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애송시

회초리 - 황금찬

풍월 사선암 2012. 4. 27. 10:44

 

회초리의 추억 

   

회초리를 드시고

종아리를 걷어라

맞는 아이보다

먼저 우시던

어머니

 

황금찬 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회상은 때리기도 전에 눈물부터 보이시던 회초리로 떠올랐던가 봅니다. 제게는 회초리로 맞은 기억 대신 어머니에게서 들은 회초리 이야기가 더 오래 남아 있습니다. 생전에 어머니는 시집보다 친정 이야기를 달고 사셨습니다. 장성한 외삼촌들이 외할아버지에게서 회초리 맞던 이야기도 레퍼토리 중 하나였습니다.

 

일제 치하에서 외삼촌들은 집안 어른들 몰래 만세운동이니 독립운동에 가담해 늘 어른들 애를 태우곤 했던 모양입니다. 외할아버지는 노심초사, 자식들이 조금이라도 허튼 낌새를 보이면 다듬잇돌 위에 세워놓고 회초리를 들었습니다. 큰 외삼촌은 종아리에 피멍이 맺혀 외할아버지의 노여움이 웬만큼 풀렸을 때쯤 아버님, 잘 알아들었으니 이제 고만 하세요. 팔 아프시잖아요.”하고 만류하곤 했답니다. 회초리를 든 사람과 맞는 사람이 그렇게 정으로 통한다면야 매가 폭력이 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 회초리는 누구에게나 공포의 대상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회초리가 주는 교육 효과도 없는 것이겠지요. 선생님으로부터 처음 회초리를 맞았던 서늘한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 그때만 해도 담임선생님이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회충약을 챙겨 먹이던 시절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줄지어 서서 교탁 위에 쌓인 약봉지를 열고 약을 목구멍에 털어 넣었습니다. 시큼털털한 맛에 낯을 찡그리고 머리를 흔들며 제자리로 돌아와 앉았는데 별안간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약봉지 바닥에다 버린 녀석들 모두 나와!”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래도 저만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명색이 반장인데 그런 어설픈 잘못을 저지를 리가. 아이들도 엉거주춤 눈치만 살피고 있었습니다. , 그러나 바닥에 나뒹구는 약봉지가 하나둘이 아닌 걸 어쩝니까. 결국 굴비 엮이듯 단체로 불려나가 손바닥 서너 대씩 맞아야했습니다. 회초리가 손바닥에 떨어질 때의 그 아릿한 아픔, 그보다 반장 체면 구겨지는 마음의 상처가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던 해에는 고교입시에서 체육시험 비중이 꽤 높았습니다. 시험과목은 달리기, 멀리뛰기, 공 던지기와 턱걸이. 그런데 턱걸이가 문제였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만점인 열두 개는커녕 배치기로 용을 써도 한두 개가 고작이었습니다. 어느 날 방과 후 체육선생님이 3학년생 전체를 철봉대 아래 집합시켰습니다. “지금부터 열을 세는 동안 무조건 철봉대 위에 올라간다. 못 올라가는 놈들은 몽둥이다. 실시!” 고릴라처럼 무섭게 생긴 선생님이 들고 선 당구 큐대(cue)에 아이들은 질겁했습니다. 철봉 기둥을 기어오르고 먼저 올라간 아이 손목에 매달리고더러는 정말 큐대에 얻어맞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난 후 거의 아이들 70%는 턱걸이 열두 개를 거뜬히 해냈습니다.

 

회초리에 사랑이라는 전제가 없다면, 교육이라는 목적이 없다면 단순 폭력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매로 키운 자식이 효도한다는 속담처럼 사랑과 교육의 뜻이 담긴 회초리는 아픈 만큼 효과도 큽니다.

 

세상이 바뀌어 회초리는 부모의 손에서도, 스승의 손에서도 떠난 지 오랩니다. 이제 회초리는 김홍도의 서당 그림에서나 찾아볼 희귀 물건이 되었습니다. 아직 심신이 미숙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에서조차 교육이나 규범보다는 인권과 자율이 중시되는 세상입니다. 거꾸로 아이들의 인성은 갈수록 황폐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들풀처럼 거칠게 자라는 아이들의 성정을 다스릴 어떤 교육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회초리를 폭력이라 고발하는 학교. 아이들의 빗나간 주먹질과 선생님들의 훈육의 회초리를 똑같이 폭력이라 규정하는 학교. 거기서 선생님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인성교육은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랑의 매’, ‘긍정적인 의미의 매가 없다면 그 대안은 무엇일까요. 회초리의 폭력성을 주장하는 이들부터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숙제입니다.

 

학교 폭력이 기승을 부리면서 이미 알려진 것처럼 중학생에게도 강제 전학, 퇴학 처분이 내려지고, 형사 처벌 기준 연령이 14세에서 12세로 낮춰지게 됐습니다. 학교 폭력 전담 경찰관도 생겼습니다. 미성년의 아이들을 선생님의 회초리 대신 성인들과 똑같이 사회법규로 다스리겠다는 것입니다. 학교의 자율성을 외치면서 정작 학교 울타리 안에 공권력을 불러들이는 꼴입니다. 과연 어느 쪽이 더 교육적이고 비교육적인지 곰곰 생각해볼 일입니다.

 

*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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