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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뭔데 끼려고 그래?" vs "국회의원한테 개겨?"

풍월 사선암 2012. 6. 6. 10:16

"네가 뭔데 끼려고 그래?" vs "국회의원한테 개겨?"

 

선우 정 사회부 차장 / 조선일보 입력 : 2012.06.05


'517일 광주에서 있었던 일'이란 임수경씨 글은 12년 전 글임에도 살아있는 현장성과 디테일한 묘사 때문에 역대 인터넷 폭로 글의 백미(白眉)로 평가받는다. 20006월 한 언론에 실린 원문을 보면, 임씨는 운동권 선배들이 술판을 벌이던 룸살롱의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 선배는 아가씨와 어깨를 붙잡고 노래를 불렀고, ○○ 시인은 아가씨와 블루스를 추고 있었고, ○○ 선배는 양쪽에 아가씨를 앉혀두고 웃고 이야기하느라 제가 들어선 것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임씨는 동석한 사람들을 모두 실명(實名)으로 썼다. 운동권 출신 386 국회의원이 대부분이었다.

 

사달은 선거에서 낙선한 우○○씨의 주폭(酒暴) 짓에서 시작된 모양이다. "누군가 제 목덜미를 뒤에서 잡아끌며 욕을 하더군요. '야 이×, 네가 여기 왜 들어와, 나가. 이놈의 계집애, 네가 뭔데 이 자리에 끼려고 그래? ××.' 저는 다른 방으로 갔습니다. ○○가 들어와 앉더군요. '아 그 계집애, 이상한 ×이네. 아니 제가 뭔데 거길 들어와, 웃기는 계집애 같으니라고.' 참을 수 없었습니다. 들고 있던 참외를 내던지며 저도 욕을 한마디 했지요. '이런 씨×, 어따 대고 이×, ×이야.'" 임씨는 폭로 글에서 자신이 말한 '×'을 제외한 모든 쌍욕을 그대로 적었다.

 

이런 저질 대화를 지면에 옮기는 것은 임씨의 글이 당시 '386 운동권'의 기묘한 권력관계와 척박한 교양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임씨는 '광주의 정신을 밟아버렸기 때문'이라고 폭로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임씨가 자리를 박차고 나온 것은 자신에겐 쌍욕을 계속하던 우씨가 국회의원 당선자 김○○씨에게 사과한 행동 때문이었다. 임씨는 이렇게 적었다. "나는 술집 아가씨들 앞에서 이× × 소리 듣고 끌려나와야 하고. 국회의원한테만 미안하냐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아가씨 나오는 술집에서 양주 마실 팔자가 안 되니 나가서 소주나 먹자고."

 

권력을 가진 386 국회의원, 그들 사이에서 술을 퍼마시는 낙선자, 낙선자에게 "어딜 끼느냐"며 쌍욕을 들은 임수경. 12년 뒤 상황은 완전히 변했다. 술판을 벌이던 국회의원 8명 중 6명이 낙선했고, 그중 1명은 고인(故人)이 됐다. 반대로 임씨와 임씨에게 '주폭짓'을 하던 낙선자 우씨는 국회의원이 됐다. 배지를 달자마자 가해자가 된 주폭 피해자 임씨의 변신은 실로 극적이다.

 

지난 1일 임씨와 언쟁을 벌인 탈북 대학생 백요셉씨는 19대 국회의원 임수경씨에게 들은 이야기를 이렇게 적었다. "어디 근본도 없는 탈북자 ××들이 굴러와서 대한민국 국회의원한테 개겨? 대한민국에 왔으면 입 닥치고 조용히 살아, 이 변절자 ××들아." 12년 전 임씨가 들은 폭언과 무언가 통하는 듯하다. 국회의원 신분에 대한 유아기적 특권의식, 독서를 요구받지 않은 학력고사 세대의 낮은 교양 수준.

 

임수경씨는 2000년에도 유명인이었다. 그날 5·18 전야제 사회를 본 임씨에게 우씨가 "이름 또 팔아먹는구나"라고 비아냥거릴 정도였다. 하지만 12년 뒤 임씨가 폭언을 한 백씨는 우리 사회가 보호해야 할 무명 탈북자다. 임씨가 우씨보다 비열한 이유는 또 하나 있다. 하태경 의원을 끌어들여 새누리당과의 대립으로 넘기려는 사후(事後) 행동이다. 여당을 물고 늘어지면 여론이 바뀔 것이라는 착각 역시 정치적 교양이 부족한 탓일 것이다.



임수경의 편지

 

<20005.18 전야제 날 광주에서 386의원들의 새천년NHK단란주점 추태 시 쓴 편지>

 

저는 5시간 전야제 사회를 보며 저녁밥도 쫄쫄이 굶어가며 내내 서있었습니다. 그때 정범구박사님께 전화를 걸었더니 일행이 있으니 저보고 오라고 하시더라구요. 저는 여러사람들 모인 곳에 가기가 뭐해서 처음엔 안 가겠다고 했는데 대여섯 차례의 전화를 계속 받고보니 그곳에 안가는 것이 참 결례인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장소가 어디인지를 물으니 새천년이 어쩌구 NHK가 어쩌구 하시대요. 저는 새천년민주당 사람들이 NHK하고 인터뷰를 하고 있는줄 알았어요. 그런데 알고보니 그곳은 새천년NHK 라는 가라오케였습니다. 어쨌든 그곳으로 가서 그분들이 계신 룸으로 들어갔습니다. 찾을 것도 없이 적어도 7~8개의 룸이 있는 그 술집의 손님이 있는 방은 그 방이 유일했습니다.

 

문을 열자 송영길 선배가 아가씨와 어깨를 붙잡고 노래를 부르고 계시더군요. 박노해 시인은 아가씨와 블루스를 추고 있었고, 김민석 선배는 양쪽에 아가씨를 앉혀두고 웃고 이야기 하느라 제가 들어선 것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마이크를 잡고 있던 송영길 선배님은 저를 보고 같이 노래를 부르자는 듯이 손짓을 하셨고, 언뜻 보기에 정범구 박사를 포함하여 김성호, 장성민, 이종걸, 김태홍, 이상수 의원 등이 있더군요.

 

저는 아가씨들이 있건 말건 선배들에게 인사나 하고 가려고 다가서는 순간, 누군가 제 목덜미를 뒤에서 잡아끌며 욕을 하더군요.

 

'야 이--, 니가 여기 왜 들어와, 나가.'

믿고 싶진 않지만 이 말을 한 사람은 우상호씨였습니다.

 

술집 아가씨들은 놀라서 모두 저를 쳐다보았고, 저는 매우 당황했습니다. 우상호는 (미안합니다. 저는 이 사람에게 더 이상 존칭을 붙여주고 싶지 않습니다.) 다시금 말했습니다.

 

'-놈의 기--, 니가 뭔데 이 자리에 끼려고 그래? --.'

 

저는 일단 방을 나와 저와 함께 온 전야제 팀이 앉아있는 방으로 갔습니다.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참외를 하나 집어들었는데 우상호가 들어와 앉더군요.

 

그는 다시 말했습니다.

'아 그 기--, --한 년-이네. 아니 지가 뭔데 거길 들어와, 웃기는 기--애 같으니라고.'

 

한두 번도 아니고 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손에 들고 있던 참외를 테이블에 던지며 저도 욕을 한마디 했지요.

 

'이런 씨-*, 어디다 대고 이-년 저-년이야. 나도 나이가 30이 넘었고 아기 엄만데 어디서 욕을 해' 라고요.

 

여러분, 정말 죄송합니다. 시정잡배들의 오고 가는 대화도 아니고 참 부끄러운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어쨌든 계속 하겠습니다. 주변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우상호에게 사과를 하라고 했지만 그는 끝까지 사과를 하지 않았습니다. 술이 꽤 취해있긴 하더군요.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우상호에게 발언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의 불만은 이것이더군요. 서울에 온 지 3주가 지났는데 제가 연락을 안 했다는 것, 5.18 전야제 사회를 본다는 소리를 듣고 임수경 이름 또 팔아먹는구나 하고 생각했답니다. 발언 중간 중간 '-놈의 기--', '-놈의 기--', '-, -' 소리는 계속 되었고요. 그러더니 마무리를 하면서 자리에 있던 광주의 김태홍 당선자에게 '선배님, 죄송합니다.' 하더라고요.

 

저는 그랬죠. 국회의원이라고 선배님이고 죄송하냐고. 나는 내가 존경하던 선배에게는 술집 아가씨들 앞에서 이-년 저-년 소리 듣고 끌려나와야 하고, 같이 고생하던 후배에게는 사과 한마디 없이 국회의원한테만 미안하냐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아가씨들 나오는 술집에서 양주 마실 팔자가 안 되니 나가서 소주나 먹자고. 그리고 나왔습니다.

 

모두 일어서는 순간 우상호가 테이블에 있던 양주의 병을 새로 따더군요. 그러거나 말거나 나왔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술을 한잔도 마시지 않았지만 계산대로 갔습니다. 이미 정범구 박사가 계산을 했다고 하더군요. 저는 명세서를 조목조목 써달라고 했습니다. 양주 두 병에 음료수, 안주가 서너 가지로 227천 원이 나왔고, 양주 한 병과 안주 한 접시는 서비스였답니다.

 

저는 술집 아저씨한테 물었죠. 난 이 집에 처음으로 오는데 이 집은 처음 오는 사람한테도 서비스를 주느냐, 우리는 서비스 받을 일이 없으니 모두 계산서에 넣으라고 말이죠. 그 아저씨는 그냥 서비스로 드시라고 했고, 저는 계산을 하겠다고 부득불 우겼습니다. 그 아저씨는 좀 황당했겠지요. 서비스 주고 욕먹고.

 

아무튼, 계산은 하되 다는 못 내겠다, 양주 한 병은 우상호가 땄으니 저 사람에게 꼭 받아라, 이미 계산한 돈은 정 박사에게 꼭 돌려줘라 당부를 한 후, 20만 원을 저와 함께 전야제 사회를 본 송선태 선배님의 카드로 계산을 했습니다. 계산대에서 실랑이를 하며 저는 그랬습니다. 낮에는 검은 넥타이 매고 망월동 참배하러 온 사람들이 밤에는 아가씨 끼고 술 먹고 잘들 한다 등등. 술 마시고 노래부르며 떠들던 그 방에서는 아주 조용했습니다. 아마도 제가 한 말을 다 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아무 반응이 없더군요.

 

가라오케 술집을 나서며 송선태 선배님에게 술값은 나중에라도 꼭 갚겠노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그때 저는 지갑이 있지 않았습니다. 송 선배님은 물론 괜찮다고 하셨지만 저는 정말 갚을 생각입니다.

 

그때 우상호가 따라오더군요 

'수경아, -놈의 기--애야, 너 거기 안 설래?? '

 

, 이 구제불능의 인간을 어쩌면 좋을까를 생각했습니다. 저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우상호, 당신하고는 이제부터 끝이야, 우리 서로 아는 척하지 맙시다. 나 정말 당신하고 아는 척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게 저는 돌아섰습니다. 돌아서는데 왜 그렇게 가슴이 아프던지요. 제 친구들은 다 압니다. 제가 존경하는 선배 세 사람을 대라면 그중에는 항상 우상호 형이 있었다는 것을... 저는 단순히 술 취한 우상호에게 욕먹은 것을 이야기하고자 이 글을 쓰고 있지는 않습니다.

 

386, 사람들은 386이 어쩌고 하며 회의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지만 저는 386이라는 이름에 자부심을 그 386의 기반은 바로 5월의 광주입니다. 80년대의 학생운동은 그것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지속되었습니다. 광주를 떠나서는 386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요. 저는 선배들이 아가씨 나오는 술집에서 술을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5월의 광주에서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광주의 라디오방송에서는 시끄러운 음악을 틀지도 않습니다. 그 커다란 가라오케에 그들이 유일한 취객이었다는 것이 말 해주듯이 광주 사람들은 5.18이 되면 먹고 노는 일을 자제합니다.

 

그런데 다른 일도 아니고 망월동 참배를 위해 광주에 내려왔다는 사람들이, 386을 내세워 국회의원 선거전에 나와 그것을 기반으로 당선되었다는 사람들이, 낮에는 망월동에서 광주의 영령을 추모하던 사람들이 그렇게 광주의 정신을 밟아버렸습니다.

 

만약 5.18 유족이 이 사실을 안다면, 386의 순수성과 역사성으로 그들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들이, 그들과 거리에서 어깨를 겨누며 민주주의를 외치던 동지들이, 517일 하루종일 아들의 무덤 곁에서 참배객을 맞고 계시던 이한열 열사의 어머님이 이 사실을 아신다면 그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요.

 

저는 감히 주문합니다. 386의 이름을 더 이상 들먹이지 말던가, 망월동 참배가 아닌 놀러 왔다고 하던가, 한때나마 그들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음을 자랑스러워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더 이상 믿음도 희망도 걸 곳이 없음에 앞이 캄캄합니다. 다음날 아침 신문에는 386 당선자가 망월동 묘역을 참배했다는 기사가 신문마다 났더군요.

 

술에 취했던 그들은 다음날인 5.18 아침에 대통령이 참석한 기념식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밤새 광주 영령을 진심으로 추모했다는 듯이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겠지요. 제가 밥도 굶어가며 다섯 시간씩 서서 전야제 사회를 보던 그 시간에 내가 존경하던 선배들은 아가씨와 술 마시고 춤추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으면서, 오히려 나보고 5.18에 이름을 팔아먹었다고 말한 사실 역시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다음날 아침 10시경, 제 휴대폰 벨이 울리더군요. 저는 그들 중의 한 명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전화를 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우상호와의 선거전에서 승리한 이성헌 선배였습니다. 망월동에서 만났는데 반가웠다는, 서울에 올라오면 꼭 한번 만나자는 전화였습니다. 이성헌 선배는 제가 미국에 있는 동안 두 차례 만난 것이 전부인데도 우리나라로 귀국하실 때, 또 귀국을 해서도 저에게 미국까지 수시로 전화를 하던 분입니다. 전화를 끊으며 생각했습니다. 왜 이성헌이 당선되고 우상호는 선거에서 떨어졌는가를...

 

그 후 며칠 동안 저는 그들로부터 단 한 통의 전화도, 3자를 통한 메시지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느닷없이 그 자리에 있었던 김성호 당선자가 전화가 와서 저녁을 함께 먹자고 하더군요. 통화를 하던 중 자연스럽게 그날의 사건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제 의사를 밝혔습니다. 우상호와 아는 척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말이죠. 그런데 다음 날인 오늘, 우상호가 전화를 했더군요. 아마 김성호씨가 무슨 말을 했으리라 짐작합니다.


'여보세요, 임수경씨 부탁합니다.'

'전 데요.'

'수경아, 나 상호야.'

'누구시죠?'

'나야, 우상호.'

'저는 우상호라는 사람을 모르는데요.'

'수경아, 미안하다.'

'실례했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저는 이렇게 전화를 끊었습니다. 전화를 끊으면서 새천년 nhk 는 가라오케를 나설 때처럼 왜 그렇게 가슴이 아프던지요. 한낮 버스정류장에서 땡볕을 받으며 버스를 기다리다가 받은 전화 한 통, 그것은 지금 이 시간까지도 저를 심란하게 만듭니다. 제 어머니는 우상호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하셨고, 저와 친한 선배언니는 아주 잘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잘한 걸까요, 잘못한 걸까요? 긴 글을 마칩니다. 결국,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 셈이 되어버리긴 했는데, 제 개인적인 이야기라기보다는 모두가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임수경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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