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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청지(华清池), 장한가(長恨歌)

풍월 사선암 2016. 4. 30. 15:12

 

 

 

 

 

 

 

 

 

 

 

 

 

 

 

 

 

 

 

 

 

 

 

 

화청지와 장개석

 

화청지는 현종과 양귀비의 로맨스만 있었던 곳이 아니다. 근대 중국에 있어서 격변기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것은 중국역사의 한 획을 그은 서안사건(西安事件)’이 바로 이곳 화청지에서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서안사건이란 무엇일까.

 

서안사건은 19361212일 중국 동북지방의 군벌인 장학량(사진,아래 왼쪽 첫번째)이 국민당 총통인 장개석을 섬서성의 성도인 서안의 화청지에서 납치하여 구금하고 항일전에 전력을 기울일 것을 요구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국민당은 중국공산당토벌을 중지하고, 그 대신 일본에 대항하는 국공합작을 추진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동아시아 정세는 급변하였는데, 그 사건의 시발지가 바로 화청지인 것이다.

 

그 때 당시 장개석이 서안을 방문하였을 때 화청지에서 머물렀는데, 장학량군이체포하러 왔을 때 여산으로 피신하였다가 붙잡혔다고 한다. 지금도 화청지에는 오간청(五間廳)’이라 하여 장개석이 사용하던 물품과 침실, 집무실, 회의실, 비서실, 접견실등 다섯가지 방이 고스란히 보존 되어 있다.

 

 

 

 

 

 

 

 

 

 

 

 

당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그린 '장한가(長恨歌)'

 

화청지의 주인공 양귀비는 어떤 인물일까?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양귀비는 중국 당나라시대 일곱번째 황제인 현종의 부인이었다고 한다. 원래 현종의 18번째 아들에게 시집을 갔으나 현종이 양귀비를 빼앗아 간 것이라 한다. 즉 며느리를 아내로 삼은 것이다. 그때 당시 양귀비의 나이가 22세이고, 현종은 56세이었다.

 

그런 양귀비에 대하여 세상의 이목이 두려워서일까 현종은 양귀비를 5년간 절에 살게 한 후 27살에 궁전으로 데리고 왔는데, 37살에 안록산의 난으로 죽을 때 까지 15년간을 함께 한 것이다.

 

당현종이 모든 정사를 팽개치고 양귀비와 화청지에서 즐긴 것과 양귀비가 죽고 나서 눈물로 낮과 밤을 지새운 현종의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를 한편의 긴 시로 표현하였는데, 이것이 유명한 백거이의 장한가이다.

 

장한가는 모두 세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은 애절함의 극치이다. 양귀비를 잃고 낮과 밤을 쓸쓸함으로 보내는 현종은 죽어서 신선이 되는데, 죽어서 선녀가 된 양귀비와 일년에 한 번 밖에 보지 못한다는 칠월칠석날 오작교에서 만난다는 애절한 이야기를 시로서 표현한 것이다.

 

上天願作比翼鳥 (상천원작비익조) 在地願爲連理枝 (재지원위연리지)

하늘에선 날개를 짝지어 날아가는 비익조가 되게 하여주고, 땅에선 두 뿌리 한 나무로 엉긴 연리지가 되자고 언약했지요.

(백거이, 장한가)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어 영원한 사랑을 하자고 다짐한 것이다. 여기서 비익조(比翼鳥)’는 암 수가 각각 눈 하나와 날개 하나씩만 갖고 있어서 두 마리가 한 몸이 되어야만 날아갈 수 있다는 새이고, ‘연리지(連理枝)’는 두개의 가지가 서로 얽혀 하나로 된 나무를 말한다.

 

이런 애절한 전설속의 장한가는 화청지에서 되살아났다. 화청지와 여산 전체를 무대로 하여 엄청난 스케일의 중국식 오페라 공연을 매일 밤 펼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