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명상글

부자에 대한 편견 / 貧而無諂(빈이무첨)

풍월 사선암 2012. 9. 5. 19:02

<오후여담>부자에 대한 편견

 

카를로스 슬림 멕시코 텔맥스텔레콤 회장,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주,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이쯤 나열하면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세계적인 부자(富者)들이구나! 그런데 그 순위를 보도하는 기사에서 종종 '불편한 친절'과 맞닥뜨리곤 한다. 부자라는 말을 모시고 다니는 수식어들이다. 세계적인 갑부(甲富), 전 세계 갑부 10, 세계 최고의 갑부 등의 표현이다. '갑부 = 첫째 가는 큰 부자'임을 잊었든지 독자를 무시한 표현이다. 그냥 갑부 또는 부자라고 하거나 '세계 10대 부자'라고 하면 충분하다.

 

이들 부자를 가리키는 용어는 시대와 동서양에 따라 다르다. 예로부터 이 땅에서는 천석꾼 또는 만석꾼이라 했다. 1차 산품인 벼 수확량 기준이다. 하지만 최근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내놓은 '2012년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오늘의 부자는 금융자산이 10억 원 넘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서양식으로 계량화된 금융 자산 기준으로 그 개념이 바뀌었다. 서양에서는 백만장자 밀리어네어(millionaire)나 억만장자 빌리어네어(billionaire)라는 말을 많이 쓴다.

 

지칭어처럼 부자의 치부(致富) 과정 또한 여러 갈래다. 상속(相續) 부자가 있는가 하면 자수성가(自手成家)한 부자도 있다. 당대의 부자 중에는, 신흥 부자에 속하는 졸부(猝富) 즉 벼락부자가 있고, 법망을 넘나들면서 이룬 도둑 부자도 있다. 전체 다수의 청부(淸富) 가운데 일부 탁부(濁富)도 끼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겉보기엔 거지 행색으로 가난해 보이나 실상은 집안 살림이 넉넉한 사람, '난거지 든부자'가 있고, 정반대인 '든거지 난부자'도 있다.

 

한자의 '가난할 빈()'자는 재물()을 칼()로 잘라 나눈다()는 뜻이다. 살림살이가 궁핍할 수밖에 없다. 그 반면 '넉넉할 부()'자는 집()에 술독()이 가득할 정도로 재물이 넉넉하다는 뜻이다. 쌀독에서 인심 난다는 말도 '술독'에서 나왔음직하다. 빈자와 부자에 대한 자계훈(自戒訓)이 많지만, '빈이무첨 부이무교(貧而無諂 富而無驕)'라는 문구는 새겨둘 만하다. 안중근 의사가 감옥에 써 붙였다는 글귀다.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지만 교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누구나 부자를 꿈꿀 수 있고 부자가 될 수 있는 사회가 자본주의 국가다. 그러니 모두를 '도둑 부자'로 보는 편견부터 버려야 한다.

 

문화일보|입력2012.07.17 /황성규/논설위원

 

[고전 속 성어]貧而無諂(빈이무첨) 가난해도 아첨하지 않는다.

 

◀子貢(자공· BC 520BC 456)의 초상.

 

論語(논어學而(학이)편에 출전한다. 子貢(자공)"가난해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해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자공왈 빈이무첨 부이무교 하여)"라고 묻자, 공자께서 "괜찮다. 그러나 가난해도 즐거워하며 부유해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 못하다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자왈 가야 미약빈이락 부이호례자야)"라고 대답했다.

 

禮記(예기坊記(방기)"가난하지만 악을 좋아하고 부유하지만 예를 좋아하고 가족이 많으면서 편안해 하는 것은 천하에 드물다 貧而好樂 富而好禮 衆而以寧者 天下其幾矣(빈이호악 부이호례 중이이녕자 천하기기의)"고 했고, 史記(사기)後漢書(후한서)에는 "貧而樂道 富而好禮(빈이락도 부이호례)"라 했으므로 樂(락)뒤에 道(도)가 빠진 闕文(궐문)으로 보인다.

 

諂(첨)은 비굴한 것이고, 驕(교)는 잘난 체하여 마음대로 행동함이다. 보통 사람들은 가난하거나 부유해지면 자신을 지키지 못해 반드시 아첨이나 교만, 이 두 가지 병폐에 빠지게 된다. 아첨하거나 교만하지 않는 일도 힘들지만 이것은 자신을 지키는 데 그칠 뿐, 빈부를 초월할 수는 없다. 그래서 공자는 ""라고 대답한 것이니, 겨우 괜찮은 정도로 미진한 것이 있다, 충분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자공은 貨殖(화식)과 언어로 이름난 제자이다. 貨殖은 각종 경제활동으로 재물을 불리는 것을 이른다. 자공의 경제력이 없었으면 공자의 주유열국도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자공은 어려서 가난했지만 화식을 통해 부유하게 된 사람이다. 그러나 부유해지고도 스스로를 잘 지켰으니, 공자께서 자공의 성취를 부분적으로 인정하면서 자공이 앞으로 힘써야 할 바를 제시한 것이다.

 

동아대 철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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