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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에 빠진 빠링허우세대 취펑화가 밝힌 ‘진짜 중국’

풍월 사선암 2012. 12. 19. 09:06

중국은 사춘기의 나라 불안정하고 예민해 중국인 마음 모르면 중국 진출 기업 백전백패

 

한류에 빠진 빠링허우세대 취펑화가 밝힌 진짜 중국

 

중국은 지금 사춘기의 나라입니다. 사춘기 소녀처럼 감정이 예민하고 불안정합니다. 지역마다 특성도 완전히 달라 마치 다른 나라 같습니다. 중국인은 대륙인이라는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반면 서양에 대한 열등감을 갖고 있어요. 중국인의 자존심과 열등감을 건드렸다가는 큰코다칩니다.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가 실패하고 돌아오는 기업들을 보면 넓은 땅, 많은 인구, 큰 내수시장만 주목했지 중국 문화나 소비심리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나 다름없어요. 중국인의 마음은 모른 채 만만디의 나라로 만만하게 보고 접근했다가는 백전백패합니다.”

 

한국 기업들의 중국 시장 실패를 보다 못해 진짜 중국을 알려주겠다고 나선 중국인이 있다. 취펑화(崔風華·32) IGM세계경영연구원 객원연구원. 젊은 나이에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을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한국 기업의 고민을 해결하겠다고 나선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걸까. 지난 1211일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굳이 중국인이라고 밝히지 않으면 외모도 말도 한국인 같았다.

 

안재욱에 반해 한류 열병

 

먼저 그에 대해 알아보자. 취펑화는 1982년 베이징에서 태어난 빠링허우(80)세대. 산아제한정책 이후 태어나 아낌없는 부모의 지원을 받고, 급격한 산업화의 혜택을 누리며 소공주, 소황제로 자란 전형적인 신세대이다. 그가 베이징 제2외국어대 일본어학과를 다니던 1990년대 후반 한류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한국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주인공 안재욱이 그의 가슴에 꽂힌 후 그는 한류 열병을 앓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미국·영국 등으로 영어연수 가기 바쁠 때 그는 안재욱을 가슴에 품고 한국으로 왔다. 그때가 대학 2학년. 한국은 기대 이상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발전되고 사람들은 너무 깨끗했다. 아는 단어가 다섯 손가락을 넘지 못하는 한국어가 문제였다. 친구도 없고 도움받을 곳도 없었다. 안재욱은 잊고 한국어 공부에 나섰다.

 

연세대 어학당에 다니면서 틈만 나면 지하철을 타고 옆자리 앉은 사람에게 말을 걸었어요. 원래 수줍음 많고 소극적인 성격인데 그만큼 절박했던 거죠.”

 

한국은 알수록 더 알고 싶은 나라였다. 1년 반 어학당을 다니다 언어에 자신감이 붙자 명지대 국제통상학과에 입학했다. 첫 교양과목 수업시간. 그는 다시 절망했다.

 

수업의 30%도 알아들을 수가 없는 거예요. 수업이 끝난 빈 강의실에서 1시간 동안 엉엉 울었어요. 자존심도 상하고 어떻게 해야 하나 절망스럽기도 하고. 그 뒤로 진짜 미친듯이 한국어 공부를 했어요.”

 

한국어를 배우려면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수업을 녹음해서 2~3번씩 반복해서 듣고, 한국민속예술 동아리에 들어가 장구도 배우면서 한국 문화를 익혔다. 졸업논문 주제도 한옥이었다. 입학할 때 수업도 알아듣지 못했던 그는 차석으로 졸업, 전액장학금을 받아 대학원까지 진학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제 그를 보고 한국어 잘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당연히 한국 사람으로 생각할 만큼 그는 한국이름인 최지혜가 됐다. 인터뷰를 하면서 그가 중국인이라는 것을 자꾸 잊어먹었다.

 

대학원을 졸업한 후 홍콩 리카싱그룹의 계열사인 하버프라자호텔 한국지사에서 2년간 기업마케팅을 하다 CEO 교육전문 기관인 IGM세계경영연구원(회장 전성철)에 들어갔다. 연구개발본부와 해외사업팀에서 3년여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중국 관련 사업을 진행하고 중국 기업 연구·강의 개발 등을 맡았다. 하버프라자 근무 때부터 한국 기업의 임원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는데 의외로 중국의 핵심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 없었다.

 

좋은 기업들이 중국에서 실패하는 것을 보면서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중국 관련 정보가 많지만 기업들은 정작 중요한 중국 사람의 심리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않을 뿐더러 정확한 정보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기회가 되면 중국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을 돕고 싶었습니다.”

 

한국 기업을 돕고 싶다는 그의 생각은 책으로 엮어졌다. IGM에서 일하면서 중국에 대해 연구한 것을 바탕으로 한국 기업인들이 중국에 진출할 때 가장 고민하는 것을 아하 차이나! 무엇이 진짜 중국인가’(IGM 북스)라는 책에 담았다. 실제 성공한 기업과 실패한 기업의 예를 들어가며 중국 문화와 사람들을 분석해놓았다. 한국어가 유창해도 외국인이 한국어로 책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버프라자 시절 2년 동안 지인들과 독서클럽 활동을 하면서 매주 1권씩 한국 소설 등을 읽으며 키운 글쓰기 실력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무엇이 진짜 중국인가

 

한국인이 중국에 대해 가장 오해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중국인의 마음을 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중국인이 말하는 진짜 중국인의 마음을 들어보자.

 

먼저 그는 중국에서 낭패를 당한 기업의 공통점은 중국인의 자존심과 열등감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존심을 건드려 혼쭐이 났던 기업으로는 도요타자동차와 맥도날드가 있다. 도요타자동차는 사자 석상이 도요타 차를 향해 인사하는 광고를 제작했다가 중국인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공식적으로 사과를 해야 했다. 사자는 중국의 상징이다. 사자 석상이 일본 자동차를 향해 고개를 숙였으니 중국인이 분노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맥도날드는 쓰촨성 지진피해 복구에 150만위안(27000만원)을 내놓았다가 곤욕을 치렀다. 중국인들이 생각하기에 맥도날드의 기부금은 중국을 무시한 금액이었던 것. 결국 불매운동으로 이어지면서 맥도날드 측은 싹싹 빌고 1000만위안(18억원)을 추가로 내놓아야 했다.

 

세계적인 식품업체 네슬레는 중국인의 열등감을 건드리면서 신뢰를 잃었다. 중국 규정으로는 문제가 없었지만 유럽에서 판매 금지된 제품을 팔았다가 우리는 유해물질을 먹어도 되느냐며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중국인들의 자존심을 세워주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이 답이라고 조언한다.

 

과시욕을 활용하라

 

다음은 중국인의 과시욕을 활용하라는 것이다. 10억원짜리 롤스로이스가 불티나게 팔리고 한국에 온 중국 관광객들이 명품백을 싹쓸이해 가는 것은 바로 과시욕 때문이다. 급격한 산업화가 진행되고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상류계층임을 과시하려는 심리가 강하다. 특히 농민 출신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자격지심 때문에 보여주기에 더 열중한다. 브랜드 로고가 큼지막한 루이비통이나 구찌가 유독 중국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이다. 한국 사람들은 남들이 안 하는 명품을 선호하지만 중국 사람들은 한눈에 알아보기 쉬워야 한다.

 

중국인의 과시욕을 꿰뚫어보고 고급화 전략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한국 기업은 화장품업체인 미샤와 플라스틱 용기업체인 락앤락이다. 한국에서 미샤는 저가의 이미지이지만 중국에 진출할 때는 한국보다 3~4배 비싼 고가로 가격을 설정했고, 매장 인테리어도 백화점처럼 고급스럽게 꾸몄다. 중국에서 미샤는 화이트칼라 여성들이 쓰는 고급화장품 이미지로 재구매율이 70%에 이른다고 한다.

 

락앤락도 중국에 진출할 때부터 한국의 압구정동 같은 상하이의 부자동네 화이하이루에 1호점을 냈다. 가격도 중국 일반제품보다 비싸게 책정해서 상류층에 속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자극해 대박이 났다. 2011년 락앤락의 중국 매출은 한국 시장을 훌쩍 뛰어넘어 2100억원을 기록했다.

 

빠링허우세대를 연구하라

 

월광족(月光族), 도도족(跳跳族), 개미족을 아시는지. 빠링허우세대를 이해하는 키워드들이다. 빠링허우세대인 그는 한국 기업에 중국의 신세대들이 뭘 원하는지 공부하라고 조언한다. SNS를 통한 정보 전파력으로 무장한 그들이 중국의 소비문화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빠링허우세대인 ‘00학번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면서 중국의 소비문화도 폭발했다. 중국에서도 최근 그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빠링허우세대들의 특징은 과도한 사랑을 받고 자라 힘든 것을 참지 못하고 순간적인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것. 버는 족족 쓰는 월광족, 일이 힘들면 밥 먹듯이 직장을 옮기는 도도족, 도시로 모여들어 한 집에서 3~4명이 모여 살면서 자신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는 개미족들이 그들이다. 계획적인 구매보다 기분에 따른 충동구매를 하는 것도 특징이다.

 

빠링허우세대들이 사회의 주축이 되면서 소비문화뿐만 아니라 중국인의 가치관도 변하고 있다. 이들은 자아실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출세 욕구가 강하다. 돈보다 승진이 중요한 빠링허우세대들에게 한국 기업은 인기가 없다. 간부급은 전부 한국에서 파견을 보내다 보니 그들이 올라갈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 산하 연구기관이 한국을 비롯해 미국·유럽·일본·홍콩·대만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선호도 조사에서 한국은 5위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빠링허우세대들이 가장 취업하고 싶어하는 기업은 세계적인 생활용품업체 P&G와 유니레버라고 한다. 두 회사 모두 명확한 승진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또 빠링허우세대와 더불어 소비를 이끄는 주체인 여성을 타깃으로 한 마케팅을 하라고 조언한다. 중국은 숭녀공처(崇女恭妻) 문화. 여성을 받들고 섬기기 때문에 경제 또한 절대적으로 여성이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인에 대한 오해와 진실

 

중국은 모든 것이 관시(關係)로 통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아직도 관시면 만사 오케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들의 각축장인 만큼 이미 글로벌 기준이 적용되고 있기 때문에 철저하게 비즈니스로 접근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또 관시는 돈이나 술자리로 만들어진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고 충고한다. 오랜 시간 정과 의리가 쌓여야 관시가 맺어지는 것이지 한국의 빨리빨리식으로 신뢰관계를 만들려고 하면 돈만 버리고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지역마다 접근법이 달라야 한다면서 북방과 남방은 다른 나라라고 생각하고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호탕한 기질의 북방 사람을 접대할 때는 북적북적한 삼겹살집이 좋고, 섬세한 남방 사람은 정갈한 한정식집으로 데려가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한다.

 

지역별 차별화 전략으로 성공한 기업은 독일의 자동차업체 폭스바겐. 북방엔 강력하고 파워풀한 차로, 남방 쪽엔 디자인이 좋은 차로 승부를 걸어 성공했다.

 

중국은 만만디라는 생각도 이젠 잊어야 한다. 중국인은 느리지만 비즈니스는 초스피드이기 때문이다. 미국 가전업체인 월풀이 중국 진출 15년 동안 수십억위안을 쏟아붓고도 점유율 0.33%로 참패한 것은 급변하는 중국 시장을 쫓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월풀은 홍콩에 아시아본부를 두고 미국 본사에서 모든 것을 조정했다. 의사결정이 늦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 서류가 홍콩을 거쳐 미국을 갔다 다시 홍콩을 거쳐 중국으로 오면 이미 시장의 트렌드는 변해 있다. 그는 한국의 이랜드와 KFC가 중국에서 성공한 요인은 현지에 본부를 둔 덕분에 신속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365일 중 기업들이 가장 긴장해야 하는 날은? 315소비자의 날이다. 그는 지난해 금호타이어의 대량 리콜사태도 소비자의 날이 아니었다면 조용히 묻혀 넘어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신풍속도, 점심시장을 주목하라

 

한국 사람이 도전할 만한 사업을 묻자 그는 어린이·여성 관련 사업이 유망하다고 말했다. 한 자녀에 올인하는 중국 엄마들의 교육열이 한국 못지않게 높아 급팽창하는 사교육시장이야말로 황금알 시장이라는 것. 올 중국의 사교육시장은 82조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기업교육 등 어른용 교육콘텐츠시장도 그가 유망하게 꼽는 분야이다.

 

그는 거대한 요식시장도 주목하라고 말했다. 중국요리협회는 시장규모가 20102조위안(360조원)에서 201333억위안(594조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점심시간을 눈여겨봐야 한다. 중국인의 점심시간은 두 시간 정도. 긴 점심시간을 겨냥한 상품과 서비스들이 등장하면서 점심시장이 급속하게 커지고 있다고 한다. 자기 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빠링허우세대들이 만든 신풍속도로, 낮잠용 의자가 불티나게 팔리고 점심을 먹으면서 피부마사지를 받기도 한다. 그는 점심시장은 아직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면서 점심+영화같은 특별 프로그램 등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최지혜가 된 취펑화

 

한국 생활 10, 이젠 중국보다 한국이 편하다는 그는 한국 기업이 정말 잘됐으면 좋겠다면서 ·중 모두 정권이 바뀌는 만큼 좋은 관계형성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중국 유학생이 많아지면서 중국 관련 뉴스들이 실시간 중국으로 퍼지는 것도 한국 사람들이 염두에 둬야 한다고 했다. 성숙이 덜된 사춘기 나라이기 때문에 사소한 말실수로 중국인의 자존심을 건드렸다가 어이없는 감정몰이에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인은 아직 정치와 기업에 대한 감정분리를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올 6월 에너지 관련 사업 제의를 받고 IGM을 나와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IGM과는 객원연구원으로 인연을 끊지 않고 있다. 그는 사업보다는 중국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을 위해 마케팅 전략 등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싶어 다른 길을 모색 중이다라고 말했다.

 

당신을 한국으로 이끈 안재욱은 만났느냐고 물었더니 한 번도 못 만났다면서 안재욱에게 감사한다. 기회가 되면 내 책을 주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꼭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요즘에도 한국 드라마를 한번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그는 안재욱은 못 만났지만 안재욱처럼 멋진 한국 남자를 만나 내년 봄 신부가 된다. 중국인 취펑화이자 한국의 며느리최지혜가 말했다. “한류스타 열풍처럼 중국에서 한국 기업 열풍이 불기를 바랍니다.”

 

2012년 12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