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생활글

아내가 나가서 놀라고 한다

풍월 사선암 2016. 8. 3. 23:54

아내가 나가서 놀라고 한다.


대기업 임원으로 근무하다 은퇴한 분의 이야기다. 은퇴하던 날 느닷없이 아내가 고마워지더란다. 이토록 명예롭게 은퇴하는 것이 다 아내의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와 지방을 전전하느라 가족과 함께 지낸 날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도 자식들이 번듯하게 자라준 것은 다 아내 덕분이다.

 

선배는 그날 결심했다. 나머지 세월은 아내를 위해 살겠다고. 그날 이후 선배는 아내와 국내외 여행, 골프 여행을 쉬지 않고 다녔다. 젊은 시절 고생한 만큼 그 정도 여유는 있었다. 백화점에서 아내의 핸드백을 들어주고, 아내가 사고 싶은 옷을 결정할 때까지 기다린다. 스커트 하나 사는데도 아내의 결정은 여전히 오래 걸렸다.

 

이전 같으면 이내 짜증내고 돌아섰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다지 못할 일도 아니었다. 아내도 즐거워하는 듯했다. “, 이렇게 사는 것이 행복이로구나! 이런 노후가 있으려고 내가 그렇게 고생을 했구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한 석 달이 지났다. 어느 날 아침 식탁에서 갑자기 아내가 진지한 얼굴로 할 말이 있단다. 그리고 답답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당신 이제 좀 혼자 나가서 놀 수 없어?” 아내의 생각은 달랐던 거다. 평생 고생한 남편을 위로하느라 참고 함께 다녔다는 거다. 하나도 재미가 없었지만 참고 따라 다녔을 뿐이었단다.

 

그는 내 앞에서 한숨만 푹푹 쉬었다. 이제 어쩌면 좋으냐는 거다. 회사가 있고 함께 몰려다닐 동료가 있을 때는 이런 아내의 푸념 정도야 웃어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아내와 앞으로 적어도 30년은 더 살아야 할 것 아닌가.

 

흔히들 착각한다. 열심히 일하면 나중에 행복해질 거라고. 그러나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행복해질 수 없다. 도대체 행복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행복해질 수 있도록 애쓰지 않겠는가? 아내와도 마찬가지다. 함께 행복했던 기억이 있어야 행복해질 것 아닌가? 경험도 없고 방법도 모르는데 어떻게 갑자기 행복해질 수 있겠는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카네만 교수는 행복을 아주 간단하게 정의한다. “기분 좋은 시간이 길면 길수록 행복하다.” 부부도 마찬가지다. 동네 어귀를 손잡고 산책하거나 노천카페에 앉아 함께 커피를 마실 때 기분이 좋았다면 그 일을 반복하면 된다. 팔짱 끼고 음악회를 가던 일이 좋았다면 그 일도 다시 해볼 만하다.

 

잘 차려 입은 아내를 본 기억이 정말 오래되지 않았는가? 함께 시간을 보내야 행복할 거라는 강박에서도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따로 또 같이’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죽을 때까지 정말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지도 모르고 죽는 것이 태반이다.

 

재미에 대한 환상을 버리면 된다. 세상이 뒤집어지는 재미만 기대하니 소소한 일상의 재미는 별로다. 세상이 자주 뒤집어지지 않으니 맨날 폭탄주로 내 속만 자꾸 뒤집는 거다.

 

내 친구는 새소리 듣는 게 그렇게 재미있단다. 소리만 듣고 50여 종류의 새를 구별할 수 있단다. 그러니 새소리만 들으면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기분 나쁠 때면 새소리를 들으러 가면 된다. 언제든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세상은 온통 재미있는 일 천지다.

 

다 늙어서 “나가 놀아라.”는 말을 듣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것부터 분명히 알아차려야 한다. 그래야 아내도 나를 귀찮은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내가 재미있어 해야 아내도 함께 있는 것을 행복해 한다. 혼자서도 재미있게.

 

50대 이상 여자들 대상으로 가장 인기 있는 남편이 ‘요리 잘 하는 놈’, ‘싹싹한 놈’, ‘집안 일 잘 도와주는 놈’, ‘가정적인 놈’, ‘잘 생긴 놈’, ‘힘 좋은 놈’도 아니고 ‘집에 없는 놈’이었단다. 여자 입장에선 지금 있는 자리가 최고인 것 같죠? 권력을 누리니 무서운 게 없고, 가진 게 많으니 자신만만한 것입니다.

 

좋습니다. 권력도, 재산도, 지위도 높았는데 그대가 그 자리를 떠났을 때 혼자 노는 방법을 모른다면, 머지않아 함께 사는 반쪽도 당신을 귀찮아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손자들이나 봐야 하는 지옥의 문에 입장하는 불행한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거의가 지옥문에 들어가셔서 그 중노동을 행복이라고 착각하고 살다 가신 불쌍한 분들입니다.

 

좋은 인연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래도록 함께 할 인연을 만들어 가세요. 놀아주는 사람 없는 노년은 불쌍하기 그지없습니다. 명심해야 합니다. 혼자 노는 방법과 나이 들어도 어울릴 수 있는 벗들을 젊을 때 꼭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또 그 벗들을 가족만큼이나 소중히 대해야 한다는 것을. 지금 함께 어울리고 있는 친구는 보물보다도 값진 존재라는 것을.

 

 

혼자 사는 방법을 찾아 두자

 

어느 날 아내와 석촌호수 산책길에서 외롭게 벤치에 앉아 있는 81세의 노인 곁에서 잠시 쉬면서 대화를 나눴습니다,

 

대구에서 살다가 올봄에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난 후 대구 재산 정리하고 서울에 사는 아들집에 와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하시는 말씀이 요즘 세상 늙은 사람 좋아하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효도한다는 말 자체가 젊은 사람들에게 ‘금기어’가 된 세상인데 대구에서 혼자 사는 게 마음이 편할 것인데 잘못 올라 왔다고 후회 하고 있었습니다.

 

아들 집에서 일주일 살기가 일 년을 사는 것 같다고 합니다. 늙은 사람 생활 방식하고 젊은 사람의 사는 방식이 너무 다르고 서울에는 친구들도 없어 어울릴 사람도 없어서 혼자 석촌호수에서 보내는 것이 일상생활의 전부라고 합니다.

 

자식의 좋은 금슬이 자기 때문에 깨질까 봐 말과 행동이 조심스럽기만 하답니다.

 

아들 출근하고 나면 며느리와 좁은 아파트 공간에 있을 수도 없고 그래서 이곳에 나와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가지고 있던 재산은 아들 아파트 사는데 모두 주고, 돈이 없는데 아들이 용돈을 주지 않아 점심마저 사 먹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 모습이 몇 년 후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했습니다. 오래 살려고 매일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지만 노후에 자식에게 얹혀서 저 노인과 같이 사는 삶이라면 오래 산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조금가다 보니까 이번에는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며느리가 손잡고 걷고 있었습니다. 매우 보기가 좋아 뒤 떨어져 가는 손녀에게 할머니냐고 아내가 물었더니 그 손녀가 하는 말이 “자기 집도 있는데 우리 집 와서 매일 엄마 저렇게 괴롭힌다네요?” 어린 손녀는 지금 할머니 집을 자기 집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손녀는 아마도 할머니를 남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아내가 하는 말이 “여보! 우리가 더 늙더라도 절대 아들집에 얹혀 살 생각은 하지 말아요~! 부모가 늙으면 다 짐이라고 생각하나 봐요? 우리 자식들도 저 사람들과 똑같을 수도 있어요. 내가 죽더라도 당신 혼자 살아야 해요. 자식들의 짐이 되지는 마세요.” 혼자 사는 방법을 반드시 터득해 두어야 할 것 같다.

 

- 옮겨온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