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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 앞서 뻐끔뻐끔… 담배광장 된 역광장

풍월 사선암 2017. 2. 28. 23:25

정문 앞서 뻐끔뻐끔담배광장 된 역광장

 

[서울·용산·청량리·영등포 기차역 광장, 흡연자의 해방구로]

 

금연구역 아니고 흡연부스 있어 승객·인근 직장인 떼지어 피워

꽁초·가래침투성이민원 빗발

 

지난 15일 오전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한 박선영(·32)씨는 서울역 광장으로 나오다가 네 살배기 아들의 코를 손으로 가려야 했다. 서울역 정문에서 불과 20m 떨어진 흡연부스 주변이 담배 연기로 가득 찼기 때문이다. 흡연부스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5명에 불과했고 바깥에서 30여명이 담배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흡연부스 주변에는 담배 꽁초와 가래침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박씨는 "남녀노소가 모두 이용하는 역 정문 바로 앞에 흡연부스를 설치한 이유가 대체 뭐냐. 바깥에서 담배를 피우게 놔둘 거면 흡연부스는 왜 만든 것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하루 수만명이 이용하는 서울시내 기차역(서울·용산·청량리·영등포) 앞 광장들이 흡연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기차 탑승객들과 광장 인근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이 수십명씩 떼를 지어 담배를 피우는 통에 흡연부스 주변이 연기 자욱한 ‘너구리 굴’로 변해버린 것이다. 간접흡연에 대한 민원도 빗발치고 있다. 청량리역 관할 구청인 동대문구 보건소 관계자는 동대문구에서 간접흡연 관련 민원이 가장 많은 곳이 청량리역 앞 광장”이라며 매일 항의 전화가 쏟아진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서울역 정문 앞 흡연 부스 바깥에서 수십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흡연자들이 내뿜는 담배 연기 때문에 서울시내 기차역을 이용하는 하루 수만 명의 이용객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기차역 광장이 흡연자들의 아지트가 된 까닭은 금연구역으로 지정돼 있지 않은 데다 흡연부스도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금연구역은 국민건강증진법에 의해 지자체 조례로 정해지는데 기차역 광장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한 지자체는 현재까지 한 곳도 없다. 서울시는 2011670곳이었던 금연구역을 지난해 말 16984곳으로 대폭 늘렸지만 기차역 광장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하지는 않았다. 서울역과 용산역을 관할하는 용산구청 관계자는 기차역 광장은 흡연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함께 이용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금연구역으로 지정하지 않고 있다”꾸준히 금연 캠페인을 벌여 비흡연자의 건강을 보호하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철도공사는 흡연 관련 민원이 계속되자 2013년 말부터 서울역 광장에 흡연부스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기차역 광장이 금연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흡연부스 밖에서 담배를 피우더라도 단속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15일 서울역 흡연부스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김민석(32)씨는 흡연부스 안은 너무 좁고 환기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비흡연자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서울역 이용 승객인 임산부 홍모(·24)씨는 광장은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공공시설인데 흡연권보다 혐연권(嫌煙權)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태아에게 안 좋은 영향이 미칠까 봐 역에 갈 때는 광장 외곽을 빙 둘러 간다”고 말했다. 한국금연운동협의회 우준향 사무총장은 기차역 광장 전체가 금연구역 지정이 안 된다면 광장 구석 등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는 곳에 흡연부스를 만들어 이곳에서만 담배를 피우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2015년 이후 베이징 시내에 있는 기차역 광장 전체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고 적발 시 200위안(34000)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일본 역시 기차역 광장에서의 흡연은 지정된 실내 부스에서만 허용하고 있다.

 

흡연자들은 흡연 가능 공간이 줄어들고 있는 마당에 기차역 광장에서까지 눈치 보며 담배를 피워야 하냐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용산역 인근 아이파크몰에서 근무하는 정모(46)씨는 사무실은 물론 이젠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도 금연구역이 돼 흡연할 수 있는 장소가 용산역 광장밖에 없다”고 했다. 신민형 한국담배소비협회장은 담배 소비자들을 범죄자 보듯 바라보는 문화는 바람직하지 않다”환기 시설이 잘 갖춰진 흡연부스가 설치된다면 기차역 광장에 나와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훨씬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입력 : 2017.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