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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철의 아웃룩] 시대가 보수의 영혼을 요구한다

풍월 사선암 2020. 1. 27. 11:43

[전성철의 아웃룩] 시대가 보수의 영혼을 요구한다


보수는 자유지향인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든다고 믿기 때문

보수와 진보는 역사 발전 수레의 두 바퀴, 태생적으로 경쟁·갈등

지금 한국은 결정적 변곡점'자유와 선택' 절실하게 필요한 때


전성철 글로발 스탠다드 연구원(IGS) 회장


이념이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다음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다.

 

첫째, 나라가 떡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둘째, 키운 떡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셋째, 이 두 가지 문제를 누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보수와 진보는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해 서로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보수는 '자유'를 지향하고 진보는 '평등'을 지향한다.

 

보수가 왜 자유를 지향하게 되었을까?

 

인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자유'라고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류는 80여 만 년의 역사 내내 헐벗고 굶주리며 살았다. 그러다가 불과 300여 년 전에 거대한 도약을 시작했고 이제 거의 신과 경쟁하는 수준까지 왔다. 무엇이 이 엄청난 도약을 가능케 했나? 바로 산업혁명이다. 그렇다면 산업혁명은 어떻게 오게 되었나? 그것은 '자유'의 산물이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자유를 얻은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인류는 그 후의 역사에서 이 증거가 유효한 것임을 계속 확인하고 있다. 즉 국민에게 자유를 준 나라만이 부자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자유와 선택은 동전의 양면이다.

 

보수(conservative)는 원래 자유를 보존하는 자

 

'자유와 선택'을 지키자고 외치는 사람들이 바로 '보수'. 보수를 지칭하는 'conservative'라는 말은 정확히 번역하면 '보존하는 자'라는 뜻이다. 이들의 외침은 '자유를 보존하자'는 것이다. 무작정 옛것을 지키자는 '수구'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것이다(사실 이 번역 실수 때문에 우리나라 보수는 엄청나게 손해를 봐 왔다).

 

그렇다면 진보는 누구인가? 바로 '평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자유는 다 좋은데 불행히도 부작용이 있다. 반드시 '불평등'이 생긴다는 점이다. 사람 역량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감사하게도 '평등'을 이루자고 외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이들이 진보다. 사실 보수와 진보는 역사를 발전시키는 수레의 두 바퀴다. 한쪽이 망가지면 그 수레는 제자리에서 뱅뱅 돌 수밖에 없다. 이 두 이념이 공존하게 하는 체제가 바로 민주주의다.

 

지난 세기 미·영 등 자유민주주의 진영은 보수·우파적 이념을 바탕으로 사회·공산주의 진영과 경쟁에서 승리해 전 세계에 물질적 풍요와 함께 자유와 평화, 인권 확산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사진 왼쪽부터 자유민주주의 보수 이념을 대변했던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진보 쪽이지만 보수 정책도 수용했던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블룸버그·위키피디아


보수와 진보는 태생적으로 경쟁하고 갈등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평등을 이루려면 대부분 자유와 선택을 희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평등을 위해 자사고·특목고를 없애면 그것은 결국 그만큼 국민의 자유와 선택을 빼앗는 것이다.

 

진보는 명령을 좋아해평등을 이루는 데 편리하기 때문

 

진보는 태생적으로 명령을 좋아한다. ? 그것이 평등을 이루는 데 제일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수는 '명령'을 너무 싫어한다. 자유가 훼손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수 정권은 될 수 있는 대로 명령을 삼간다. 대신 인센티브를 활용한다. 예를 들어 시내에 차가 너무 많아 좀 줄이고 싶을 때 진보는 아마도 10부제라는 명령을 내릴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보수는 그러지 않는다. 그냥 시내에 들어오는 통행료를 좀 올린다.

 

진보를 표방하는 문재인 정부는 한마디로 명령을 너무 좋아한다. 하루아침에 최저임금을 왕창 올리고, 52시간제, 분양가 상한제, 자사고·특목고 폐지, 각종 친노조 정책 등 꽝꽝 명령을 내린다. 집권 2년 반이 한마디로 명령의 연속이었다. 그만큼 시민의 자유는 계속 축소되어 왔다.

 

그 백미가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부동산 대책이다. 한마디로 이 정부는 집값도 명령으로 잡으려 한다. 분양가 상한제, 대출 제한, 주택 매입에 관한 각종 제한 등. 급기야는 부동산 거래 허가제까지 들먹이는 참담한 상황이 되었다. 사람과 달리 '시장'은 절대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다는 경제의 기본 원리를 모르는 전형적인 '진보적 착각'이다.

 

보수 정권의 부동산 처방은 주택 공급 증가

 

보수 정권이라면 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했을까? 절대 명령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 주택 공급을 대폭 늘렸을 것이다. 어떻게? 간단하다. 아파트 지으면 돈을 벌게 해주는 것이다. 너도나도 나서서 아파트 지으려고 야단일 것이다. 이렇게 공급이 늘면 집값은 눈물로 호소해도 올라가지 않는다. 실제 1990년대 보수 노태우 정권은 집값을 잡기 위해 분당 등 신도시에 주택을 50여 만 호나 짓도록 했다. 그래서 명령 한마디 하지 않고 집값을 잡았다. '보수적' 접근이란 이런 것이다.

 

명령으로 시장을 움직이고자 하는 사람은 마치 마당의 물을 거대한 판때기로 밀어서 옮기려고 하는 사람과 같다. 보수라면 절대 그러지 않는다. 대신 땅을 내리막으로 깎는다. 그러면 물은 절로 내려가는 것이다. 보수의 영혼이란 이런 것이다.

 

이 세상에는 지혜로운 진보도 가끔 있다. 2008년 금융 위기로 다 망가진 경제를 인계받았던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같은 사람이다. 미국 100대 기업 중 수십 곳이 법정 관리에 들어감으로써 경제 전체가 마비 상태에 빠진 참담한 상황을 그는 어떻게 타개했을까? 그는 '명령'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대신 누구든 법정 관리 기업 주식을 사겠다는 사람이 1을 내면 미국 정부가 그 주식을 담보로 6을 빌려주겠다고 선언했다. 시민들이 너도나도 달려들어 주식을 사는 바람에 1년여 만에 대부분 기업이 법정 관리를 빠져나왔고 금융 위기는 단숨에 극복해 버렸다. 이 과정에서 그 누구의 자유도 전혀 훼손되지 않았다.

 

지금 대한민국은 역사적으로 결정적 변곡점에 있다. 바로 거대한 4차 산업혁명이다. 여기서 낙오하면 따라잡는 데 100년은 걸릴 것이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한 자유와 기업가 정신이 필요한 때이다. 대한민국 70여 년 역사에서 '자유와 선택', 바로 '보수의 영혼'이 이렇게 필요한 때는 없었다.

 

조선일보 입력 2020.01.22 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