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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대맛 라이벌] (3) 족발

풍월 사선암 2014. 12. 19. 17:53

[맛대맛 라이벌] (3) 족발

 

족발은 야식, 또는 술안주로 사랑받아온 친근한 음식입니다. 젤라틴이 풍부해 피부에 좋다고 알려져 여성에게도 인기가 높습니다. 사실 족발은 비타민 B가 많아 피로회복에 좋고 불포화지방산이 충분해 혈관내 콜레스테롤이 쌓이는 걸 막는다고 합니다. 족발 거리가 생길 정도로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족발집 가운데 江南通新 독자가 뽑은 서울 최고의 족발집 두 곳을 소개합니다. 50년동안 전통을 고수하고 있는 전통 족발집과 새로운 방식으로 젊은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곳입니다.

 

평안도족발은 생강으로 잡내를 잡고 외간장으로 간을 내는 전통식 족발이다. 이경순 할머니는 이 방법으로 족발 최강달인으로 인정받았다.

 

"족발집은 족발만 맛있으면 돼"

 

건강에 좋다고 한약재 넣고, 고기 부드럽게 한다고 또 뭘 넣고 그런다는데 다 필요 없어. 족발에서 제일 중요한 건 돼지 냄새 없애는 거야. 생족(生足)을 깨끗이 씻고 삶을 때 생강을 적당히 넣으면 냄새는 충분히 잡혀. 거기에 싱겁지도 짜지도 않게 간장 비율을 잘 조정해 간을 하면 되고. 특별한 재료가 어딨어. 족발은 그냥 족발처럼 먹는 게 제일 맛있는 거야.”

 

너도 나도 원조라는 장충동 족발가게 사이에서 진짜 원조로 알려진 평안도족발 주인 이경순(80) 할머니는 40여 년 지켜온 이 두 가지 원칙이 맛의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내 족발이 최고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우리 집은 반찬도 간단해. 무채김치랑 새우젓·동치미·된장·고추마늘·상추 이게 끝이야. 어떤 손님은 와서 어딘 계란찜도 주고 또 어디는 된장찌개도 준다면서 투덜대는데 그게 좋은 사람은 그걸 주는 데 가서 먹으면 되는 거야. 족발집은 족발만 맛있으면 돼.”

 

◀이경순 할머니(오른쪽)와 조카며느리 홍순옥(55) .

 

할머니의 자신감은 옛날부터 유명했다고 한다. 10여년 전 한 대학 교수가 와서 족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했다가 할머니에게 한 소리 들은 후 오히려 단골 겸 절친이 됐다고 한다. 이 할머니는 무슨 대학 교수라는 양반이 와서 하도 으스대며 잘난 척 하길래, 당신이 아무리 교수라지만 난 이 장사해서 밥 먹고 사는데 족발에 관한한 잘난 척하지 말라고 했다그랬더니 이렇게 자신있게 장사하는 집은 처음이라며 오히려 지인에게 적극 추천하고 자기도 단골이 됐다고 말했다.

   

사실 평안도족발은 이 할머니의 손윗동서가 1962년 시작했다. 평양이 고향인 형님은 지금 가게 근처에서 간판도 없이 빈대떡을 팔았다. 장충체육관이 있어 농구·배구 선수들이 싼값에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빈대떡을 자주 먹으러 왔다. 빈대떡 한 장에 10, 소주 한 병에 20원 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2~3년 정도 지나 빈대떡에 질린 일부 손님이 다른 걸 좀 팔아보라기에 이북에서 많이 먹던 족발을 팔기 시작했다. 당시 이 할머니는 남편이 하던 택시사업이 어려워져 가정교사하며 빚을 갚고 있었다. 이 할머니는 서울여상 출신이다. 하지만 말 많이 하는 직업 특성상 목이 안 좋아지자 1972년 형님과 함께 장사를 시작했다. 평안도집이란 간판을 내건 것도 그 즈음이다.

 

난 황해도 사람인데 형님이 평안도 사람이라 간판을 평안도집이라고 했어. 이북에서는 날씨가 추워서 돼지고기를 많이 먹었지. 원래 이북사람이 요리도 잘해. 옛날에 이북사람은 호주머니에서 땟국물이 나도 먹는 건 잘 먹고, 서울 사람은 멋쟁이라도 집에 가면 가마니자루 들추고 들어간다는 얘기가 있어. 그 정도로 이북 사람은 먹는 거에 관심이 많고 서울 사람은 멋 내는 거에 관심이 많단 얘기지.”

 

생계를 위해 족발을 팔기 시작했지만 장사는 만만치 않았다. 지금은 손질이 끝난 돼지 생족을 받아 삶지만 당시엔 직접 손질해야 했다. 면도칼로 털을 깎고 불로 그을리고 발톱도 방망이로 두들겨가며 뽑아냈다. 때문에 이 할머니 손은 물집이 잡히고 염증이 생기는 등 온전한 날이 없었다.

 

처음엔 큰 가마솥에 장작을 때서 족발을 끓였어. 나무를 사기도 하고 리어커 끌고 동네 한 바퀴 돌면서 도시계발로 부서진 집 사이에서 나무를 주워오기도 했지. 그러다 형님이 돌아가신 2002년쯤까지 연탄불 썼어. 연탄 불 조절 하려고 형님은 가게서 아예 주무셨지. 그 땐 일이 엄청 많았어. 지금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아.”

 

고된 세월이었지만 지금은 어느 곳에서든 맛을 인정받아 뿌듯하다. 평안도족발은 2007년 허영만 화백의 만화 식객15권에 소개됐다. 이 집 족발을 먹어본 허 화백이 맛에 반해 이경순 할머니 일하는 모습을 만화 속에 그대로 그려넣었다고 한다. 2009년에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족발의 최강달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방송을 타고 이름이 알려지자 손님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고 백화점에선 입점 제안을 했다. 프랜차이즈 제의도 많이 들어왔다고 한다. 하지만 할머니는 모두 거절했다. 지금까지 지켜온 두 가지 장사 원칙 때문이다.

 

첫 번째 원칙은 음식을 남기지 않는 거다. 그 날 삶은 고기는 무조건 그 날 다 판다. 그래서 일부러 조금 모자라게 족발을 준비한다. 빠르면 저녁 8, 보통 9시면 족발이 거의 다 떨어지는 이유다. 장사꾼 입장에서 손해라는 생각을 할 법도 한데 오히려 그게 더 이득이라고 한다.

 

만약 족발이 남아 버리기 아깝다고 다음날 데워서 팔아봐. 손님은 대번 알아. 그럼 그 손님은 다음부터 안 와. 그럼 그게 손해지. 당장 하루에 얼마 못 파는 게 무슨 손해라고.”

 

두 번째 원칙은 세월이 흐르고 맛 유행이 달라져도 본인 방식대로 음식을 내는 거다. 그러기 위해선 분점을 내면 안 된다는 게 이 할머니의 생각이다.

 

솥 하나만 바꿔도 맛이 달라지는데 이 집 저 집 어떻게 같은 맛을 내. 가게가 많으면 처음엔 좋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맛이 달라지고, 그럼 분점 뿐 아니라 본점에도 손님이 안 와. 다 같이 망하는 거지. 그래서 난 그냥 우리 집에서만 장사할 거야.”

 

이렇게 맛에 대한 철저한 고집이 있는 이 할머니에게 마지막으로 맛의 비결을 한 번 더 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아 족발에 무슨 비결이 있어. 그냥 옛날식으로 계속 그렇게 만들고 있는데. 삶을 때 뚜껑을 열고 센 불에 삶아야 냄새가 안 나고, 간장이 골고루 스며들게 한 30분마다 큰 주걱으로 저어줘야 하고, 그게 다야. 삶는 시간은 크기랑 계절에 따라 다르지만 2시간 30~3시간 정도. 우리집은 파주 농장에서 오는 돼지만 써. 초창기때부터 거래하던 집이 있거든. 특별한 건 없어.”

   

"족발은 기본, 만둣국 서비스 다들 좋아해요"

 

점심시간이 끝나고 저녁손님이 찾기 전은 식당이 가장 한산한 때다. 오후 3~5시엔 손님이 없어 아예 문을 닫기도 한다. 하지만 서소문동 만족오향족발집은 오후 3시부터 손님이 밀려든다. 가게 문은 오전에 열지만 오후 3시부터 팔기 시작하는 족발을 사려는 사람들이다.

 

지난 11일에도 오후 3시가 되자 본관(별관이 나란히 붙어있다) 1층이 눈 깜짝할새 사람들로 북적였다. 게다가 여느 족발집과 달리 손님 대부분은 20대로 보이는 젊은이다. 여성도 꽤 많았다.

 

가게 운영한 지 18년쯤 됐어요. 10년 전쯤인가. 가게를 한 번 옮길 기회가 있었죠. 그때 문득 왜 족발은 꼭 허름한 벽지 발라진 옛날 시장통 분위기에서 먹어야 할까라고 생각했어요. 깔끔하고 예쁜 가게를 만들어 어르신 뿐 아니라 젊은이나 가족단위로도 찾는 족발집을 만들자고 결심했죠. 실내장식에만 7000만원 넘게 썼어요. 당시로선 꽤 큰 돈이에요.”

 

이한규(42) 만족오향족발 대표는 199624살 젊은 나이에 장사를 시작했다. 그 전에 용접이나 기계제작 같은 일을 했는데 늘 마음 한편에 장사에 대한 꿈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88년부터 만두와 족발을 팔던 형이 그에게 가게를 맡지 않겠느냐고 제의를 했다.

 

경기도 살 때였는데 그 말 듣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서울로 올라왔어요. 직접 보니 만두보다 족발이 제 적성에 더 맞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족발에 집중했죠. 초창기엔 가게가 좁아 일식집같은 바(bar) 형태였어요. 바로 손님 앞에서 족발을 잘라 주면서 대화를 나누곤 했는데 하루하루가 정말 행복했어요.”

   

이 대표는 장사는 처음이었지만 여느 가게와 똑같은 방식으로 팔기는 싫었다. 당시 족발은 옛날 전통방식이 대부분이었다. 달지 않고 약간 돼지 냄새가 나는 장충동식 말이다. 그는 궁리끝에 젊은 층 입맛을 사로잡으려고 단맛을 더했다. 중국요리 오향장육에 흔히 들어가는 향신료 팔각이외에 육질의 쫀득함을 더하는 비밀재료도 개발했다.

 

노력은 인정받았다. 금방 맛집으로 소문났다. 하지만 이 대표는 또 고민에 빠졌다. 손님상에 내면 10분 만에 식어버리니 다 먹을 즈음엔 맛없는 족발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족발을 끝까지 따뜻하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식탁에 열판을 설치하고 열전도가 빠른 놋그릇에 족발을 담아내는 지금의 방식이 탄생했다.

 

하지만 손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건 서비스로 주는 떡만둣국이다.

 

이 주변에 사무실이 많아서 옛날부터 저녁엔 술 한잔 하는 회사원이 많았어요. 대부분 저녁 6~7시쯤 퇴근해서 밥 안 먹고 술과 안주만 먹잖아요. 그러곤 다음날 속 아파서 쩔쩔 매고. 사실 저도 술을 무척 좋아해서 그 기분을 알지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우리 집이 원래 만두집이었던 거예요. 만두를 만들 줄 알고 하니 떡만둣국을 주면 좋을 것 같더라고요. 사실 주인 입장에선 콩나물국이나 미역국보단 가격이 좀 비싸지만 반찬 몇 개 빼고 내놓으면 손님이 식사겸 든든하게 먹을 수 있으니 좋잖아요.”

 

이한규 대표는 젊은층 입맛을 잡기 위해 족발에 단맛을 더하고 특별 소스도 개발했다.

 

이 집의 또 한가지 특징은 새우젓이 없다는 거다. 대신 직접 개발한 새콤달콤한 특제 마늘소스를 내놓는다. 이유가 있다. 족발을 2시간 이상 충분히 삶기 때문에 새우젓이 없더라도 돼지고기를 소화하는 데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족발을 새우젓과 같이 먹는 건 두 재료의 궁합이 잘 맞아 소화를 돕고 체하는 걸 막아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우젓 없이도 소화가 잘 되니 굳이 새우젓을 안내는 거다. 대신 맛을 돋울 수 있는 소스를 낸다.

 

이런 독특함이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블로그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집이 자주 오르며 지금은 항상 줄을 서야 할 정도다. 매장 밖에서 기다려야 하지만 추운 한겨울에도 금요일이나 주말에는 여지없이 긴 줄이 늘어서 있다. 평균 30~40분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시간이 계속 늘자 줄을 안 서도 되는 예외고객기준을 만들었다. 임산부나 24개월 미만 아이를 동반한 일행, 90세 이상 노약자는 줄을 서지 않고 자리가 나면 바로 먹을 수 있다. 생일 맞은 고객에게는 사이드 메뉴를 서비스로 주기도 한다.

 

만족오향족발은 현대·신세계 백화점 5개 매장과 구로 직영점 등 7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일부에선 매장별로 맛이 다를 거라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사실 음식이라는 게 똑같은 사람이 만들어도 아침 다르고 저녁 달라요. 날씨나 온도에 따라 또 영향을 받고요. 모든 매장 맛이 어떻게 정확히 일치하겠어요. 그 차이를 최소화하는 거지. 그래서 저희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각 매장 매니저들이 모여 맛에 대한 의견을 나눠요. 그리고 2명의 메뉴바이저(메뉴 관리·교육하는 사람)가 각 매장을 수시로 돌며 맛을 평가해요.”

 

식재료는 국내산의 1.8kg 크기 내외의 생족(生足)만 쓴다. 크기가 제각각이면 삶을 때 양념이 배어드는 것에도 차이가 있을 수 있어서다.

 

이 대표는 이렇게 재료를 깐깐하게 관리하고 있는데 가끔씩 손님들이 캐러멜색소 쓰는 게 아니냐고 물으면 속상하다고 말했다. 특히 성향이 깐깐한 현대백화점 본점 고객은 만족오향족발이 조금 달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더 많이 한다고 한다.

 

솔직히 18년 전 초창기에 한 번 써봤어요. 대체 어떤 효과가 있는지 궁금해서. 그런데 굳이 그걸 안 쓰고도 더 맛있는 맛을 낼 수 있는 노하우가 있는데 왜 쓰겠어요. 제 경영철학이 내 아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자는 거예요. 지금도 애들이랑 우리 가게에서 같이 족발이랑 만두 먹어요. 안심하고 드셔도 됩니다. ,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족발은 5~6mm 정도의 두께가 가장 맛있어요. 입에 넣었을 때 씹히는 식감도 좋고 적당한 육즙도 나오죠.”

 

[중앙일보] 입력 2014.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