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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 몰락

풍월 사선암 2014. 5. 28. 22:29

[김철중의 만물상] 

산부인과 몰락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레지던트에 지원하려면 서울 의대 졸업 성적이 10등 안에 들어야 안심했다. 경쟁자가 몰리다 보니 시쳇말로 '청와대 백'이 있어야 서울대 산부인과 전문의가 될 수 있다는 말도 나왔다. 그렇게 들어온 우수한 의사들이 1985년 우리나라 최초로 시험관 아기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지난해 서울 의대를 졸업한 젊은 의사 중에 산부인과를 지원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병원 개원 이래 처음이다. 교수들 사이에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산부인과 레지던트 첫해 '1년 차'는 새벽부터 일어나 그날 예정된 수술을 준비하는 게 주된 업무다. 그런데 요즘은 레지던트가 아침 9시쯤 수술실에 들어와도 괜찮다고 한다. '귀하게' 모셨는데 일이 고되다고 그만두게 해서는 안 된다는 배려다. 특히 남자 산부인과 레지던트는 희귀종에 가깝다. 레지던트가 한 명도 없어 교수들이 돌아가며 야간 분만 당직을 서는 대학 병원이 수두룩하다.

 

 

산부인과 의사들이 모이는 학술 행사에 가보면 피부과학회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의료 기기 전시장에선 분만이나 부인과 질병 치료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갖가지 피부 레이저와 보톡스 코너만 잔뜩 있다. 산부인과들이 분만과 질병 치료로는 수익이 나질 않아 성형이나 미용 시술로 업종을 바꾼 탓이다. 소아과 의사들도 "아기보다 엄마 피부가 더 문제네"라며 미용 시술을 하기도 하니 산부인과만 탓할 일도 아니다.

 

산부인과가 저출산과 낮은 의료 수가로 몰락하고 있다. 어제 의료정책연구소가 낸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산부인과 폐업률이 223%. 산부인과 의원 한 곳이 개업하는 사이 2.3곳이 문을 닫았다. 산부인과가 한 곳도 없는 시··구가 58곳이다. '없는 사람끼리 싸운다'고 그 와중에 일부 산부인과 병원은 산모를 서로 유치하려고 덤핑 공세를 펼친다. 의료의 본질은 제쳐 놓고 출산 보양 주사나 산후 조리로 벌충해 먹고산 지 오래다.

 

10년 전쯤 일본에서 '출산 난민'이 사회문제가 됐다. 아기 낳을 산부인과가 없어 산모가 이리저리 헤매다 숨지는 사고도 생겼다. 일본은 파격적 조치를 했다. 과실을 따지기 어려운 분만 사고는 보상금 전액을 국가가 댔다. 분만 한 건에 20~30만원씩을 산부인과에 안겼다. 그러자 분만실이 살아났다. 우리는 분만 중 산모가 사망하는 모성 사망률이 200810만 출생아에 8.4명이었다가 201217.2명으로 급증했다. 이대로라면 아기 낳기 겁나서 안 낳는 세상 올지 모른다.

 

김철중(사회정책부 의학 전문기자)

 

의사 출신 기자다. 영상의학과 전문의, 의학박사와 언론학 석사를 취득했다. 농담으로 학위 모으기가 취미라고 한다.

 

조선일보에 김철중의 생로병사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으며 그전에는 김철중의 메디컬 CSI라는 칼럼을 썼다. 한 때는 메디TV에서 김철중의 헬스파일이라는 국내 최초 의료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지난 14년간 신문기자 생활을 하며 심폐소생술을 배우자, 나트륨을 적게 먹기 기획, 중병 앓는 응급실 체험 르포 등의 기사를 통해 사회 구조와 의료와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사람은 사회를 만들고, 사회는 질병을 만든다는 메디컬 소시올로지가 의사와 기자 두 개의 눈을 가진 그의 지론이다. 대한암학회,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 대한과학기자협회 등이 주는 언론상을 수상했다. 20137월부터는 세계과학기자연맹 회장으로 선임돼 활동 중이다.

 

고려대 의대 대학원 의학박사

6대 세계과학기자연맹 회장(임기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