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명상글

반딧불이를 아시나요

풍월 사선암 2006. 6. 8. 09:20

 

반딧불이를 아시나요

                                                                          시나브로

사랑의 불빛『반딧불이』 우리 어릴적에 여름 밤하늘을 수놓았던 반딧불이가 이제는 아련한 추억의 한 페이지로 넘어가고 있다.


원래 반딧불이는 지역에 따라 불러지는 이름이 다소 차이는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반디, 개똥벌레, 개똥이, 반딧불 등으로 불리어지고 있는 개똥벌레과로 이는 '반딧불이'가 바른 이름이다.


누구나 겪었지만 오래 전에는 동심들의 유일한 놀이의 한 부분이기도 한 개똥벌레였다. 이들을 잡아 콧잔등과 이마에 붙여 서로 놀래기도 하고 풀섶에 누워 별빛과 밝기를 겨루던 유년의 등불이었고 꿈이 아니었던가 지금은 거의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동안 우리는 이들의 보호도 고려하지 않은 채 식량증산을 위해 무분별한 농약을 사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수구 및 논두렁 정비 등 개발의 명목으로 이들의 서식처를 생각지도 않고 앞만 바라보고 살아왔다. 때문에 꿈을 심어주기도 하던 반딧불이가 생태계의 파괴로 좀처럼 볼 수가 없게 되었다.


다행히도 이들을 살리고 보호하기 위하여 환경 단체들이 앞장서 보호운동을 하고있어 다소나마 마음이 놓이지만 그래도 왠지 마음 한쪽에는 유년의 반딧불이가 아닌 인공으로 키워진 반딧불이인 것 같아 서운한 마음이 앞선다.


'형설의 공'이라는 말과 같이 옛날 가난한 선비들이 반딧불이 빛과 눈(雪)빛으로 책을 읽었다는 말도 있듯이 상징적인 비유체로 많이 쓰여지기도 한다.


비록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빛이지만 희망의 메시지로 통하는 반딧불이다. 이들은 수컷과 암컷이 서로 발하는 빛이 같을 경우에만 교미를 한 후 논두렁이나 풀섶에 4-5백개 정도의 알을 낳아 번식한다. 수컷은 암컷의 위를 날면서 유혹한다. 암컷은 수컷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앉아 수컷을 희롱하여 같은 빛을 발하는 수컷과 교미한다.


반딧불이는 사랑과 선비를 상징하거나 문학적 소재로서도 사용되어 지기도 한다. 춘원의 '사랑의 東明王'에서도 반딧불이는 짝을 찾아 사랑을 고백하여 그리움으로 승화된 사랑의 불빛으로 서술되고 있기도 하다.


이제는 싱그러운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는 현실 속의 동화처럼 들리고 자연학습을 위하여 상품화된 반딧불이가 한때 생명과 교육의 기로에서 조명해 본 밀폐된 공간에서 꾸벅이고 있는 병아리의 표본처럼 멀건 대낮에 형광등이 밝은 방안에서 신기하게 바라보는 교육의 도구가 되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우리가 살고있는 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전에 비해 반딧불이 보기가 정말 힘들다. 환경보호운동과 연계하여 퇴색되어 가는 정서를 찾기 위해서도 환경오염의 저항에 약한 반딧불이 보호를 위하여 우리모두가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