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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떼쓸 땐 내버려두는 게 상책… 전략적 인내 필요

풍월 사선암 2013. 5. 4. 08:53

떼쓸 땐 내버려두는 게 상책전략적 인내 필요

대화는 수단목적 돼선 안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외교책사로 5년 가까이 활동한 김태효 성균관대 교수는 대북강경론자라는 자신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부인하면서 원칙론적인 대화압박론자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가 지난 419일 연구실에서 진행된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근혜정부의 향후 외교전략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

 

김태효 前 靑대외전략기획관

 

김태효(46) 성균관대 교수는 이명박(MB) 정권의 창업공신이다.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MB외교안보 장자방(張子房)’이었던 그는 청와대 비서관과 대외전략기획관을 지내면서 근 5년간 외교안보 현안을 주물렀다. 대외 협상 시 발휘되는 특유의 돌파력과 뚝심은 나라 안팎의 외교가에서 여전히 회자된다. ()거리를 대폭 늘린 ·미 미사일 가이드라인 개정이 대미 협상의 백미로 꼽힌다.

 

그가 한일정보보호협정 파문으로 청와대를 떠났을 때 미국의 저명한 한반도 전문가가 이런 말을 남겼다. “김태효의 는 여론보다 국익을 앞세운 것이다.” 랠프 코사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퍼시픽포럼 대표는 한일정보보호협정 파문으로 한국은 진취적인 전략가를 하나 잃었다며 안타까워했다.

 

김 교수와의 파워 인터뷰는 지난 419일 오후 성균관대 교수회관에서 주로 이뤄졌다. 당시 화사하게 피어올랐던 벚꽃도 지고, 인터뷰가 게재되는 이날까지 한반도 정세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이에 따라 그동안 한 차례 추가 인터뷰가 있었다. 첫 인터뷰 때 그는 한 권의 책을 건넸다. 6·25전쟁 휴전회담 시 유엔군 측 수석대표였던 터너 조이 제독이 쓴 공산주의자는 어떻게 협상하는가’.

 

요즘 학생들에게 읽히고 있습니다. 공산권과 자유진영 간 협상 역사를 6~7가지 유형으로 소개한 책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항상 사전에 치밀하게 무대를 설정하고 협상 장소도 자신의 쪽으로 오게 만듭니다. 처음 제기된 의제 뒤엔 반드시 다른 진짜 의제가 숨겨져 있기 마련이죠. 협상장에 나와 있는 사람들 중엔 실세가 한 명 끼어 있어 모두들 이 사람 눈치를 봅니다. 그날의 협상에서 어디까지 갈지는 당일 아침에 다 결정됩니다. 아무리 설득을 시켜본들 그날 나갈 분량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어떨 때는 느닷없이 새 조건이나 의제들이 튀어나와 협상이 교착됩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북한의 협상은 끊임없이 새로운 문젯거리를 만들어 기존에 다른 이슈를 덮어버리며, 문제해결 조건으로 추가적인 양보 조건을 내거는 살라미 전술벼랑끝 전술로 요약된다. 막판에 몰려 자신들이 합의를 해야 할 시점이 오면 합의 문구를 최대한 느슨하게 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드는 것도 그들의 협상 방식이다.

 

“20059·19 공동성명이 바로 그런 케이스입니다. 북한은 미국과 관계 정상화를 준비한다, 그 과정에서 국제사회는 북한을 지원한다, 그러면서도 북한이 언제까지 핵을 폐기하겠다는 것은 없어요. 그다음에 잘게 쪼개서 2007년에 2·13, 10·3 합의가 나오죠. 새로 나온 고농축우라늄(HEU) 문제는 거론조차 없고, 북한은 영변의 낡은 플루토늄 핵시설을 폐기하는 대신 중유를 비롯한 대규모 에너지 지원을 확보하게 됩니다. 그러곤 나중에 기존 합의를 공개적으로 파기합니다.”

 

김 교수는 공산주의 국가들 가운데 북한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것으로 수령주의, 신정(神政)정치를 꼽았다. ‘최고 존엄을 들먹인다는 것이다. 최고 존엄이란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부자를 지칭한다. 그들의 이 같은 협상전략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북한 성명이나 매체에 최고 존엄 모독발언이 많이 등장하던데.

 

과거에도 있었는데 최근 몇 년 사이 두드러졌습니다. 북한 정권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겁니다. 1998년 개헌으로 김정일이 권력을 완성한 때부터 시작된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햇볕·포용정책 10년 기간에는 좀 여유가 있었죠. 그때엔 최고 존엄이야기를 별로 안 했어요.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2008년이 공교롭게 이명박정부 첫해죠. 그때부터 최고 존엄이야기가 빈번하게 나옵니다. 그만큼 북한 내부 문제가 복잡하고 힘들다는 이야기죠.”

 

김 교수도 북한이 힘들어진 데 일조한 것 아닌가요.

 

김 교수는 크게 웃었다. 청와대 재임 시절 내내 그는 북한이 거론한 오적(五賊)’의 일원이었다. 북의 입장에서는 지상낙원이며 모든 인민의 조국인 북한을 어렵게 만드는 남측 인사야말로 눈엣가시였을 뿐 아니라 이었을 것이다.

 

자료들을 정리하다 보니 북한에서 저에게 오적이란 표현을 쓰면서 공격한 게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조선중앙TV, 조선신보, 정부기관지 등을 합쳐 200여 건이나 되더군요. 북한 당국이나 고급 정보 소스에 접근해 있던 고위 탈북자들을 만나면 북 엘리트 사이에서 교수님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말해 주더군요.”

 

항간에는 김태효의 대북 강경정책이 남북 경색 국면을 가져왔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저는 원칙 있는 압박론자일 수는 있지만 강경론자는 아닙니다. 저를 포함해 이명박정부의 대북라인에 논쟁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김태효는 강경주의자라는 평가가 나올까요.

 

상징물이 있어야 공격이 편할 테니까요. 사람들에게 김태효=강경주의자라는 착각을 심어준 것은 북한을 포함해 그런 프레임을 가져가려는 소수의 의도된 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이 얻은 게 뭔가요.

 

의도하지 않은 북한의 변화죠. 북한이 하기 싫었던, 맞이하고 싶지 않았던 변화를 맞게 한 겁니다.”

 

김 교수가 말한 의도하지 않은 결과란 북한 내에서 싹튼 시장경제를 이른다. 김 교수가 설명을 이어갔다. “김대중·노무현 두 정권은 대북 퍼주기정책을 폈습니다. 그 돈과 물자로 북한은 핵과 미사일에 투여하고도 남은 전략적 물자를 얻었고 주민에 대한 배급제를 강화하면서 통제와 탄압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정부 들어 전략물자를 끊으니까 북한이 급해졌죠. 탄광의 금을 마구 캐내 팔거나 국민들을 모두 외화벌이에 내몰면서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다 보니 주민을 통제할 경제적 자산을 상실하게 됐습니다. 그 결과, 지방마다 장마당 같은 시장이 들어섰습니다. 시장은 한번 자리를 잡으면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됩니다. 그게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이 가져온 의도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개성공단 사태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지금 대북전략을 수립하는 입장이라면 어떻게 풀었을까요.

 

북한이 떼를 쓸 때 내버려두는 게 상책입니다. 개성공단을 닫자고 하면 닫고, 대화하기 싫다고 하면 기다리고. 자꾸 조바심을 내서 정제되지 않은 정책을 제안하면 오히려 일이 꼬이고, 북한은 그걸 꼬투리 삼아 또다시 적대적 언사로 대응하게 됩니다.”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도 같은 얘기를 했다. 김 교수는 북한 스스로가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주고, 우리가 원하는 전략적 목표가 통할 수 있는 대화의 전기가 마련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를 전략적 인내라고 강조했다.

 

현재로선 우리가 먼저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죠.

 

대화는 수단일 뿐입니다. 수단을 이루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게 주객전도입니다. 대화를 한다고 하면서 목표를 잃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화 자체에 조바심을 갖게 되면 대북정책의 궁극적인 목표가 흔들립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그런 식으로 살아왔습니다.”

 

북핵 대응을 위한 전술핵 도입 주장에 대해서는.

 

·미 간 확장 억지의 수단에 전술핵 배치는 빠져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군사전략적으로 노출돼 부담이 되기 때문입니다. 고정된 전술핵 기지는 북한이 겨냥할 수 있는 목표물이 되니까 우리에게 전략적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것보다는 항공기와 함정, 잠수함이 언제든지 북한 해역 가까이 들어가서 확실하게 핵 억지를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게 더 설득력 있고 군사전략적으로도 효과가 크다고 봅니다.”

 

지금 남북 대치 국면에서 더 조급한 건 북한이겠죠.

 

물론입니다. 북한은 과거처럼 자신이 원하는 방식과 의제를 갖고 대화하고 싶은데, 그것이 잘 안 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더더욱 우리에게 전략적 인내가 필요합니다.”

 

김 교수는 앞으로 북한 지도부 내에서 대남정책과 대외정책 노선을 놓고 갈등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북이 상황을 오판하지 말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도록 꾸준히 유도하는 게 중요합니다. 정부가 인내를 갖고 기다리면 머지않아 남북 대화의 창이 분명히 열릴 것입니다. 우리 정부는 대화 자체보다도 그 내용에 성과의 척도를 둬야 합니다. 그래야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이 축적되고, 다음 정부가 그다음 지평을 열어갈 수 있을 겁니다.”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을 2년간 연장하기로 한 데 대한 평가는.

 

목표는 명확합니다. ‘우라늄 저농축 권한파이로 프로세싱의 활용 권한확보입니다. 어느 쪽도 포기하기 힘듭니다. 파이로는 앞으로 8~9년 더 연구해야 실효성이 검증되기 때문에, 새 협정의 유효기간을 지금처럼 40년으로 둘 것인지 더 짧게 둘 것인지에 따라 전략을 택해야 합니다. 오래갈 협정이면 보다 간결하게 하면서 이용권한을 분명하게 명시해야 하겠죠. 저농축은 타협이 더 어렵습니다. 미국의 고민도 이해가 됩니다. 한국 일각에서 일고 있는 핵무장론도 신경 쓰일 것입니다. 일본과 인도에 이어 한국마저 뚫리면 미국이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대해야 하나 고민도 될 것입니다. 미 의회와 행정부의 마음을 열면서 미국에 외교적 명분을 고려해 줘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은 아니죠.”

 

북한을 대할 때처럼 전략적 인내를 해야 할까요.

 

북한은 아쉬우니까 우리가 참고 기다리면 따라오게 돼 있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아요. 외교 관료들이나 참모들에게 맡겨서도 안 돼요.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합니다. 며칠 뒤 미국을 방문하잖습니까.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깊이 있게 이 문제를 토론해야 합니다. 미국은 통치권이 움직이지 않으면 행정부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건 박 대통령의 숙제입니다. 2년 미뤄 놓고 3개월마다 실무진이 만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최고 통치권 차원에서 직접 물꼬를 터야 가능성이 열립니다.”

 

김 교수는 한·미 간에 3년간 밀당을 해온 미사일 가이드라인 협상도 원자력협상만큼이나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결국 대통령의 결단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 당국자들은 우리 대통령이 이 문제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가늠하려고 계속 시간을 끌었습니다. 일종의 치킨게임이었습니다. 이 대통령이 미국에 가이드라인을 깨겠다며 단호한 입장을 전달하면서 판도가 바뀌었습니다. 이 대통령이 협상 결렬 불사 의지를 밝힌 게 6번이나 됩니다. 그러니까 미국이 양보하더군요.”

 

박근혜정부의 대북 신뢰 프로세스를 평가해 주시죠.

 

김 교수의 답변은 명확했다. ‘정치인으로서 박 대통령은 신뢰 프로세스를 버릴 수 없지만, 북핵 폐기를 전제로 하는 한 북한은 받지 않을 것이란 말로 요약된다.

 

어차피 북한이 받지 않을 게 분명하다면 신뢰 프로세스의 구체적인 이행계획도 필요가 없겠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북한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강구해야 합니다. 학자로서의 저는 신뢰 프로세스에 부정적이었지만, 당국자를 경험한 저는 정부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야 국민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제시하면서 여러 대안을 찾을 명분이 있거든요. 모든 가능성을 닫아 버리면 정치 소통도 안 되고 현명한 지도자가 될 수 없겠죠. 그래서 정치나 외교안보라는 게 힘든 길인 것 같습니다.”

 

박 대통령이 오는 7일 워싱턴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합니다. 대외협상 전략가로서 박 대통령과 외교안보팀에 어떤 조언을 주고 싶습니까.

 

두 가지입니다. 우선 북한 문제를 논의하는 데 있어 우리 쪽이 선제적으로 대북정책의 궁극적인 지향점과 전략,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제의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미국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동북아 전략의 관점에서, 중국과의 관계에서 한반도를 보게 되겠죠. 우리가 지향하는 남북관계의 발전과 통일의 관점보다는 현상유지(status quo)’ 차원에서 볼 공산이 큽니다. 공개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한·미가 이 문제만큼은 앞으로 5년간 집중적으로 해나가자고 하는 방안을 내놔야 합니다.”

 

두 번째는요.

 

일본 문제입니다. 미국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한국이 가담해줄 것을 바랍니다. 미국 TPP 구상의 핵심은 일본의 참여입니다. ·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같은 효과를 보려는 겁니다. 좀처럼 쉽지 않겠죠. 오바마 대통령이 임기 내에 끝내겠다고 호언하지만 난항이 예상됩니다. 일본의 정치 상황과 농업 구조가 걸림돌이 되겠죠. 이때 한국이 TPP 협의에 가담해 다른 나라들이 시장을 열도록 역할을 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남북관계도 그렇지만 한·일 관계도 참 답답합니다. 요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막 나가는 경향도 있고요.

 

그렇다고 우리도 덩달아 맞불을 놓고 흥분한다면 그건 세련되지 못한 처사일 겁니다. 따끔하게 지적하되, 우리의 실력과 지렛대를 강화하는 게 격조 있고도 힘 있는 외교를 만들어 가는 길이라고 봅니다.”

 

한일정보보호협정은.

 

.”

 

김 교수가 머뭇거렸다. 협정 추진 과정에서 여론의 뭇매를 맞아 청와대를 떠나야 했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은 듯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현재의 한·일 관계에 비춰 당장 협정 추진을 고려하기는 힘든 상황입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북한이라는 위협에 같이 대처하자는 취지 자체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공감하고 납득하도록 한··3국이 함께 노력해 가야 할 겁니다. 한편으로는 과거사 문제에 관해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와 공조를 강화하면서요.”

 

결국은 한일정보보호협정은 체결해야 한다는 거지요.

 

일본의 그릇된 태도는 그것대로 질타해야 합니다. 그러나 일본이 밉다고 필요한 협력까지 거부한다면 그건 현명한 외교가 아닙니다. 국민들의 민족주의적 감정만 의식하면 정치가나 관료들이 쉬운 길에 대한 유혹을 받게 됩니다. 지난해 협정이 무산될 때도 똑같았습니다. 정부나 여당이 쉬운 길을 택한 거죠. 일본과 감히 안보협력을 하다니, 그건 매국노야 하는 프레임에 걸린 거죠. 대선의 해에 일본과의 협력이 왜 필요한지를 힘들여 설득하기보다는, 국민의 감정에 편승해 표를 얻는 게 쉬운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 아닌가요.”

 

그 파장으로 결국 옷을 벗었는데, 여전히 아쉬움이 많군요.

 

제가 민감한 정치적 파장을 더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점은 반성합니다. 그러나 한·일 두 나라의 대표가 협정에 서명하기 한 시간 전에 그걸 전격 취소해야 했는지,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국민 감정만 의식해 정부의 중요한 외교안보 결정을 뒤집은 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마지막 취소 결정 순간에 그 사실을 저나 심지어 천영우 외교안보수석조차 몰랐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마지막 순간에 양국 서명을 막은 결정 라인이 누구였습니까.

 

현직에 있는 이들에게 피해 주기는 싫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손의 정체에 대해 무언의 폭로를 했다.

 

박근혜정부 외교안보팀에 조언을 부탁합니다.

 

애국심을 굳이 강조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너무나 당연한 얘기이니까요. 열정만으로도 안 됩니다. 열정을 냉철한 전략으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김 교수는 현 정부의 외교안보팀이 때론 사무실에서 숙식하면서, 때론 밤잠을 설치면서 일에 몰두하는 상황에 대해 걱정했다. 열심히 일하는 것도 좋지만 일단 건강을 챙기는 게 중요하고, 정책의 방향과 목표를 좀 더 분명히 설정해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게 좋겠다고 김 교수는 제안했다.

 

인터뷰=허민 정치부장

 

기획관이 말하는 천안함 폭침 내력

서해교전 ‘12당한 , 승률 높이려 천안함 도발

 

◀김태효 성균관대 교수가 지난 419일 캠퍼스 내 교수회관 야외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개성공단 등 최근 남북 현안에 대한 생각을 밝히고 있다.

 

김태효 교수는 이명박정부의 강경정책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됐다는 일각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는다.

 

천안함 폭침은 MB 정권의 보수성 때문이 아니라, 북한 지도부의 내적 필요성과 변화 요인에 따라 일어났다는 점을 그는 강조했다. 김 교수가 정리한 천안함 폭침의 내력(來歷)’은 이렇다.

 

김대중정부 2년차이던 199961차 서해교전이 터졌다. 북한이 처음으로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전면 공격해 온 사례다. 그때 우리 해군이 열심히 대응해 북한의 희생이 컸다. 김대중정부는 이 사실을 불편해했다. 얼마 후 우리 서해함대사령부의 지휘관들이 한직으로 물러나거나 군복을 벗게 된다. 교전수칙은 즉시 수세적으로 바뀌었다. DJ 임기 말인 2002년 여름 한·일 월드컵 기간에 2차 서해교전이 발생했다. 바뀐 교전수칙 탓에 우리 해군은 제대로 대응도 못한 채 6명이 전사한다. 2차 서해교전은 김대중정부가 NLL 수호 의지가 없다는 점을 북한에 확인시켜준 사건이다.

 

노무현정부 때는 북한의 NLL 도발 자체가 필요 없어졌다. 노 전 대통령이 ‘NLL은 영토선이 아니다라고 스스로 시인하는 마당에 괜한 도발을 일으킬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정부 때 북의 도발이 없었던 게 아니다. 1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가 2006년에 일어났다.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뒤 200911월 또다시 서해교전이 벌어졌다. 정권이 바뀌자 반응을 테스트한 것이다. 교전수칙을 이미 적극적으로 바꾼 우리 군은 전쟁에서 승리한다. ‘12를 당한 북한은 화가 났다. 내부적으로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동요하는 권력 엘리트들을 다잡고 김정은 후계체제의 기반을 닦아야 했다.

 

이를 위해선 남한과의 전쟁을 최소한 ‘22동률로 만들어야 했다. 기회를 엿보던 북은 해상에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 20103월 바다 밑에서 어뢰를 동원해 천안함 도발을 일으킨다.’

 

김 교수는 남한의 정권 교체나 노선의 변화라는 외적 환경 이전에 북한 권력구조 변동이란 내적 요인에서 천안함 폭침 사건의 주된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