제부턴 만년토록 마주 볼테니

此行未爲惡(차행미위오) 황천 가는 이 길도 싫지 않다네

 

節食牌銘 - 절식위한 경계의 말을 적은 팻말

適喫則安(적끽즉안) 적당히 먹으면 편안하고

過喫則否(과끽즉부) 지나치게 먹으면 편치 않다

儼爾天君(엄이천군) 의젓한 너 천군이여

無爲口誘(무위구유) 입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

 

老婦夜中績 - 한밤중의 길쌈

老婦夜中績(노부야중적) 늙은 아내 한 밤중에 길쌈하다가

先聞山雨時(선문산우시) 산 비 막 내리는 소리 들었네

庭麥吾且收(정맥오차수) 뜨락 보릴랑은 내 거둘 테니

家翁不須起(가옹불수기) 당신은 일어날 필요 없어요

 

秋草 - 가을 풀

秋草莫怨霜(추초막원상) 가을풀이여, 서리를 원망말라

秋殺亦生道(추살역생도) 가을의 죽음은 새로 사는 길이라

却從地上蘇(각종지상소) 도리어 땅에서 소생할 것이라

人生不如草(인생불여초) 인생이란 풀만도 못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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