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재(必敬齋)
긍지실(兢持室) 대문에 들어섰을 때 제일먼저 우리를 반겨주는 것은 바람을 맞이하는 풍경의 그윽한 울림이다.
인조반정을 논의 했다는 사랑채 긍지실(兢持室)에서
신도비에 대해 설명하는 필경재 사장님
필경재(必敬齋)
필경재의 뜻은 '반드시 웃어른을 공경 할 줄 아는 자세를 지니고 살라'는 뜻으로 필경재가 건립될 당시 지어진 이 가옥의 옥호이다. 필경재는 조선조 제9대 성종때(15세기) 건립된 5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전통가옥으로서 전통건조물 제1호로 지정되었다.
세종대왕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대군의 증손인 정안부정공 이천수가 건립하여 지금까지 대대로 19대를 이어오며 그 종손들이 살아 온 전통한옥으로 당시 개인의 가옥으로서는 최대 허용치였던 99칸이었으나 오랜 세월을 내려오면서 많은 부분이 유실되고 나머지가 원형대로 보존되어 오다가 1994년에 해체 복원되어 현재에 이른다.
전주이씨 광평대군 정안부정공의 종가 집으로 내려오고 있는 이 가옥에서는 특히, 북한산성을 축조한 숙종 때의 영의정 혜정공 이유와 효종 때의 우의정을 지낸 충정공 이후원, 헌종 때 우의정을 지낸 희곡 이지연등 3정승을 탄생시켰으며, 순종때 장원급제를 하여 도승지를 지낸 후천 이윤종까지 15명의 종손들이 모두 과거급제를 하는 등 수많은 공신이 이 가옥에서 태어났다.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철기 이범석장군과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이 준, 이상설 열사와 함께 망국의 한을 품고 장렬하게 산화한 이위종 열사도 직계후손으로 많은 문무관을 배출하였고, 일제치하에서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민족혼을 심어주기 위하여 설립된 중앙고등학교 광주분교로도 사용되었던 유서 깊은 가옥이란다.
후원에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는 신도비는 녹천 이유(1645~1721)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이유는 숙종 때 한성판윤을 거쳐 영의정을 지낸 인물로 조정의 온갖 반대의견을 무릅쓰고 북한산성을 축조하여 수도방위를 굳건히 하였다.
(지하철 녹천역은 바로 이유의 호를 딴 것이다.)
500년의 역사를 이고 지며 과거 서울의 명맥을 지켜오고 있는 고택“필경재” 1987년 문화관광부에 의해 전통 건조물 제1호로 지정된 뒤 정통궁중요리 전문점으로 새단장을하여 진짜배기 한국의 멋과 맛을 알리고 있는 서울 도심속의 여유공간. 시진핑도 이곳을 다녀 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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