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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의 유언과 시진핑의 선택

풍월 사선암 2013. 12. 8. 16:57

덩샤오핑의 유언과 시진핑의 선택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도광양회와 주동작위 사이 시진핑은 어디에 있나

역대 주석들의 사자성어로 본 미·중 패권 경쟁

 

도광양회(韜光養晦)칼을 칼집에 넣어 검광(劍光)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게 하고 그믐밤 같은 어둠 속에서 실력을 기른다는 뜻을 가진 사자성어다. 원래 삼국연의(三國演義)에 나오는 말로 유비가 조조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쓴 도회지계(韜晦之計)란 계략에서 유래한 말이다. 유비의 실력이 나날이 커가는 데 대해 우려하고 있던 조조(曹操)가 유비를 초대해서 함께 술을 마시던 중 오늘날 천하에는 영웅이 나와 그대 두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조조의 질문을 받고 유비가 대답하려는 순간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서 천둥이 쳤고, 유비가 천둥 소리에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이 광경을 본 조조가 대장부가 어찌 천둥을 두려워한단 말이오라고 말하자 유비는 짐짓 벌벌 떨면서 바람이 불고 천둥이 친다는 것은 세상에 변고가 있다는 말인데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이후 조조는 유비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던 것을 그만두었으며, 이때 유비가 쓴 계략을 도회지계라고 불러왔다

 

중국의 첫 번째 항공모함 랴오닝함

 

삼국연의에 나오는 도회지계를 중국의 외교 전략으로 만든 사람은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이었다. 19896월 베이징(北京)시 중심부의 천안문(天安門)광장을 뒤덮은 100만 시민 학생들의 반(反)부패, 민주화 요구 시위를 유혈진압한 덩샤오핑은 시위대에 동정적이던 자오쯔양(趙紫陽) 총서기를 잘라내고 상하이(上海)시 당서기 자리에 앉아 있던 장쩌민(江澤民)을 발탁해 당총서기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9월에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리도 장쩌민에게 넘겨주었다. 그 무렵 천안문사태를 유혈진압했다는 이유로 미국, 유럽을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단교(斷交) 위협을 포함한 외교적 제재를 받는 등 고립의 위기에 놓여 있었다. 이때 덩샤오핑은 중국이 위기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20자(字) 방침이란 것을 여러 번 강조해서 말했고, 당시 외교부장이던 첸치천(錢其琛)은 덩샤오핑의 지시를 외교 전략으로 채택했다

 

덩샤오핑이 말한 20자 방침이란 첫째 냉정하게 관찰할 것(冷靜觀察), 둘째 서두르지 말 것(穩住刻步), 셋째 침착하게 대응할 것(沈着應付), 넷째 어둠 속에서 조용히 실력을 기를 것(韜光養晦)다섯째 꼭 해야 할 일이 있는 경우에만 나서서 할 것(有所作爲)이라는 지시였다

 

중국에서 천안문사태가 벌어진 것을 계기로 1989년 말부터 사회주의권에는 민주화 바람이 불어 1990년 말에는 동유럽 사회주의 정치체제가 무너지는 대변혁의 사태가 벌어졌고, 마침내는 소련의 정치체제와 연방 해체라는 놀라운 역사가 진행됐다. 그런 대변혁의 태풍 속에서 덩샤오핑의 20자 방침은 놀라운 힘을 발휘했고, 사회주의 국가에서 중국은 북한과 함께 정치체제를 유지하는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이 바람 속에서 덩샤오핑은 20자 방침을 골자로 하는 다음과 같은 지시를 거듭했다

 

경계심을 늦추지 말라. 그렇다고 해서 누구를 두려워하지도 말라. 누구에게든 죄를 짓지 말고, 친구를 사귀되 나름의 계산을 갖고 사귀라. 도광양회를 하면서 머리를 절대로 들지 말라. 절대로 깃발을 흔들며 나서지 말고, 지나친 말을 하지 말라. 지나친 일도 하지 말고, 그저 묵묵히 경제건설에 매진하라, 그러다 보면 언젠가 해야 할 일이 생길 것이다.”

 

덩샤오핑의 20자 방침을 요약하면 도광양회 유소작위다시 말해서 조용히 실력을 기르다 보면 언젠가 할 일이 생길 것이다라는 말로 축약할 수 있다

 

그러나 19769월 덩샤오핑의 전임자 마오쩌둥(毛澤東)이 죽고, 1978년에 실권을 잡은 덩샤오핑의 기본 외교 전략은 화평발전(Peaceful Developmet)’이라는 것이었다. 덩샤오핑이 제시한 외교전략 화평발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49101일 천안문 누각 위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수립을 전 세계에 선포한 마오쩌둥의 외교 전략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마오쩌둥의 세계 전략은 초영간미(超英赶美)’, 다시 말해 조속한 시간 내에 영국의 실력을 넘어서고미국과 한판 겨룬다는 것이었다. 초영간미를 위해 마오쩌둥은 건국 초기 외교의 기본을 소련에 의존하는 소일변도(蘇一邊倒)전술과 3세계론전술에 의존했다. “소일변도 전술은 같은 사회주의 제국인 소련으로부터 중공업 위주의 경제원조를 받는 한편 국제사회에 대해서는 중국이 어디까지나 강대국이 아닌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제3세계 국가의 하나임을 분명히 밝혔다. 중국은 결코 소련이나 미국과 같은 강대국이 아니라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후진국임을 스스로 자처한 것이었다

 

마오의 제3세계론 역시 삼국연의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었다. 삼국연의에서 북쪽의 강력한 조조(曹操)의 위(魏)와 동쪽의 강대국 손권(孫權)의 오(吳)의 틈새에 끼인 유비(劉備)의 촉한(蜀漢)이 채택한 전략이 바로 제갈공명(諸葛孔明)천하삼분론(天下三分論)이었다. 위와 오와 맞서기 위해서는 지금의 쓰촨(四川)성에 해당하는 촉의 영역을 근거지로 해서 삼국이 정립(鼎立)하는 형세를 구축한다는 것이었다.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을 건설한 마오로서는 북쪽의 소련과 동쪽의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소련을 조조의 위로, 미국을 손권의 오로 간주하고 중국은 제갈공명의 천하삼분론에 따라 소련이나 미국의 영향이 덜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비동맹국가들 속으로 들어가는 제3세계론에 따른 세계 전략을 구사하는 쪽을 택한 것이었다

 

마오의 세계 전략은 일단 제3세계에 몸을 숨긴다는 것이었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언젠가는 19세기의 최강국 영국을 넘어서고, 20세기의 최강국 미국과 한판 승부를 벌인다는 것이었다. 그런 세계 전략을 갖고 있던 마오의 중국은 원폭을 제조하고, 수도 베이징에 만일의 핵전쟁에 대비한 지하갱도를 파는 등 많은 군비를 필요로 했다. 거기에다가 강철 생산량을 단시간에 미국과 영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대륙 전역에서 마을마다 나무를 때어 철을 만들겠다는 마을 용광로를 설치하는 무리수를 두기도 했다.

 

그 결과 의욕이 과도했던 대약진운동이 철저히 실패해서 경제가 수렁에 빠지고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아사자(餓死者)가 발생하는 참극을 맞이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마오 개인의 권력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문화대혁명이라는, 중고생을 동원한 사실상의 정적(政敵) 제거 정치투쟁을 10년간이나 벌이기도 했다. 19769월 마오의 죽음은 그런 파란만장한 제1세대 중국 27년 역사의 마감이기도 했다

 

1978년 말에 권력을 잡은 덩샤오핑은 마오의 그런 허황된 세계 전략 초영간미를 완전히 폐기하고, ‘화평발전(和平發展)’, 다시 말해 중국이 당분간 전쟁에 나설 일은 없으며 오로지 평화적으로 경제 발전에만 몰두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450만명이 넘던 인민해방군의 수를 100만명 이상 감축하고, 자신이 직접 미국으로 건너가 텍사스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세계인들에게 미소를 보내는 전략을 보여주었다. 상하이(上海) 황푸(黃浦)강 동쪽 삼각주 지역에는 동방명주(東方明珠) 타워를 포함한 고층빌딩 밀집지역을 건설해서 전 세계에 경제건설의 의지를 과시하는 쇼룸 전략도 보여주었다. 중국은 전 세계로부터 외국인직접투자(FDI)를 유치하는 경쟁에서 30년 넘게 1위 국가의 자리를 지키는 놀라운 기록도 보여주었고, 연평균 경제성장률 10%가 넘는 고속 경제 성장의 길로 들어섰다

 

덩샤오핑의 화평발전 전략은 후임자 장쩌민(江澤民) 총서기(1989~2002)에 의해 그대로 계승됐고 중국은 외부세계에 오로지 경제 발전 우선주의로 매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2002년 당 총서기직을 장쩌민으로부터 넘겨받은 후진타오는 덩샤오핑의 화평발전전략을 살짝 고쳐 화평굴기(和平堀起·Peaceful Rise)’라는 말로 바꾸어 놓았다. 미국과 유럽일본이 중국을 다른 눈으로 고쳐보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때부터다. 중국이 더 이상 평화롭게 발전만 하는 국가가 아니라 무언가 목적의식을 갖고 일어선다는 화평굴기라는 세계 전략을 선보이자 미국과 유럽은 중국에 대해 경계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201011월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하와이 이스트웨스트센터 연설을 통해 우리 미국은 지나간 20세기에는 대서양을 건너 유럽과 많은 일을 했으나 앞으로 21세기에는 태평양 건너 서태평양 국가인 일본, 한국, 필리핀, 태국, 호주와 협력해서 강력한 자유시장경제 지대를 건설할 것이며, 중국에 대해서는 국제적인 규칙을 지키고 인권을 존중하는지를 지켜보면서 할 말을 할 것이라는 정책의 대전환을 발표했다. 중국이 미국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지난해 11월 제18차 당대회를 통해 8000만 중국공산당원을 이끄는 당총서기에 선출되고,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를 통해 14억 중국 인민을 대표하는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주석에 취임한 시진핑(習近平)은 중국의 국가 목표가 중국의 꿈(中國夢)을 실현하는 것이며, 대외정책으로는 함께 G2로 불리는 미국과 대등한 관계에서 국제 문제에 대처하는 신형 대국 관계(新型大國關係)를 구축한다는 전략을 밝혔다. 그동안은 제3세계에 속한 발전도상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지만, 지난 35년간의 빠른 경제 성장으로 세계 경제 무대에서 차지한 부분만큼 정치적으로도 제자리를 찾겠다는 선언이었다

 

미국의 그런 대외정책 변화와 대중국정책 변화를 알아차린 일본은 재빨리 중국과 날을 세워 대립하는 방향으로 자세를 바꾸었다. 주적이던 소련을 겨냥해서 홋카이도(北海道)에 배치돼 있던 최정예 전차 사단을 남쪽의 오키나와 일원으로 이동 배치했고, 그런 움직임을 보고 있던 중국은 더욱 신경이 곤두선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마침내 중국은 지난 1123일 일본을 겨냥한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CADIZ)을 선포했다. 최근 국내 언론들이 중국이 도광양회 유소작위라는 외교 전략을 버리고 주동작위(主動作爲)’라는 적극적인 외교 전략으로 전환했다고 보도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런 흐름에 대한 해석이었다

 

국내 언론들은 연초에 발행된 중국 외교부 산하 세계지식(世界知識)출판사가 발행하는 외교전문 주간 세계지식을 인용해서 중국 외교의 흐름이 도광양회에서 주동작위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125일 현재 시진핑 국가주석이 중국의 외교정책의 기조가 도광양회 유소작위를 탈피해서 주동작위를 할 것이라고 명백히 언급한 기록은 없다. 다만 시진핑 주석은 지난 46일 중국 남부 하이난다오(海南島)에서 열린 보아오포럼이라는 국제회의에 나가 자신의 대전략인 신형 대국 관계를 설명하면서 신형 대국 관계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에서 주변국 외교에 있어서는 우리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주동(主動)해 나갈 것이며겸허히 자신을 돌아보면서도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지역의 안정을 추구하는 쪽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삼개경가(三個更加·세 가지의 더하기)원칙을 밝혔다. 중국의 외교 전략이 도광양회를 버리고 주동작위로 전환됐다는 우리 언론 보도를 중국 검색엔진 바이두(百度)는 여과없이 전달하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중국 외교부 산하 세계지식출판사가 발행하는 주간 세계지식 이외에는 아직 어떤 관영매체도 시진핑 주석이 도광양회를 버리고 주동작위로 전환했다는 보도는 하지 않고 있다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이 조용히 실력을 기르고 할 일이 있을 때를 대비하라는 도광양회 유소작위를 말할 때 설정된 시점은 2020년이었다. “경제 발전을 꾸준히 해나가면 2020년에는 중산층이 늘어나 중진국 수준에 이르는 샤오캉(小康) 상태에 이를 것이며, 최소한 그때까지는 도광양회를 하라는 것이 덩샤오핑의 지시였다. 덩샤오핑에게 개혁개방 정책의 채택을 건의한 시중쉰(習仲勳) 전 부총리의 아들인 시진핑이 과연 덩샤오핑이 설정한 국가 목표와 설정 시한을 무시한 채 도광양회를 버리고 주동작위를 선언할 것인가는 현재로서는 분명치 않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시진핑이 추구하고 있는 신형 대국 관계가 이미 도광양회의 범주를 벗어난 개념이기는 하지만 시진핑이 공개적으로 도광양회에서 탈피하고 주동작위라는 개념을 외교 전략의 주조(主潮)로 채택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시진핑의 신형 대국 관계는 오히려 덩샤오핑의 도광양회 유소작위 가운데 유소작위에 해당하는 전략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른 이해일 것으로도 판단된다.

 

입력 : 2013.12.06 1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