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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풍월 사선암 2014. 12. 7. 16:32

정윤회 스캔들은 정당정치의 한계 공공토론 활성화돼야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

 

4일 이재영 새누리당 의원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는 샌델 교수. 그는 정의는 하나를 위해 하나를 희생하는 개념이 아니다라며 효율성을 위해 노동자를 착취하는 대신 노동자가 좋은 환경에서 효율적으로 일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샌델은 중앙SUNDAY 독자들에게 기념 사인을 남겼다.

 

정윤회 문건 유출 파동을 정의롭게 해결하는 방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답을 줄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정치 스캔들이 터질 때일수록 한국 시민들은 보다 근본적인 가치의 문제, 이를테면 양극화 해소나 청년실업을 주제로 토론을 벌여야 한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지난 4여의도 정치의 현장인 국회를 찾았다. 새누리당 이재영 의원(강동을)의 초청으로 방한한 그는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한국뿐 아니라 미국과 전 세계에서 정당들이 정쟁에만 몰두해 시민들이 정치에 환멸을 느끼는 현상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당정치의 한계를 벗어나려면 대학과 언론,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공공토론과 도덕교육에 보다 많은 사람이 참여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국 국회는 여야 간의 극단적인 대립으로 악명 높다. ‘정의가 구현될 길이 있을까.

 

“(웃으며) 미국 의회도 똑같이 심각한 파벌주의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뿐 아니다. 현재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올바르게 작동하지 않고 있다. 끊임없이 정쟁을 일삼는 정치인들 때문에 시민들이 정치에 대한 불만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는 정당한 불만이다. 전 세계 시민이 원하는 건 하나다. 정당 지도자들이 의견 대립을 극복하고 공익 향상에 힘쓰는 거다.”

 

기존 정당 토론 주도할 능력 없어

 

-하지만 표를 원하는 정치인들이 정쟁을 중단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그래서 나는 정치 토론의 환경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파벌주의와 분열 대신 정의와 공공선이 무엇인지 효율적으로 토론하는 장을 상설화해야 한다. 미국과 한국, 유럽과 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 보듯이 정당은 이런 토론을 주도할 능력이 없다. 대학과 언론, 시민사회가 나서야 한다. 이들이 정의와 공공선을 토론하는 장을 세우면 시민들은 정치인들에게 개혁을 요구할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언론·시민사회가 토론의 장을 만든 적은 많다. 그러나 정치인의 행동을 바꿀 만큼 단일하고 강한 목소리를 내진 못한 것 아닌가.

 

동의한다. 하지만 나는 시민사회가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하는 장을 만드는 데 집중하면 충분하다고 본다. 모든 사회는 다원성을 가진다. 정의와 공익의 의미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걸 우선 인정하고, 토론에 임해야 한다. 대학은 학생들이 논리적이고도 예의 있는 자세로 토론을 벌이게끔 교육해야 한다. 언론도 정치인의 말을 중계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정의나 공공선 같은 주제로 논쟁하는 지면을 자주 선보여야 한다.”

 

-대학·언론이 나선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진짜 큰 문제는 경제논리가 토론을 밀어낸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공개 토론은 경영기법이나 첨단기술 같은 편협한 이슈만 다룬다. 이러면 안 된다. 공개 토론의 중심에 가치와 윤리에 대한 질문을 가져와야 한다. 여기에 대학과 언론의 역할이 있다. 안 그러면 정당들은 목소리 큰 쪽이 승자란 생각으로 소리 지르기 대회만 벌일 것이다. 정당이 아니라 파벌만 남게 될 거다.”

 

-요즘 한국은 박근혜 대통령의 과거 측근인 정윤회씨가 청와대 비서관들과 만나 국정을 농단했다는 의혹으로 떠들썩하다.

 

민감한 문제다. 내용을 몰라 구체적인 조언은 해줄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사건이 터질 때 신문의 헤드라인이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지는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가 거론돼야 한다. 청년실업·양극화 해소 방안이나 복지·성장의 선순환 같은 실질적이고 긴급한 질문을 다뤄야 한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대통령을 둘러싼 스캔들이 터지면 언론은 거기에만 신경을 집중한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언론과 시민사회는 정당정치의 한계를 지적하고 본질적인 정책 이슈를 토론해야 한다.”

 

-“권력 스캔들이 터졌는데 가치·정책만 따지는 건 부적절하다는 반박도 있을 듯싶다.

 

그럴 것이다. (스캔들 와중에) 정책 토론을 벌이는 걸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런 의견 대립이야말로 정의를 바라보는 데 여러 시각이 존재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떤 이는 개인의 자유에 비중을 두는 반면 다른 이는 시민의 의무를 중시한다. 그렇기에 이런 스캔들이 터질 때 정책 논쟁을 벌이는 것이야말로 정말 할 일이다.”

 

-야당은 청와대 스캔들부터 해결하지 않고는 정책을 논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한국 정치를 충분히 알지 못하지만 나는 2년 전 대선 당시 여야 모두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내건 점에 희망을 느낀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균형을 추구하는 경제민주화는 민주주의의 본질적 가치를 구현한 것이다. 여야 모두 이를 들고 나온 건 한국 정치가 발전한 증거다. 물론 경제민주화 각론에선 여야 간에 이견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견을 두고 여야가 논쟁을 벌일수록 정치가 건강해진다.”

 

스캔들 터질수록 정책토론 집중해야

 

-한국인들에게 정치는 혐오의 대상이다. 정치가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가 될 수 있나?

 

나는 한국을 이미 다섯 차례나 찾아 정의란 무엇인가를 놓고 강의를 했다. 그때마다 내가 청중과 소통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토론에 참여한 한국인들의 욕구와 의지가 놀랍도록 뜨거웠기 때문이다. 이런 시민이 있는 나라라면 정치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요즘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권에선 서양적 가치를 넘어선 아시아적 가치를 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서양적 가치와 동양적 가치가 따로 있다는 주장에 반대한다. 오히려 동서양이 각자의 전통을 뛰어넘어 대화해야 한다고 본다. 나는 내가 가르치는 하버드대 학생들과 중국·인도·브라질의 학생들을 온라인으로 연결해 토론을 시켰다. 그 결과 4개국 학생들 모두 한 차원 높은 깨달음을 얻었다. 한국도, 미국도 이런 토론을 통해 동서양을 구별하는 편견을 깨고 새로운 가치를 배워야 한다.”

 

-한국은 밀양 송전탑 논란에서 보듯 국가와 지역 간의 이익 갈등도 심하다.

 

스위스 정부가 폐기물 처리장을 산간지대의 한 마을에 세우기 앞서 주민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공익을 위해 당신 마을에 폐기물 처리장을 만드는 데 찬성하나는 질문에 51%가 찬성한다고 했다. 그런데 가구당 100프랑씩 주는 조건으로 폐기물 처리장을 만드는 데 찬성하나는 질문에 20%만 찬성한다고 했다. 시민들의 의식 밑바탕엔 공공선에 대한 상식이 있는 것이다.

 

-남북이 통일되면 어떤 정의가 요구되나.

 

북한 김정은 정권이 그리 오래 유지될 것 같진 않다. 따라서 한국민은 통일 한국에 걸맞은 새로운 정의에 대한 질문에 대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중앙SUNDAY 강찬호 기자 | 404| 20141207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