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생활글

불편한 선물

풍월 사선암 2019. 3. 6. 07:56


불편한 선물

 

생전에 친정아버지께서는 자식의 돈을 피하셨다. 노후의 당신께서 궁핍하셨을 때도 자식이 드리는 용돈을 거절하셨다. 월급쟁이 자식들이 제 살림하기에도 버거울 것을 염두에 두신 것이다.

자연히 우리 형제들은 부모님께 드리지 않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이 것이 보고 배운 바라 나도 자식들의 돈이 싫다. 효도를 가르치기 위해서라도 "가져오라"고도 하고 받으라고도 하는데 그야말로 월급쟁이 생활에 사교육비도 만만치 않을 아이들이 안쓰러워서 나는 꿈에라도 바라는 마음이 없다.

 

다만 일 년에 네 차례는 받는다.설과 추석 그리고 우리내외 생일 때이다. 액수는 20만원이 마음이 편해서 거의 고정되어 있다. 큰아들은 조금 더 넣기도 하고 밥을 잘 사준다. 이럴 때도 남편은 번번이 식사초대에 응하지 않는다. "당신이나 가구려." 아들의 돈을 아껴주는 것이다.

 

어제 밤이다. 막내가 전화를 했다. "어머니 계좌에 조금 입금시켰어요."

"무얼 입금씩이나 해. 성묘 갈 때 주면 되는 것을..." 하면서 얼마야?

어린애처럼 물으니 입금액을 이야기한다.

 

"? 웬걸 그리 많이 했어? 싫어, 도루 네 구좌에 넣을 거야." 했더니 "그냥 쓰세요." 하면서 화까지 내는 게 아닌가? "알았어. 알았어. 그럼 냉장고가 고장 났는데 냉장고 사는데 보탤게."

 

냉장고의 냉동실이 고장난지가 2주가 넘었다. 그 사연을 여고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했는데 아들들에게는 말을 하지 않은 처지였다. 김치냉장고도 있고, 냉동만 되지 않을 뿐 냉장 기능은 여전하여 냉동고 없이 한번 지내보려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살아보니 냉동실이 고장 났다고 하여 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얼리지 않고 신선한 것을 바로 구입하여 바로 조리를 하니 문제가 없었다. 두 노인만 사는 집에 무얼 그리 쟁여 놓고 살랴!

 

오늘 아침 물리치료실에 가서 기브스 푼 손목을 치료하려고 집을 나서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막내아들이다.

"어머니, 냉장고 주문했어요. 3일 후에 도착할 것이니 집에 계서요"

"애앵!!"

"추석선물이에요"

이렇게 마음 불편한 선물이 또 어디 있는가?

 

행여나 딸이 나오려나 싶어서 아들이 셋씩이나 있는 36살에 낳은 막둥이다. 816. 복중에 낳아 산모의 얼굴이 뚱뚱히 부었었다. "또 아들이야?" 사뭇 초상집이었다.

 

구박덩이를 면하려고 그랬는지 착하고 말썽 없이 자랐다. 입학하는 날도 졸업하는 날도 여덟 살 위인 큰형이 아버지처럼 참석했고 공작물이나 도형 같은 숙제는 둘째형이 맡아 놓고 해주었다.옷은 셋째형이 사줘야 입었다. 제 눈에 제일 멋쟁이로 보이는 형이다.엄마는 밥만 해먹이었다.

 

나는 세 형들에게 동시에 메일을 보냈다.

냉장고가 고장 난 사연을 쓴 글을 복사하고 그 밑에다가

"우리 막둥이가 냉장고를 사 보냈다는구나. 형들아. 칭찬해 주어라"

라고 붉은 색으로 크게 써서 보냈다.

 

"우리 막둥이 정말 신통하네요." 큰형이 제일 먼저 답장을 보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