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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10人 릴레이 탐구 ②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

풍월 사선암 2013. 6. 8. 09:57

나서지 않는 '비서', 새벽마다 "오늘도 무사히" 기도

 

['파워 10' 릴레이 탐구]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

 

- 人事에 관한 권한은 막강

   줄대려 안간힘 쓰는 사람 많아"탈락한 이들 모두 나 욕할 것"

- 청와대 생활 석달만에 5빠져

   귓속말 보고, 별명은 복무기강대통령에 苦言 한달 한번은 해

- "정무적 판단 부족" 지적 나와

   '代讀사과' '3단계謝過'에 우려"공무원 장악엔 적임자" 평가

 

허태열(許泰烈·68) 청와대 비서실장은 주변 사람들에게 "요즘 택시기사처럼 산다"고 말한다. 택시기사가 운전대를 잡기 전에 그러듯 "오늘도 제발 무사히"라고 마음속으로 기도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새벽5시 기상석 달 만에 5빠져

 

그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신문부터 훑어본다. 정부 출범 초반부터 연일 인사(人事) 사고가 신문 지면을 장식했다. 이어 러닝머신에서 30분 정도 운동한 뒤 오전 7시쯤 비서동인 위민관으로 출근한다. 이정현 정무수석, 유민봉 국정기획수석과 매일 아침 갖던 현안대책회의는 최근에 중단했다. 하지만 비서실장 주재 수석회의(·금요일), 인사위원회 등 늘상 회의의 연속이다. '소통 부족'이란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저녁 식사는 대개 외부 인사들과 한다.

 

◀허태열 대통령 비서실장. 업무 스트레스가 심해 대통령 취임 후 몸무게가 5가량 줄었다고 한다. /오종찬 기자

 

허 실장은 임명되자마자 부인(61)과 함께 청와대 바로 옆 비서실장 공관으로 들어갔다. 석 달 남짓 지난 지금, 몸무게는 5정도 빠졌다. 한동안 불면증 때문에 수면제를 먹었다.

 

허 실장은 "언제 무슨 전화가 걸려올지 몰라 늘 긴장해야 했다"고 했다. 지난 3월 한 여권 인사가 몇몇 인사 실패의 원인을 묻자, 허 실장은 "그건 국가기밀"이라고 받아넘겼다.

 

"비서는 비서일 뿐"나서지 않아

 

청와대 관계자는 "허 실장은 '비서실장이라도 비서는 비서일 뿐'이란 복무 방침을 지켜려 한다""웬만한 일에도 앞에 나서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박 대통령의 '보안 중시' 원칙에도 충실하다. 행사장이나 이동 중에 수시로 박 대통령에게 귓속말로 보고하는데 목소리가 너무 낮아 바로 옆에서도 안 들릴 정도라고 한다. 허 실장이 사석에서 "청와대에 온 뒤로 대통령한테 지적도 여러 번 받았다"고 말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허 실장도 이런 세평을 의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그는 주변에 "대통령의 고민이 더 깊은데 매번 싫은 소리를 할 순 없지만, 못해도 한 달에 한 번쯤은 쓴소리도 하려고 한다. 내 나이가 있는데 다음 자리 욕심을 낼 것도 아니고"라고 했다고 한다. "대통령에게 직언을 안 한다고 해도 이상하고, 한다고 해도 이상한 것 아니냐"고도 말했다고 한다.

 

인사에 관한 한 그의 권한은 막강하다. 최종 결정권자는 대통령이지만 공기업과 금융기관장 등 주요 인사는 청와대 인사위원장인 그의 손을 거쳐야 한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 수천개 중 하나를 노리는 사람들은 허 실장에게 줄을 대려고 부심하고 있다. 최근 몇몇 인사를 두고 "허 실장이 알게 모르게 특정 인맥을 챙기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이에 대해 허 실장은 "탈락한 사람이 점점 많아질 것이고 그 사람들이 모두 나를 욕할 것 아니냐. 감수한다"고 했다.

 

대통령 개성공단 최후의 7인 안위에 조마조마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31일 청와대녹지원에서 열린 출입 기자단 오찬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개성공단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어느 순간 모든 합의가 물거품이 되는 것을 우리가 봤다.‘마지막 순간까지 7명의 국민 안위를 위해서 얼마나 조마조마했니. 저는 더 그랬다고 말했다. / 청와대 제공

 

행정 실무에 강점"정무 판단력 부족" 지적

 

청와대 내에서 허 실장은 "관료 장악에 적임자"란 말을 듣는다. 그는 1970년 제8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박정희 청와대' 5년을 포함해 25년간 내무부 관료 생활을 했고 부천시장, 충북도지사직을 거쳤다. 그 후 16~18대 국회의원을 지냈기 때문에 특히 행정에 밝다는 것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수석비서관 회의나 부처 업무보고를 받을 때 보면 공무원들이 무슨 거짓말을 하고 어느 부분을 슬쩍 넘기려 하는지 꿰뚫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4월 허 실장이 국회 운영위에 출석하기 전에 청와대 수석들이 야당 의원 역할을 맡아 '리허설'을 한 적 있다""처음엔 '민망하다'면서 삼가던 수석들이 점점 고약한 질문을 하는데도 허 실장이 잘 대답하더라. 실제 국회에 출석해서도 무리 없이 넘어가는 것을 보고 '역시 경력을 무시 못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요즘 허 실장이 청와대 직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복무기강'이다. '윤창중 성추행 사건' 이후 "어떤 자리든 절대 2차 술자리는 갖지 말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한다고 한다. 그가 나타나자 청와대 직원들이 "'복무기강' 떴다"고 하는 장면도 목격됐다.

 

허 실장이 '비서' 기능에만 충실하려는 것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인사 파동 때 허 실장이 김행 대변인을 내세워 '대독 사과'를 했던 것, 윤 전 대변인 사태가 벌어졌을 때 이남기 전 홍보수석허 실장박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3단계 사과'를 했던 것에 대해선 "정무적 판단 능력의 부족"이란 비판이 여권에서도 나왔다. 한 여권 중진 의원은 "허 실장이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한다고 해도 어려운 얘기를 얼마나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기사입력 2013-06-01 0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