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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땐 복지 경쟁 …'계산서' 날아오자 쩔쩔매는 여야

풍월 사선암 2013. 8. 15. 09:28

대선 땐 복지 경쟁 '계산서' 날아오자 쩔쩔매는 여야

 

복지 딜레마 해법 찾기 난항

 

◀현오석 부총리가 1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 참석해 세제개편수정안을 보고하기 위해 연단으로 나가고 있다.

 

복지 딜레마에 가로막힌 대한민국이 해법을 놓고 난항을 겪고 있다. 정부의 세제개편안으로 촉발된 세금 논쟁에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 정부가 답 찾기에 나섰지만 복지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재원 마련과 증세는 싫다는 국민 정서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다. 지난해 대선 때 여야가 경쟁적으로 제시했던 장밋빛 복지 공약의 후폭풍이 세금 논쟁으로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복지 수요를 감당하려면 세금을 더 거둬야 하고, 재원이 부족하면 복지의 기대치를 낮춰야 하는데 정부도 정치권도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세금 느는데 증세 아니라 했다 혼쭐

 

정부·여당은 실질적으로 세금 부담이 늘어나는데도 증세는 아니다고 했다가 된서리를 맞았고 민주당은 무책임한 세금폭탄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세수 부족이라는 악재까지 겹쳤다. 13일 국세청이 민주당 안민석 의원에게 제출한 ‘2013년 상반기 세수실적에 따르면 올 16월 정부가 거둔 세금은 921877억원으로 지난해 동기의 1015938억원에 9.3%가 모자라는 94061억원이 덜 걷혔다. 최근 3년 중 최저치다.

 

여권에서도 고개 드는 증세, 궤도 수정론=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후보 시절 매년 27, 5년간 135조원을 마련해 복지를 추진하겠다고 공약하면서도 증세는 없다고 못 박았다. 대신 비효율적 정부 예산 감축(60%)과 지하경제 양성화 등 세수 확대(40%)로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증세에 대한 반발과 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난기류에 휩싸였다. 정부는 그런데도 증세 없는 복지프레임을 유지하고 공약가계부는 수정할 생각이 없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경제라인 인사는 증세 없는 복지는 일종의 마지노선으로 이걸 허물면 민주당과 다를 게 없어진다고 강조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도 이날 브리핑에서 법인세율 인상이나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에 대해 현재로선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증세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증세 않고 복지 확충한다는 건 모순

 

하지만 연세대 윤건영(경제학) 교수는 정부가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곳이 아닌데 세금 없이 복지 정책을 추진한다는 것은 논리의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 일각에서도 증세론, 궤도 수정론이 나온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일부에선 복지를 위해 증세가 불가피함을 공식 인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른 인사는 박 대통령 공약의 핵심은 증세가 없는이 아니라 복지 확대에 있다경기회복 속도 등의 타이밍에 맞춰 복지 확대를 위한 불가피한 증세는 필요하다는 선언이 나올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전했다.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도 더 이상 어떻게 세 부담 증가 없이 재원을 마련하겠느냐는 반응이었다”(유일호 대변인)고 전했다. 조해진 의원은 여론 수렴하면서 연착륙하는 형태로 증세해 나갈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법인세율 높여도 증수 효과 어려워=민주당 역시 복지 딜레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열린우리당(민주당의 전신) 정책위의장을 지낸 강봉균 전 재경부 장관은 민주당은 자신들이 주장했던 보편적 복지는 빠뜨린 채 이 정부가 세금을 일부 걷겠다는 데 대해 세금폭탄이라고 하니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고소득자나 대기업에 대한 부자 증세를 해법으로 내놓고 있지만 곳곳에 암초가 있다. 민주당 정책위에 따르면 최고소득세율(38%)의 적용 확대와 법인세의 인상으로 향후 5년간 30조원의 증수가 이뤄질 것으로 봤다. 그러나 이는 지난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캠프가 각종 복지공약을 이행할 재원으로 제시했던 5년간 192조원에 크게 못 미친다. 윤 교수는 경기침체 속 법인세를 인상하면 기업은 투자를 줄이고 인력 채용 최소화로 나서게 마련이라며 대기업이 세금 부담을 해결하기 위해 해외로 나갈 테니 국내 일자리를 줄이는 자가당착이 된다고 비판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 법인세 세수는 지난해에 비해 16.3%(41883억원)나 줄었다.

 

문제 인정하고 국민적 합의 구해야

 

경기침체가 계속되면 법인세율을 인상해도 민주당이 기대하는 증수 효과가 나오기 어렵다.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은 우리 소득세는 2500여만 명의 경제활동인구 중 1150여만 명만 세금을 내고 상위 20%가 세금의 85%를 부담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민주당식으로 1% 수퍼부자 대 99% 나머지라는 식으로 정치적으로 활용해선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당장의 여론에 급급해 미봉책을 내기보다는 복지 딜레마를 솔직히 인정하고 국민적 합의로 해법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의 정책통은 복지를 하려면 어느 정도 세금을 부담해야 하고 그게 안 되면 혜택을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빚(국채)으로 재원을 메우는 적자 국가로 가야 한다고 했다. 현진권 한국재정학회장은 지금까지 정치권은 무상복지라는 정치 상품을 개발하는 데만 바빴는데 뒤늦게 날아온 계산서를 보고 놀란 것이라며 이제 국민에게 복지엔 세금이 따르며 세금만 아니라 복지도 재검토해야 한다는 점을 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 입력 2013.08.14 01:30 / =채병건·강태화 기자

 

세수 모자라 난리인데 복지예산 3년간 7000억 샜다

 

감사원, 복지 전달체계 감사

 

#. 강원도 원주시에 살던 A씨는 지난해 42일 사망해 이틀 뒤 화장돼 보건복지부 장사 시스템에 사망자로 등록됐다. 이후 복지부 사회복지통합관리망에 사망의심자로 분류됐지만 원주시 담당 공무원은 사망 처리를 하지 않았고, 복지부와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은 이를 방치했다. 사망자 A씨의 계좌에는 죽은 뒤에도 기초노령연금 851400(9개월), 장애인연금 24만원(10개월) 등 모두 1091400원이 입금됐다.

 

#. 대구시 수성구의 B씨는 부양의무가 있는 자녀들의 총 월소득이 5200만원, 총재산이 73억원에 달하고 의사인 딸에게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고 있다. 하지만 B씨는 자녀들과 관계가 단절됐다고 거짓신고를 했고, 담당 공무원은 그를 기초수급자로 분류해 모두 12893380원을 챙겼다.

 

복지에 쓸 돈은 크게 불어난 반면 조세 수입은 부족해 증세 논란이 벌어지고 있지만 막상 복지현장에서는 예산이 줄줄 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회복지통합관리망 부실하게 운영

 

 

감사원이 복지부와 각 지방자치단체 등을 대상으로 감사해 13일 발표한 복지 전달체계 운영실태에 따르면 20101사회복지통합관리망(사통망)’이 구축됐지만 부실 운영 등으로 약 7000억원(20101~올해 5)의 예산이 낭비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세수 확충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일선에서의 고질적인 예산 낭비는 여전하다는 얘기다.

 

감사원은 복지부가 복지사업 효율화를 위해 사통망을 구축했지만 정확한 자료가 제때 입력되지 않는 등 부실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게 사망자에 대한 복지급여 지급이다. 복지부가 2010년 사통망을 구축하면서 기존 자료를 별도의 검증 없이 그대로 이관받아 이미 사망한 116만 명을 생존한 것으로 잘못 파악했고, 이 중 32만 명에게는 모두 639억원(지난 5월 기준)이 지급된 것으로 감사 결과 드러났다.

 

사망자 32만 명에게 639억 연금 지급

 

또한 다른 기관에서 받은 자료를 별다른 검토 없이 자동 반영하거나 공무원이 수작업으로 자료를 입력해 오류가 생긴 경우도 허다했다. 장애인연금 등 28개 장애인 복지사업의 경우 장애등급 입력 오류 등으로 17751명에게 163억원, 노인돌봄종합서비스 등 5개 사업은 건강보험료 납부액, 연령 오류 등으로 13586명에게 375억원을 잘못 지급했다.

 

복지부와 지자체의 칸막이도 예산 누수의 원인이 됐다. 사통망에는 매월 소득·재산자료(국민연금 등 25)가 축적되지만 복지부는 이 자료를 그때그때 지자체에 주지 않고 6개월 주기로 제공하고 있다. 감사원은 이 같은 자료 반영 지연으로 연간 752억원이 잘못 지급됐다고 봤다. 또 기초생활수급자 선정 때는 근로소득뿐 아니라 이자소득도 반영하게 돼 있는데 복지부는 지자체가 이자소득 자료를 조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 주지 않아 연간 959억원이 낭비됐다고 밝혔다.

 

수급자 소득·재산 파악 제대로 못해

 

복지 수급자 선정을 위한 소득과 재산 현황 파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이 기초수급자 11만 명을 대상으로 모의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의 소득 은폐율은 5.5~6%였고, 이로 인해 잘못 지급된 돈은 247억원 수준이었다.

 

감사원은 이 밖에 복지수요 증가에 따라 중·장기 인력수급 대책이 필요한데도 복지부가 손을 놓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부족한 복지인력은 6930명으로, 아무리 좋은 복지정책이 나와도 일선 현장에서는 일손이 부족해 제대로 정책이 전달되지 않는 깔때기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중앙일보] 입력 2013.08.14 01:27 / 허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