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양식/시사,칼럼

[조용헌 살롱] 주머니 속의 작은 종교 / 無財八字

풍월 사선암 2018. 4. 3. 00:32

[조용헌 살롱] 주머니 속의 작은 종교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1980년대에 나왔던 이어령 선생의 책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제목 자체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축소지향'이라는 표현이 그렇다. 일본 사람뿐만 아니라 인류 문화 자체가 축소(縮小)를 지향하지 않았나 싶다.

 

종교를 놓고 봐도 그렇다. 작은 종교를 지향하는 게 트렌드이다. 큰 종교가 우주적 신()을 믿는 전통 종교라면, 작은 종교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작은 종교는 돈이다. 자본주의가 발달한 현대로 들어올수록 큰 종교 대신 작은 종교를 신봉한다.

 

특히 유대인들은 '돈은 주머니 속의 작은 종교'라고 부른단다. 뉴욕 맨해튼에서 세탁소를 30년 넘게 운영한 교포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듣는 순간 가슴에 꽂혔다. "이런 말을 어디서 들었느냐?"고 물었더니, 30년 세() 들어 산 건물주가 유대인이었는데, 그 유대인에게 들었다고 한다. 유대인들끼리는 진작부터 '주머니 속의 작은 종교'를 믿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논리는 이렇다. 하늘에 계신 야훼는 너무 멀리 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보이지도 않고 멀리 있으면 믿기 힘들다. 그러나 주머니 속에 계신 신()은 너무 가까이 있다. 손만 넣으면 있다. 눈으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손으로 만져 볼 수도 있다. 지폐 다발을 만질 때의 스킨십을 아는가? 모든 스킨십의 궁극적 경지는 돈을 만질 때 오지 않을까! 이처럼 가까이에 확실하게 존재하는 '물신(物神)'이야말로 너무 좋은 황금신 아닌가!

 

지금 세계는 유대인의 신념 체계를 따라가는 것 같다. 돈을 벌기 위해 불철주야 애를 쓰고, 일구월심(日久月深)으로 고민하고, 자린고비로 축적한다. 돈 앞에서는 의리도 버려 버리고, 명예도 필요 없고, 양심도 던져 버린다. '' 이라는 종교 앞에서 모든 인간적 가치가 초토화되어 버린다.

 

종교는 '절대적 신념 체계'이다. 100%로 믿는 것이다. 돈을 신앙하면 다른 데는 관심이 없다. 타인을 위한 배려 같은 것에 관심이 없게 된다. 돈 밑에서 이미 해탈(解脫)과 구원(救援)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조용헌 살롱] 無財八字

 

강호를 유람하다가 돈이 많은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생년월시(生年月時)를 물어본다. '팔자에 과연 돈이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사주명리학 공부에서 실전보다 더 좋은 교재는 없다. 재물이 풍족한 사람의 90%는 팔자에 돈이 많다고 나온다. 그러나 10%는 팔자에 재물이 없는 것으로 나온다. 이른바 무재팔자(無財八字)이다.

 

옛날에 사위를 고를 때 '무재팔자'는 아주 기피했다. 딸 고생시킬 게 뻔하기 때문이다. 좋은 사주는 재(), (), ()을 모두 갖춘 명조이다. 돈과 벼슬 그리고 학벌()이다. 마치 국··수와 같다. 이 세 가지를 모두 잘해야 한다.

 

세 가지의 첫째 단추가 재물이다. 돈에서 출발한다. 재물이 있어야 벼슬도 살 수 있다. 이를 재생관(財生官)이라고 한다. 그다음에는 관생인(官生印)이다. 벼슬을 하면 학벌도 생긴다. 팔자에 재물이 없으면 이 세 가지의 스리쿠션이 애당초부터 작동되지 못한다.

 

그런데 생년월일시는 무재팔자인데도 현실적으로는 돈이 많은 경우가 10%는 있다. 이건 뭔가? 무재팔자인데 돈이 많은 사람을 겪어 보니 공통점이 발견된다. '돈을 안 쓴다'는 점이었다. 아주 인색하다. 주머니에 돈을 휴대하고 다니지 않는다. 그러니 쓸 돈이 없다. 장부상으로는 천억대가 넘지만 필자에게 밥 사는 수준은 평균 1만원대였다.

 

축령산에서 글 쓰는 방인 휴휴산방(休休山房)에 찾아올 때도 꼭 빈손으로 털레털레 온다. 술 한 병도 없다. 그러고는 오만 가지 것을 시시콜콜하게 다 물어본다. 미안한 기색 전혀 없다. 아주 뻔뻔스럽다. 한국의 주류 사회에서 재물을 많이 축적하려면 이런 뻔뻔을 몸에 익혀야 되는 것인가!

 

무재팔자는 주변에 사람이 없다. 그래도 외형상 돈은 많으니까 뭣도 모르는 사람들만 접근한다. 무재팔자에게 풍파가 닥치면 고립무원(孤立無援)이 된다. 기자회견 할 때도 병풍 쳐줄 사람이 없다. 결국은 돈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사회에 환원하는 게 무재팔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