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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대한민국 청춘들

풍월 사선암 2013. 2. 16. 08:55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대한민국 청춘들

 

두 번의 휴학 끝에 학업을 마치고 졸업을 코앞에 둔 김인호(가명28) . 밤잠을 설치며 열심히 공부한 덕에 서울에 있는 일류 대학에 합격, 고향을 떠나 상경했던 게 정확히 9년 전 일이다. 그는 부모님에게는 자랑이었고, 고향 친구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에겐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암울하기만 하다. 졸업이 오늘내일인데, 아직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더욱이 졸업 후 갚아야 할 빚만 3000만원에 달한다. 어쩌다 이런 빚을 지게 됐나 싶기도 하지만 이유라고 해봐야 딱히 없다. 시골에서 고생하시는 부모님 생각에, 취직하면 스스로 갚겠다 하고 학기마다 학자금을 대출받은 것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20대를 빚으로 시작했어요. 비싼 등록금을 내며 어렵게 대학을 마쳤는데, 앞길이 막막합니다.” 김 씨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푸념을 쏟아낸다.

 

미래가 캄캄한 청년이 어디 김 씨뿐이랴. 유감스럽게도 어쩌면 그는 이 시대를 사는 대한민국 청년들의 자화상일지 모른다. 먹을 것이 없어 배를 곯았던 부모 세대들은 배부른 소리 한다고 질책할 일이지만 이들이 맞닥뜨린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성공 코드의 하나인 대학에 다니려면 공부도 잘해야겠지만 등록금으로 수천만원을 투자해야 한다. 그렇다고 취업이 보장되지 않으니 졸업 후에는 취업전쟁에 시름없는 날이 없다.

 

우스갯소리로 지금 청년들은 스스로 아프리카(아픈) 청춘이라고 한다. 눈물나는 사회 현실 속에서 일상은 늘 불안아픔에 둘러싸여 있다는 의미다. ‘88만원 세대’ ‘이태백 세대라는 용어는 현재 우리나라 청년들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힘들게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가도 상당수는 졸업과 동시에 실업자가 되는 게 요즘 세태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2월 대학을 졸업한 188000명 가운데 취업을 한 사람은 66000명에 그쳤다. 41000명은 실업 상태이며, 81000명은 취업 준비 중이거나 대학원에 진학한 비경제활동 인구였다. 취업이 힘들다 보니, 고의로 졸업을 늦추는 청년들도 즐비하다. 이들을 칭하는 신조어로 ‘NG(no graduation졸업유예)이란 말까지 생겨났다. 기업의 기졸업자 기피 현상은 대학졸업장은 곧 실업증명서라는 사회적 인식으로 이어졌고, 학생들은 실업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을 피하고자 대학 울타리를 은신처로 삼고 있는 것이다. ‘대학 5학년은 이제 당연시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5년째 학교를 다니고 있는 전창수(가명26) 씨는 주변 동기나 다른 학교 친구 중에도 취업이 안 돼, 불가피하게 NG족이 되는 경우가 많다백수로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것보다 학생 신분으로 남아 있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에 졸업을 미뤘다고 토로했다.

 

가난이 죽을병이야라고 토로하는 드라마 속 주인공이 처한 ‘88만원 세대는 지금 이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 ‘노력이 나를 만든다는 신조어 아래 피나는 노력을 거듭했지만, 변변찮은 형편에 유학 한 번 다녀오지 못한 주인공은 자신의 이마에 새겨진 출신이라는 낙인 아래 결국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밖에 없다.

 

시인 박노해의 시 시대고독한 구절이 스쳐간다. ‘이 풍요로운 가난의 시대에는 나 하나 지키는 것조차 얼마나 지난한 싸움인가.’

 

헤럴드경제  2013-02-15  박영훈 기자

 

 

시대고독 - 박노해

 

한 시대의 악이

한 인물에 집중되어 있던 시절의 저항은

얼마나 괴롭고 행복한 시대였던가.

 

한 시대의 악이

한 계급에 집약되어 있던 시절의 투쟁은

얼마나 힘겹고 다행인 시대였던가.

 

고통의 뿌리가 환히 보여

선과 악이 자명하던 시절의 결단은

얼마나 슬프고 충만한 시대였던가.

 

세계의 악이 공기처럼 떠다니는 시대

선악의 경계가 증발되어 버린 시대

더 나쁜 악과 덜 나쁜 악이 경쟁하는 시대

합법화된 민주화 시대의 저항은 얼마나 무기력한가.

 

구조화된 삶의 고통이 전 지구에 걸쳐

정교한 시스템으로 일상에 연결되어 작동되는

'풍요로운 가난'의 시대에는

나 하나 지키는 것조차 얼마나 지난한 싸움인가

 

옮음도 거짓도 다수결로 작동되는 시대

진리는 누구의 말에서나 반짝이지만

그것을 살고 실천할 주체가 증발되어 버린 시대

혁명의 전위마저 씨가 말라가는

이 고독한 저항의 시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