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양식/시사,칼럼

노인은 심심하면 안 된다

풍월 사선암 2018. 9. 30. 00:34

노인은 심심하면 안 된다  

 

김병일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기획예산처 장관

 

올해 87세인 퇴계 종택 16대 종손

교직 은퇴후 도산서원수련원 설립

 

수련생들에 맞춤식 조언해주려

매일 신문·서적 정독하고 산책

 

시니어들 거창한 사회활동 안해도

활기 있는 노년 만들어 나가길

 

노인이 왜 세상을 떠나는지 아느냐? 심심해서 떠난다.” 올해 87세인 퇴계 종택 16대 종손(이근필 옹)10년 전 필자에게 해준 말이다. 젊은 시절 그의 조부(14대 종손)께 들은 말이라는데, 아마 자신도 나이 들어가면서 자못 공감하기 때문에 들려준 듯하다. 그런데 조부께서는 왜 이런 이야기를 자손에게 전한 것일까?

 

종손의 조부는 1970년대 중반에 84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퇴계종택은 안동 시내에서도 많이 떨어진 곳에 홀로 자리한 독가촌(獨家村)이다. 문중 행사나 집안 모임 때면 찾아오는 사람이 많지만, 평소에는 손님 발길이 뜸하고, 혹 찾아오더라도 연세 많은 종손 앞에 그리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그래서 삶이 적적하고 무료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조부는 논어를 작은 수첩 크기로 직접 써서 늘 한복 소매에 넣고 다니며 심심함을 풀었다고 한다.

 

이러한 조부의 모습은 증조부를 닮았다고들 한다. 증조부(13대 종손)1950년대 초 6·25동란 중에 80세로 고인이 되었다. 당시로는 장수한 셈이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창씨개명 강요를 온몸을 던져 막았던 강골의 선비였다. 당시 창씨개명한 타성의 어린 학생이 퇴계 집안 친구에게 왜 옛날 성과 이름을 아직도 쓰느냐고 물으면 우리는 종손 할배가 있잖나?” 하고 으스대며 대답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올 정도로 문중의 항일 분위기를 일구신 분이다.

 

그런 분이 광복 후 80년 생애의 끝자락은 어떻게 보냈을까? 10대 중반 어린 나이에 퇴계 종택으로 장가온 증손녀 사위(이용태 옹·87)는 지금도 이 서방아, 오늘 나하고 자면서 이야기 한 자락 해봐라고 했던 처증조부의 목소리를 기억한다고 한다. 일상의 적적함도 풀고 자신을 어려워할 수 있는 증손서와 친근한 소통의 시간을 갖기 위한 배려였을 것이다. 동족이 모여 사는 마을과 대가족제도가 상당히 남아 있던 시절이었지만, 그때도 고령의 종손들은 이렇듯 편하게 벗할 사람이 줄어 심심한노후를 보냈다. 그러면 동족 마을과 대가족제도가 무너져 문중 문화가 거의 해체되다시피 한 오늘을 사는 퇴계 종손은 어떠할까? 자신의 증조부나 조부가 살던 환경과 엄청 바뀐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데.

 

60대 중반 교직에서 은퇴한 종손은 3년 후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을 설립했다. 인성 바른 사람을 길러내 도덕입국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자 시작한 것이 어느덧 17년이 흘렀다. 그때부터 종손은 노후의 삶을 아주 바쁘고 즐겁게 보내고 있다. 종손은 수련원을 찾는 수련생들을 늘 사랑과 감사함으로 맞이한다. 초등학생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대상도 다양하고 하루 방문객도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에 이르지만, 누구에게나 한결같이 배려와 헌신의 자세로 대한다. 이 때문에 수련생들에게는 퇴계 종택에서 종손을 만나 뵙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단연 최고 인기 프로그램으로 손꼽힌다.

 

종손은 수련생들이 도착하기 전 마당에서 기다렸다가 맞이하고 실내에 들어가서는 이마가 마루에 닿도록 큰절을 한다. 그러고는 한 시간 가까이 무릎을 꿇은 채 수련생들을 마주하며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주로 지역이나 이웃에서 선행을 베풀어 잘된 사람을 소개하거나 읽은 책 중에서 좋은 책을 권하는데, 퇴계 선생이나 조상의 이야기는 입 밖에도 내지 않는다. 그런 다음 마지막으로 두 개의 글귀가 들어 있는 편지 봉투를 하나씩 수련생들에게 건넨다. 하나는 9년 전 101세에 돌아가신 부친(15대 종손)께서 100세 때 쓴 160자의 수신십훈(修身十訓)이다. 인격 수양에 필요한 10가지 방법이 담긴 좋은 글귀인데 인쇄본을 드려서 송구하다는 말을 꼭 덧붙인다.

 

그게 미안해서인지, 다른 하나는 자신이 정성껏 손수 쓴 글씨를 낙서라며 건넨다. 겸양하지만 종손의 필력은 안동의 4대문 중 하나인 도신문(陶信門)의 현판을 쓸 만큼 대단하다. 그렇게 매일 써내려가는 글씨가 하루 평균 100장이다. 수련생들이 종택을 나설 때는 대문 밖에서 일일이 고개 숙이고 악수하며 배웅하는데, 어린 학생들에게는 하이파이브까지 한다. 90 가까운 분이 이렇게 하니 남녀노소가 한결같이 종손에게 겸손과 헌신 그리고 존중을 받았다는 감동을 안고 종택을 나선다.

 

종손은 찾아오는 다양한 계층의 수련생에게 도움이 될 만한 맞춤식 조언을 균형감 있게 해주기 위해 매일 2개의 신문을 정독하고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연간 수십 권의 신간 서적을 읽는다. 고령에 결코 쉽지 않은 활동이다. 그래서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저녁 30분씩 두 차례 산책을 하며 건강관리도 한다. 자신보다는 남을 위한 활동이 단지 심심함에 대한 극복을 넘어 오히려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년의 삶까지 이끄는 것이다. 종손의 이런 모습은 교직 정년 후 선비수련원에서 지도위원으로 봉사하고 있는 125명의 60대 시니어에게도 20년 후 자신의 미래를 설정하는 데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심심한 노년을 멀리하고 바쁘게 보내는 종손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필자도 늘 느낌이 새롭다.

 

노마지지(老馬之智)’라는 말이 있다. 연륜이 깊으면 나름의 장점과 특기가 있다는 뜻이다. 직업이나 거창한 사회 활동이 있으면 더 좋겠지만, 또 없으면 어떠한가. 세월이 만든 자신만의 힘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타인, 특히 젊은 세대에게 전하는 일도 좋고, 손자녀를 위한 동화책 읽기처럼 가족을 위해 써도 좋다. 필자 역시 심심하지 않기 위해 더 노력하려 한다. 많은 시니어가 심심한 노년이 아닌 활기 있는 신()노년을 만들어 나가길 응원한다


문화일보 게재 일자 : 2018년 09월 28일(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