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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경제학자 우석훈이 본 진보진영과 '문빠'

풍월 사선암 2020. 5. 19. 09:54

좌파학자 우석훈 "조직보위? 그거 열심히 하다 정권 날려 먹지 않았나"

입력 2020.04.12 11:18 | 수정 2020.04.12 12:56

[김기철의 시대탐문] [10] 좌파경제학자 우석훈이 본 진보진영과 '문빠'
"文정부 최대 문제는 경제성과가 없다는 것!
조국수호정당, 친박신당과 다른 게 뭔가
진중권의 文 정부 비판에 보수 환호?
자기가 옳다고 믿는 대로 얘기할 뿐"

진보 진영이 심상찮다. 문재인 정부에 우호적이던 지식인들이 지난해 조국 사태를 계기로 쏟아내고 있는 비판의 강도가 날로 거세지고 있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지난주 낸 책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에서 “문재인은 최소한의 상(商)도덕을 지키지 않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조국 사태에서 보듯,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바꾸겠다”고 약속한 취임사와 달리 정반대로 나갔다는 것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교수의 화력(火力)은 일당 백이다. 문재인 정부의 독선과 오만을 비판하는 글을 매일 미사일처럼 날리고 있다. 김경율 전 참여연대 공동집행위원장, 서민 단국대 교수,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도 대열에 함께 섰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88만원세대를 쓴 경제학자 우석훈씨는 "10,20대가 조국사태를 싸늘하게 바라보는 걸 보고 외면할 수없었다"고 했다.


‘88만원 세대’를 쓴 경제학자 우석훈(52)은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고, 2016년 총선 때는 더불어민주당 총선정책공약단 부단장을 맡았다. 더불어민주당의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으로도 일했다. 그런 그도 조국 법무장관 임명 다음날인 2019년 9월 블로그에 ‘87년 이후로 이어져 온 개혁파의 명분은 끝났다’고 썼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평창동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조국 사태가 분기점이 된 것 같다. 무엇이 진보 지식인들을 화나게 만들었나.
“원래 진보 진영은 다른 목소리가 많다. 이번처럼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조국은 시민운동이 배출한 최고의 대중적인 스타였다. 그 정도 인기를 누린 사람은 없었으니 찬반격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10대, 20대가 많이 실망하는 걸 봤다. 고등학생들도 분위기가 싸늘했다. 미래 세대가 옳지 않다고 하는데 그걸 어떻게 외면하나. 공직자에게 요구하는 도덕성의 기준은 점점 강화되고 있고 그 방향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현 정부가 여기서 밀리면 집권 후반기 내내 힘이 빠진다거나 지지층 분열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정책을 놓고 논쟁을 벌여야지 사람을 놓고 고집부리는 건 명분 없는 일이다. 한국은 진보, 보수가 반반인 나라다. 힘으로 몰아붙여 끌고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접점을 찾을 생각을 해야 하는데 조국 사태는 그 사람을 쓸 것인지 말건 지밖에 없으니 탈출구가 없었다.”

◇퇴행적인 조국수호정당, 친박신당과 다를 게 뭔가

―이번 총선엔 ‘조국 수호’를 선언한 정당까지 등장했다.
“퇴행적이다. 지난번 친박(親朴)신당과 뭐가 다른가.”

―강준만 교수나 진중권 교수가 현 정권을 시원하게 비판하니까 보수가 환호한다.
“이분들이 보수를 위해서 정권을 비판하는 건 아니다. 옳다고 생각하는 걸 얘기할 뿐이다. 진중권 선배(그는 진중권을 선배라고 불렀다)는 대중의 감정을 잘 안다. 난 무서워서 톤 다운하고, 분노도 좀 하다 만다.”

―동양대에서 일어난 조국 자녀 표창장 위조 사건을 가까이에서 보고 그 여파로 교수까지 관뒀으니 감정이 격할 수 있다.
“내가 아는 진중권은 멘탈이 센 사람이 아니다. 각오를 했다고 해도 여리고 섬세한 측면이 있다. 딱하다.”
우 교수는 “진중권 선배가 정의당을 탈당하겠다고 했을 때, 후폭풍이 얼마나 강할지 눈치 챘어야 했다”고 말했다.

―정의당 탈당이 그렇게 의미가 컸나.
“그는 정의당 공식 팟캐스트인 ‘노유진’을 2년 정도 했다. 노회찬, 유시민, 진중권 세 명이 고정 출연했고, 저도 좀 나갔다. 한 분은 돌아가시고, 한 분은 당을 바꿨고, 진중권은 마지막까지 남았다. 그런 사람이 탈당한다고 했을 때 ‘정말 독하게 마음먹었구나, 이제 다 죽었구나!’ 생각했다. 입당도 잘 안 하지만, 탈당도 가볍게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정의당이 조국 사태에 침묵하니까 탈당한 것 아닌가.
“진 선배는 ‘자기 말 들었으면 정의당이 지금 이렇게 바닥에서 선거를 치르지 않을 텐데 안타깝다’고 얘기한다.”

―진보 진영 내에서 자기비판이 종종 화제가 되지만, 보수쪽에선 이런 비판이 드물다. 불구경하듯 즐기기만 한다.
“이쪽이야 워낙 춥고 배고픈 동네라 어차피 굶는 사람이 많다. 정권이 바뀌어도 줄 잘 선 사람 몇몇이 자리 나눠 가질 뿐이다. 보수 쪽도 이명박 정부 때 유승민 의원처럼 4대 강 사업 반대한 분도 있었다. 그때는 진보 진영에서 열광했다.”

◇경제실적도 없이 뉴스 밸류만 따지는 청와대

―강준만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 열성지지층인 ‘문빠’가 한겨레·경향에 ‘어용언론’이 되도록 압박한다고 비판했다.
“자기들 입맛대로 보도하는 언론을 원하면 당 기관지(機關紙)를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사실을 캐내고 심층보도를 하는 게 언론의 기본적 역할이다. 그런 게 유튜브에 다 있다고 말하는데, 유튜브가 어디 사실을 취재해서 확인해주나. 언론이 뭔지, 공론장이 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강 교수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아 상도덕이 없다고 비판했다.
“취임사야 그냥 좋은 얘기를 한 것뿐이다. 문제는 정권의 실적이다. 경제 실적은 별로인데 논쟁만 강하면 이게 좋은 건가 싶다. 청와대가 아니라 무슨 언론사 데스크 같다. 뉴스 밸류만 엄청 따진다. 밸류가 없다고 생각하는 정책은 뒤로 제쳐놓는다. 정치인들은 뉴스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만, 청와대는 정치만 하는 곳이 아니라 통치를 하는 곳이다. 정부는 분기별, 연도별로 성과가 나온다. 성장률, 수출실적 같은 수치는 피해갈 수 없다. 열심히 하겠다는 말은 필요 없고, 숫자가 다 얘기하는 것이다.”

◇성과가 안 좋아서 망했지, 내부 분열 때문에 망했겠나

―정권 내부 분열 때문에 정권을 뺏겼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말인가.
“노무현 정부는 2003년 11월 열린우리당 창당하면서 스스로 분열을 주도했다. 분열 때문에 망했다는 건 자기들 머릿속에 있는 환상이다. 노무현 정부는 내부 분열이 아니라 성과가 안 좋아서 망했다. 지금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 실적이 안 좋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말로 설명해봐야 국민은 그렇게 안 느낀다. 설명이 길다는 것 자체가 성과가 불확실하다는 얘기 아닌가.”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예전 같은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지 않은가.
“하기 나름이다. 트럼프 이후의 미국이나 일본, 독일 경제가 코로나 이전까지 얼마나 잘나갔나. 10년 이상 장기 성장은 모르지만, 단기적으론 정책 조율만 잘 하면 성과를 낼 수 있다. 지금은 밑바닥이니 기저효과까지 있다. (소득주도성장이든 뭐든) 정책이 격론의 대상이란 건 명확하게 좋은 건 아니라는 뜻이다.”

◇“조직보위? 그거 열심히 하다 정권 날려 먹었다”

―문빠들은 진보 진영의 자기비판에 대해 보수 세력에 이로울 뿐이라며 입을 다물도록 압력을 넣는다.
“노무현 정부 때 그거 열심히 하다가 정권 날려 먹지 않았나. 잘못된 정책은 논쟁을 해서 수정하고 보완을 해야지….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서 얻은 게 뭐 있나. 박근혜 정부 때도 친박끼리 너무 잘 단결해서 정권이 날아간 것 아닌가. 현 정부도 마찬가지다. 경제 성장률이 높고 실적이 괜찮으면 모르지만, 경제는 형편없는데 자기들끼리 잘 된다고 말만 하면 통하겠는가.”

―강준만 교수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민주화가 된 세상에서 그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1980년대 운동권 논리인) ‘조직 보위론’을 다시 꺼내든 것"이라고 비판했다. 노조나 시민단체에 성폭력이 일어나도 ‘조직 보위론’을 내세워 은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시민단체는 여성이 많이 활동하니까 좀 바뀌었는데, 남자가 많은 노조에선 최근까지도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조직 보위론은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조국 교수와는 개인적 인연도 깊다고 들었다.
“노회찬 서울시장 후보 후원회장을 내가 맡았고, 다음이 조 교수였다. 시민단체 ‘내가 꿈꾸는 나라’ 대표를 조 교수가 맡았는데, 내가 후임을 이어받았다. 가까운 사이였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자신을 어떻게 규정하나.
“좌파 경제학자다. ‘자본론’을 열심히 읽었다. 지금도 마르크스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으려 한다.”

―노무현 정부 당시 한미 FTA에 반대했는데,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
“양자보다 다자간(多者間) 무역체제가 낫다고 봤다. 지금은 도하 라운드가 물 건너갔기 때문에 헛된 얘기가 됐지만. 한미 FTA 협상 자체에 문제가 많았다. 우체국 민영화까지 다 받아들이려 했다. 농업 분야도 위태로운 조항이 한둘이 아니다. 무조건 반대는 아니지만, 지킬 건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평창동 카페 앞 길에서 포즈를 취한 우석훈씨.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아이들을 데리러간다며 자리를 떴다. 


파리 제10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기업(현대그룹)과 정부(총리실), 정당(더불어민주당), 대학(성공회대 외래교수)을 두루 거친 이 50대 좌파 경제학자는 지금은 아홉 살, 일곱 살 두 아이를 키우며 전업 작가로 살고 있다. ‘88만원 세대’를 포함해 서른권 넘는 책을 썼다. 인터뷰 다음날 두 번째 소설 ‘당인리’가 인쇄에 들어간다고 했다. 우석훈은 오후 4시 반이 되자 일어섰다. 초등학교와 어린이집 돌봄 교실에서 돌아오는 아홉살, 일곱살 아이를 맞으러 간다고 했다. 카페를 나서자 절정의 벚꽃, 개나리꽃이 달려들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11/202004110066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