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명상글

우생마사(牛生馬死)

풍월 사선암 2013. 10. 5. 09:33

 

 우생마사(牛生馬死)

 

[조용헌 살롱] 소는 살고 말은 죽는다

 

집에서 키우는 가축이라고 하면 육축(六畜)을 꼽는다. , , 돼지, , , 닭이다. 육축 가운데 제일 앞에 꼽는 동물이 소이고 그 다음에 말이다. 소와 말은 고기를 먹지 않고 풀을 먹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두 가축의 성질은 전혀 다르다. 소는 느리고, 말은 빠르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우보'(牛步)라고 하면 천천히 느리게 걷는 걸음을 일컫는 표현이다. 느리지만 힘이 좋기 때문에 논과 밭을 가는 농사일에 적격이었다. 동아시아는 쌀농사 문화권인데, 소가 없으면 농사짓기 힘들다. 쌀농사와 소는 떼놓을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한 관계이다.

 

반면에 말은 빠르기 때문에 전쟁터에서 활약한다. 하루에 천리를 간다는 한혈마(汗血馬)는 고대사회에서 전투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인이었다. 소는 농사를 짓지만, 말은 전투를 하는 가축이었던 것이다.

 

오행(五行)에서 놓고 보자면 소는 축()이고, 물이 축축한 토()에 해당한다. 팔자에 축()이 많으면 영험한 꿈을 잘 꾸고, 기도를 조금만 해도 기도발이 잘 받는 경향이 있다. 종교적인 성향인 것이다. 말은 오()인데 화()에 해당한다. 12시 무렵이기도 하다. 팔자에 오()가 많으면 활달하고 시원시원하면서 통도 크다. 불이 많은 사람은 추진력도 좋고, 돈을 잘 쓰기 때문에 이성에게도 인기가 좋다.

 

소와 말이 결정적으로 갈라지는 계기는 홍수가 났을 때이다. 우생마사(牛生馬死)이다. 홍수가 나서 급류에 두 동물이 빠지면 소는 살고 말은 죽는다고 한다. 말은 빠르고 적극적으로 달리던 성질이 있으므로 물살에 저항하며 필사적으로 다리를 휘젓는다. 그러다가 결국 힘이 빠지면 죽는다. 반대로 소는 느리고 소극적이다. 흘러가는 급류에 자기 몸을 맡겨 버리는 습성이 있다. '에라 모르겠다. 떠내려가는 데로 그냥 몸을 맡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몸이 물에 둥둥 떠서 내려가다가 뭍에 이르면 목숨을 부지한다는 것이다.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의 급류를 만나 떠내려갈 때는 '우생마사'의 이치를 자꾸 머릿속에 떠 올려야 할 것 같다. 우선 살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제주도 서귀포에서 올레 길을 걷다가 만난 어느 중소기업 사장에게서 들은 이야기이다. (조선일보, 2013.1.28)

 

 

중요한 승부에서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부동심'(不動心)입니다. 커다란 위기상황에서 생사를 좌우하는 것도 부동심이지요. 그래서 스포츠 선수들은 해당 종목의 기술연마에 더해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분야만 다를 뿐 경영자이건 직장인이건 마찬가지이지요.

 

'우생마사'(牛生馬死)는 이와 관련해 흥미롭습니다. 홍수로 불어난 강물에 소와 말이 빠지면 소는 살고 말은 죽는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두 동물 모두 '평소의 자신'대로 반응합니다. 말은 땅을 달리던 습성대로 적극적으로 물살에 저항하며 다리를 버둥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힘이 빠져 죽습니다. 그러나 느리게 밭을 갈던 소는 자신의 평소 모습대로 급류에 몸을 맡겨 떠내려가며 힘을 낭비하지 않다가 뭍을 만나면 살기도 한다는 것이지요. 실제로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럴듯한 이야기입니다.

 

'우생마사'(牛生馬死). 중요한 승부에 임하거나 커다란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는 홍수에 떠내려가는 '부동심의 소'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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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의 대가 아인슈타인의 이야기이다. 특수 상대성 이론으로 명성을 날리던 아인슈타인은 가는 곳마다 강연 요청이 쇄도했다. 하루에도 몇 번의 똑같은 강의를 하다 보니,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나중에는 목이 잠겨서 말도 제대로 못할 상황이 되었다. 도저히 강의가 불가능한 상황인데, 청중들은 기대감을 가지고 모여들었다. 그때 그의 운전기사가 이런 제안을 했다. “박사님의 똑같은 강의를 수백 번도 더 들었어요. 사람들도 박사님의 얼굴을 잘 모르니, 제가 강의를 하고, 박사님은 밑에 앉아계십시오.” 아인슈타인의 얼굴이 별로 알려지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운전기사의 제안대로 운전기사는 강의하고, 아인슈타인은 객석에서 들었다. 진짜 토씨 하나 안 틀리는 명 강의였다. 무사히 다 마쳤다. 문제는 그 다음에 생겼다.

 

어떤 교수가 저 질문이 있는데요.”하면서 강의 한 부분을 묻는 것이었다. 일순간 긴장이 흘렀다. 그때 운전기사는 이렇게 말했다. “교수가 그 정도의 수준 낮은 질문을 한다는 것이 실망스럽다. 그 정도의 질문은 나의 운전기사도 대답해 줄 수 있다.” 그리고 운전기사 설명해 주게라고 말했다. 기사 자리에 있던 아인슈타인이 제대로 설명해 주었다. 그때부터 아인슈타인의 기사는 교수보다 낫다.”는 말이 돌았다고 한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대응 능력과 순발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진정한 능력은 통제하는 것, 예측하는 것이 아니다. 적절하게 대응하는 능력이 진정한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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