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생활글

팔십종수(八十種樹)

풍월 사선암 2018. 8. 4. 09:05

 

팔십종수(八十種樹)


박목월 선생의 수필 '씨 뿌리기'

호주머니에 은행 열매나 호두를 넣고 다니며

학교 빈터나 뒷산에 뿌리는 노교수 이야기가 나온다.

이유를 묻자 빈터에 은행나무가 우거지면 좋을 것 같아서라고 했다.

언제 열매 달리는 것을 보겠느냐고 웃자

"누가 따면 어떤가. 다 사람들이 얻을 열매인데" 하고 대답했다.

여러 해 만에 그 학교를 다시 찾았을 때

키만큼 자란 은행나무와 제법 훤칠하게 자란 호두나무를 보았다.

홍익대학교 이야기일 텐데

그때 그 나무가 남아 있다면 지금은 아마도 노거수(老巨樹)가 되었을 것이다.


"예순에는 나무를 심지 않는다(六十不種樹)"고 말한다.

심어봤자 그 열매나 재목은 못 보겠기에 하는 말이다.

송유(宋兪)70세 때 고희연(古稀宴)을 했다.

감자(柑子) 열매 선물을 받고 그 씨를 거두어 심게 했다.

사람들이 속으로 웃었다.

그는 10년 뒤 감자 열매를 먹고도 10년을 더 살다 세상을 떴다.

 

황흠(黃欽)80세에 고향에 물러나 지낼 때 종을 시켜 밤나무를 심게 했다.

이웃 사람이 웃었다.

"연세가 여든이 넘으셨는데 너무 늦은 것이 아닐까요?"

황흠이 대답했다.

"심심해서 그런 걸세. 자손에게 남겨준대도 나쁠 건 없지 않은가?"

10년 뒤에도 황흠은 건강했고, 그때 심은 밤나무에 밤송이가 달렸다.

이웃을 불러 말했다.

"자네 이 밤 맛 좀 보게나. 후손을 위해 한 일이 날 위한 것이 되어 버렸군."

 

홍언필(洪彦弼)의 아내가 평양에 세 번 갔다.

어려서 평양 감사였던 아버지 송질(宋軼)을 따라갔고,

두 번째는 남편을 따라갔으며,

세 번째는 아들 홍섬(洪暹)을 따라갔다.

아내가 처음 갔을 때 장난삼아 감영에 배를 심었고,

두 번째 갔을 때는 그 열매를 따 먹었다.

세 번째 갔을 때는 재목으로 베어 다리를 만들어 놓고 돌아왔다.

세 이야기 모두 '송천필담(松泉筆譚)'에 나온다.

 

너무 늦은 때는 없다.

예순만 넘으면 노인 행세를 하며

공부도 놓고 일도 안 하고 그럭저럭 살며 죽을 날만 기다린다.

100세 시대에 이런 조로(早老)는 좀 너무하다.

씨를 뿌리면 나무는 자란다.

설사 내가 그 열매를 못 딴들 어떠랴.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