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명상글

단지 15분

풍월 사선암 2012. 1. 13. 12:26

 

죽어가는 사람의 시간 단지 15

 

서양 연극 중 생명이 15분밖에 남지 않은 한 젊은이를

주인공으로 한  <단지 15>이라는 작품이 있다.

주인공은 어려서부터 총명했다.

뛰어난 성적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 심사에서도 극찬을 받았다.

 

이제 학위 받을 날짜만 기다리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의 앞날은 장밋빛 그 자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가슴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정밀 검사 결과 청천벽력 같은 진단이 떨어졌다. .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남은 시간은 단지 15분...

그는 망연자실했다.

이 모든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 5분이 지나갔다. .

이제 남아있는 인생은 10분이었다

 

이때 그가 누워 있는 병실에 한 통의 전보가 날아들었다.

“억만장자였던 당신 삼촌이 방금 돌아가셨습니다.

그의 재산을 상속할 사람은 당신뿐이니

속히 상속 절차를 밟아 주십시오”

그러나 죽음을 앞둔 그에게 재산은 아무 소용 없었다.

그렇게 운명의 시간은 또 다시 줄어들었다.

 

 

그때 또 하나의 전보가 도착했다.

“당신의 박사 학위 논문이 올해의 최우수 논문상을

받게 된 것을 알려드립니다. 축하합니다.”

이 축하 전보도 그에게는 아무 위안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절망에 빠진 그에게 또 하나의 전보가 날아왔다.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연인으로부터 온 결혼 승낙이었다.

하지만 그 전보도 그의 시계를 멈추게 할 수 없었다.

마침내 15분이 다 지나고 그는 숨을 거두었다.

 

이 연극은 한 인간의 삶을

15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응축시켜 보여 준다.

이 청년의 삶은 우리 모두의 삶과 같다.

 

젊은 시절의 꿈을 좇아 정신없이 달리다 보면 ...

어느 새 머리카락이 희끗해진다.

그리고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즈음이면,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때 가서 후회한들 아무 소용없다.

 

시간은 강물과 같아서,

막을 수도 없고 되돌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물을 어떻게 흘려보내느냐에 따라

시간의 질량도 달라질 수 있다.

 

루시우스 세네카는 말했다.

인간은 항상 시간이 모자란다고 불평을 하면서

마치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하루

 

184912월 어느 날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농민반란 선동혐의로 얼어붙은 상트페테르부르크 광장에 세워졌다. 고작 몇 달간의 유배를 예상했던 그에게 돌연 총살형이 내려지고 두건이 얼굴에 씌워졌다. 병사가 소총을 들어 그의 심장을 겨누었다.

 

죽음 앞에 선 그는 만약 여기서 살아나간다면 남은 인생의 단 1초도 허비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맹세했다. 천운일까. 그때 마차 한 대가 질주하며 광장에 들어섰다. 사형 대신 유배를 보내라는 황제의 전갈이었다. 그날 밤 도스토예프스키는 담담한 어조로 동생에게 편지를 쓴다. “지난 일을 돌이켜보고 실수와 게으름으로 허송세월했던 날들을 생각하니 심장이 피를 흘리는 듯하다. 인생은 신의 선물. 모든 순간은 영원의 행복일 수도 있었던 것을! 젊었을 때 알았더라면! 이제 내 인생은 바뀔 것이다. 다시 태어난다는 말이다.”

 

시베리아 유배기간 4년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값진 시간이었다. 살을 에는 혹한 속에서 무려 5킬로그램에 가까운 쇠고랑을 팔과 다리에 매단 채 창작생활에 몰두했다. 글쓰기가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에 머릿속으로 소설을 쓴 후 모조리 외워두었다. 그는 1881년 죽는 날까지 미친 듯한 열정으로 죄와 벌’ ‘악령’ ‘카라마조프의 형제들등 대작을 잇달아 내놓았다.

 

서양 연극 중에 자신의 생명이 15분밖에 남지 않은 한 젊은이를 주인공으로 한 단지 15이라는 작품이 있다. 만약 당신의 생명이 15분밖에 남지 않았다면,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사형장에 섰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첨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