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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의향서 쓰며 "내 마지막 내가 결정"

풍월 사선암 2017. 10. 24. 14:13

존엄사 시행 첫날60, 의향서 쓰며 "내 마지막 내가 결정"

 

조선일보 입력 : 2017.10.24 03:09

 

문의전화·방문상담 줄이어

큰 병은 없다는 70대 할아버지 "불필요한 치료로 부담주기 싫어"

 

"산소호흡기를 끼고 목숨만 유지한다고 사는 게 아니죠. 불필요한 치료 받느라 가족들에게 부담될 생각은 없습니다."

 

23일 서울 중구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사무실. 정득성(78)씨는 '본인이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될 때 심폐소생, 혈액투석, 인공호흡기, 항암제 투여를 거부한다'는 내용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이름을 정자로 꼭꼭 눌러쓰며 이렇게 말했다. 상담사 노순희씨가 "중요한 서류라 선생님께서 서명할 곳이 많다"고 하자, 정씨는 서류 두 군데에 자필 서명을 했다. 충분한 설명을 들었고, 본인이 직접 작성했다는 내용이다. 사전의향서 작성에 30여 분이 걸렸다.

 

23일 서울 중구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사무실에서 정득성씨가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될 때 심폐소생, 혈액투석, 인공호흡기, 항암제 투여를 거부한다는 내용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있다

 

정씨는 "전립선 비대증을 앓고 있지만 그 외에 아픈 곳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혹시 모를 나중 일을 대비해 이날 사전의향서를 써둔 것이다. 12녀를 둔 그는 "오래전부터 자녀들에게 짐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자녀들에게 내 뜻을 전했고, 아내도 곧 사전의향서를 쓸 예정"이라고 했다.

 

환자 뜻에 따라 연명(延命) 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연명의료결정법(존엄사법)' 시범사업이 시행된 첫날인 이날, 시범사업 기관으로 선정된 단체들은 정씨처럼 사전의향서를 작성하거나 관련 상담을 받으려는 이들로 붐볐다. 실천모임 사무실에는 쉴 새 없이 전화기가 울렸고, 사전의향서를 쓰는 상담자도 줄지어 찾아왔다. 시범사업 기관인 한국웰다잉협회 최영숙 회장은 "오전부터 문의 전화가 쏟아져 전화기가 불통이 됐다""우리 기관을 통해서만 수십 명이 사전의향서를 썼다"고 했다. 사전의향서를 쓰지 못한 채 임종을 앞둔 환자가 연명 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연명의료계획서' 시범사업도 이날부터 시행됐다.

 

사전의향서를 작성한 이들은 주로 '가족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상담사 노순희씨는 "치료비 등 경제적인 부담도 있지만, 그보다 자녀에게 '부모 생명을 계속 이어가게 할 것이냐 말 것이냐'라는 어려운 선택을 강요하고 싶지 않다는 분들이 더 많다. 곤란한 결정을 미리 본인 손으로 끝내 두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존엄한 죽음'을 위해 사전의향서를 작성한 이도 적지 않다. 이날 사전의향서를 작성한 이모(·60)씨는 "자식은 '나중에 돌봐드릴 수 있다'며 오히려 서운해했다"면서 "그러나 세상을 떠날 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지 나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시범사업 기관인 각당복지재단의 오혜련 상임이사는 "많은 분이 사전의향서에 관심을 보였지만, 여전히 자녀 눈치를 본다거나 사전의향서 제도가 악용될 소지를 걱정하는 경우가 있다""전문성 있는 상담 인력을 양성해 제도 취지를 잘 설명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환자가 연명치료 결정"23일부터 존엄사 가능한 '웰다잉법' 시범사업 시행


조선일보 입력 : 2017.10.22 15:36

보건복지부는 내년 회복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스스로 연명 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웰다잉(Well Dying)의 본격 시행을 앞두고 1023일부터 내년 115일까지 13개 기관에서 시범사업을 실시한다고 22일 밝혔다.

 

웰다잉법(연명의료결정법)은 회복 가능성이 희박한 환자가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1명으로부터 임종 과정에 있다는 의학적 판단을 받은 후 연명의료(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인공호흡기 착용)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하는 것이다. 지난해 제정됐고, 내년 2월부터 시행된다.

 

오는 23일부터 진행되는 시범사업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작성·등록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및 이행 등 2개 과정으로 진행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 성인이면 병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나 상담하고 작성할 수 있다. 각당복지재단, 대한웰다잉협회, 사전의료의향서실천모임, 세브란스병원, 충남대병원 등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작성·등록 시범사업 기관으로 참여한다.

 

연명의료계획서는 말기·임종 과정 환자가 작성한다. 강원대병원, 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고려대 구로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세브란스병원, 영남대의료원, 울산대병원, 제주대병원, 충남대병원 등이 작성·이행 시범사업 기관이다.

 

시범사업 기간 중 작성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는 모두 법적으로 유효하다. 내년 2월 운영이 개시되는 연명의료계획서 등록시스템에 정식 등재돼 관리된다. 환자의 의사에 따라 연명의료 중단이 실제로 이뤄진다. 다만 환자 가족 전원의 합의를 통해 환자의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하는 결정은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기 전인 점을 고려해 이번 시범사업에서 제외된다.

 

웰다잉법은 말기 환자 등의 가족이 회생 가능성이 낮은데도 의료비, 간병 등에 대한 부담을 짊어져야 하고, 사회적으로도 의료기기나 의약품의 도움 없이 생존이 어려운 환자에게 의료서비스가 계속 제공되는 것이 옳은지 논란 끝에 지난해 제정됐다.

 

현행법은 임종 과정에 있는 사람에게 이 같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의료진 등에게 '살인방조죄'로 책임을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