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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레이로 감성을 포착해내는 예술가 정태섭

풍월 사선암 2014. 8. 24. 12:17

엑스레이로 감성을 포착해내는 예술가 정태섭

이성적인 시선으로 뜨거운 감성을 꿰뚫다

 

어느 중학교 미술 교과서에는 꽃의 빅뱅이라는 작품이 실려 있다. 강남 세브란스병원에서 영상의학과 의사로 근무하고 있는 정태섭 교수의 작품이다. 이제 와서 작품의 정통성이나 작가의 정체성에 대한 판단은 무의미하다. 이미 세상은 통섭과 융화로 미래를 꿈꾸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영화감독 임진평은 아일랜드의 한 허름한 펍에서 발견한 글귀를 자신의 여행 에세이 제목에 차용한다. ‘두 개의 눈으로 보라!’ 의미를 물으니 주인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하나의 눈은 과거를 보고, 다른 하나의 눈으로는 미래를 보라는 뜻입니다. 핍박 받고 힘들었던 과거를 잊지 않으면서 필요하면 그 적들과도 손을 잡아 부국강병을 이루자는 뜻이죠.” 자신의 것을 지키면서 동시에 기꺼이 변화에도 동참해야 한다는 아일랜드 사람들의 정신은 곧 오늘날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시대정신이다. 몇 년 전부터 유행하고 있는 통섭융화도 본질적으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의사인 정태섭 교수의 작품이 단순히 취미에서 그치지 않고 예술적 가치로 인정받아 중학교 교과서에는 물론 ‘2012 서울 핵 안보 정상회의를 위한 전시 작품으로 선정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엑스레이 영상 기술로 담아낸 작품은 언뜻 독특한 표현 방식과 소재들에만 주목하기 쉽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표면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아일랜드의 두 개의 시선의 의미를 고스란히 드러내 통섭과 융화가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의사, 예술의 경계를 뛰어넘다

 

2007년 첫 전시회를 시작한 정태섭 교수는 아트페어에 10, 단체전에는 20회 참가했으며, 개인전도 무려 20회나 열었다. 특히 지난해에는 프랑스 파리 미대 교수의 초대를 받아 AUP(American University of Paris) 내에 있는 콤베 갤러리에서 ‘New Horizons of X-ray Art’라는 주제로 한 달간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이는 단순히 인체의 장기를 들여다보는 기술적 도구를 예술적 도구로 사용하여 새로운 시각에서 사물과 세상을 바라보았다는 사실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입지다. 그의 작품에는 더 큰 힘이 있다. 바로 기교적인 참신성에 사물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철학성을 더하고, 발견한 본질에 따스한 감성과 인간적 시선까지 담아냈기에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물론 이러한 여러 장치는 그가 처음부터 예술가로서의 입지를 위해 의도적으로 넣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그가 한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의 작품이 단순한 엑스레이 영상이 아닌, 사람들의 가슴에 남을 수 있는 예술로서 발현될 수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다.

 

딱딱하고 차갑다고 생각하는 의학, 그중에서도 기계를 다루는 영상의학이 사람의 감성을 움직이는 예술로 승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걸로 큰 보람을 느낀다. 환자들이 병원에 걸린 내 작품을 보며 마음을 위로 받고 의사를 더 가깝게 생각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2011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 중에서-

 

또 하나의 시선으로 한계를 허물다

 

정태섭 교수는 세종대왕 기념 사업회나 새 화폐 과학자 얼굴 올리기 운동에도 참여했으며, 어린이 과학책 칼럼니스트와 어린이 과학방송의 MC로도 활약하고 있다. 별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그는 환자들을 위해 병원에서 별 관측 행사도 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본분을 벗어난 활동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다방면의 활동이 종국에는 의사로서의 한계를 뛰어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의사는 가장 위급한 상태의 사람들을 만나기에 환자의 생명과 삶을 그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는 감성이 요구되는 직업입니다. 결국 아픈 이를 낫게 하는 것은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한 과정입니다. 단순히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느끼던 환자가 즐거움을 얻도록 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차가운 머리만큼 따뜻한 감성이 필수입니다.” -2011EBS <명의> 중에서-

 

철학에서 수학, 천문학, 의학 같은 수많은 학문이 갈라져 나오고, 이후 예술과 종교까지 분리되면서 인류의 역사가 발전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역사의 발전이 둔화되기 시작할 무렵 많은 석학들은 새로운 성장을 위해 학문 간의 통섭과 융화를 외치기 시작했다. ‘짬짜면이나 믹스매치로 이해하기에는 부족한 원리를 어떻게 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정태섭 교수는 새로운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볼 뿐 아니라 스스로가 두 개의 시선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의 방식으로 의술과 예술 두 분야에서 그 자신의 한계를 허물어뜨리고 스스로 발전해나가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그의 작품에서 느끼는, 신비하고도 따뜻한 느낌의 실체가 아닐까?

 

 

 

① 2010년 작, <바이올린 위의 선율>.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대상을 사람과 함께 표현하고 있다.

② 정태섭 교수는 늘 함께하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에 가족사진을 엑스레이로 찍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적나라한 인체로 표현하는 감성은 주요한 작품 주제가 되었다. 2010년 작, <오늘을 즐겨봐>.

③ 2011년 작, <좋은 날이야> 엑스레이 영상의 실험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2011년을 넘어서며 매개와의 단순한 조우가 아닌 실질적 결합을 영상에 담아냈다.

④⑤ 손과 꽃은 초기부터 놓치지 않고 이어오는 그의 주요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