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이 쥐여주는 가늘디가는 실
여자란 종족은 미노스 왕의 후예인가 보다.
종잡을 수 없는 미궁을 마음속에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크레타의 왕 미노스가 미궁을 만들어 미운 이들을 가둔 반면에
여자들은 사랑하는 남자를 마음속에 가둔다.
여자의 미궁은 불확실이란 측면에선 미노스 왕의 그것보다 더 심하다.
“오늘은 늦었으니까 택시 타고 갈게. 데려다주지 않아도 돼.”
여자친구가 이렇게 말하면 상당수 남자는 곧이곧대로 믿는다.
그러고는 곧바로 닥쳐오는 신경질에 시달린다.
남자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바래다주지 않았기 때문이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란다.
따지다가 싸움이 된다.
진실은 여자의 두 가지 마음 사이 어디쯤 있긴 하다.
남자친구를 염려해 보내고 싶은 마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래다주기를 바라는 마음 사이.
여자의 마음은 ‘두 가지 선택의 사이’에 애매하게 걸쳐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어느 한쪽을 선택해도 아쉬움이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자는 선택의 책임을 남자에게 슬며시 넘긴다.
“데려다주지 않아도 돼.” 남자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고 싶은 것이다.
여자는 남자의 선택을 통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확인받기를 원한다.
남자들은 이런 여자의 속마음을 납득하기 어렵다.
그냥 원하는 것을 말해주면 되는 것 아닌가. 그대로 해줄 텐데.
그게 뭐가 어렵다고 자꾸 못나게 구는지.
하지만 남자와 다를 뿐, 여자들이 열등한 것은 아니다.
그들 특유의 감성 때문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남자가 하드웨어 담당이라면 여자는 소프트웨어 담당이다.
소프트웨어는 계속 업데이트해 줘야 한다.
그래서 여자들은 최신 버전인지를 수시로 확인하려는 것이다.
자기 존재의 의미를 확인하지 못하는 여자는 행복을 업데이트할 수 없다. 여자가 행복하지 못한 관계에 평안이란 있을 수 없다.
“데려다주지 않아도 돼”라는 여자의 말에 대한 정답은 없다.
“아니야. 바래다줄게” 정도가 최선일 것이다.
남자가 강한 의지를 보여줄수록 여자의 마음속 확신이 굳어진다.
소프트웨어가 업데이트되는 순간이다.
미노스 왕의 미궁에서 유일하게 살아 돌아온 이가 테세우스다.
테세우스는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가 건네준 실을 풀면서
미로로 들어갔고, 괴물을 죽인 후 실을 따라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많은 여자가 남자의 손에 가늘디가는 실을 쥐여준다.
그 실을 따르다 보면 언젠가는 미궁에서 길을 찾아내게 된다.
그러니까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이는 실이라도
함부로 낮잡을 일은 아니다.
물론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 여자의 마음이긴 하지만 말이다.
-한상복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