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양식/시사,칼럼

이번엔 어느 쪽 구두짝 던질건가?

풍월 사선암 2011. 11. 25. 15:34

[김경재 특별기고] 정동영, 이번엔 어느 쪽 구두짝 던질건가?

 

"손학규, 이번엔 호남배신하고 민주당 팔아먹나"

"울며불며 구두짝 던지며 신파 삼류영화의 동정 연출 속셈, 국민들은 알고 있다"

 

한미FTA 국회비준이 마지막 고비를 넘고 있다. 쟁점들은 거의 다 드러났다. 애초에는 자동차 등은 이익을 보나 농민의 희생이 크다고 법석을 떨었다. 그러다가 농민들의 불이익분에 대한 이런저런 보완책이 제시되니까 슬그머니 농민카드가 들어가 버리고 ‘ISD 재협상카드가 등장했다. 이걸 제대로 안하면 2의 이완용이 되어 나라를 팔아먹는 2의 을사늑약을 체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극한적인 비유마저 나돌고 있다. 물리적 폭력을 막기 위해 대통령마저 모처럼 국회에 나와 야당에게 비준을 간청했는데도 민주당은 그를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이제 폭력대결과 강제통과라는 최후의 결전이 불가피해 보인다.

 

40년 이상을 민주당원으로 살아오면서 민주화운동으로 16년간의 망명,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 8년간의 의정활동 그리고 다른 8년간의 야인시절 등의 고난과 환희의 쌍곡선을 달려온 사람으로서, 민주당이 벌이고 있는 이런 자기파괴적 정치놀음에 대해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 도대체 왜 이러는가? 이런 정치쇼에 대해 국민들이 모르는 줄 아는가? 특히 민주당에 도사리고 있는 친노파 열린우리당 세력들은 제발 부끄러움을 알고 지금이라도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정치적 작풍을 걷어치워라. 민주당에 대한 미련과 정이 천 길 만 길 떨어진다.

 

탄핵 때 던져진 정동영의 구두짝이 출세의 징표가 되었다

 

8년 전 탄핵파동 때 정동영 등 친노파들은 재미를 톡톡히 보았다. 한나라당과 구민주당이 노무현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에 탄핵안을 발의 통과시킬 때 이를 처절하게저지하고 국회경위들에게 끌려 나가는 모습을 과장함으로써 선량한 국민들의 감상적 동정을 불러일으켜 17대 총선에 제1당이 되었다. 그때 그 현장에서 정동영은 처절하게울부짖으며 자신의 구두짝을 국회본회의장 의장석을 향해 던지는 퍼포먼스를 벌여 탄핵쇼의 주연으로 부각되었다.

 

그때는 오른 짝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번 FTA 국회통과에서는 어느 짝, 혹 왼쪽 구두짝을 던질 참인가? 그래서 무엇을 노리는가? 그때는 그 퍼포먼스 덕분인지 노무현에 대한 최고의 충성을 보여 통일부장관, 국가안보회의 상임위원장, 열린우리당 당의장, 대통령후보까지 지내는 영화를 누렸지만 정작 마지막에 노무현을 결정적으로 배신하고 걷어차 버린 사람이 바로 정동영 아니었던가. 이번에는 선의의 사람들을 엉뚱하게 2의 이완용을 만들면서 또 틀림없이 구두짝을 던지면서 과연 무엇을 노리는가, 또 한 번의 대통령후보인가.

 

손학규의 배신은 한나라 배신 호남배신 민주당 매각으로 이어져

 

이제 손학규에 대해 한 마디 하자. 옛날 탄핵 때는 천신정이 판을 휘잡았는데 이번 FTA 때에는 주연급 배우를 살짝 바꿔 천손정트리오를 짠 것 같다. 천정배는 미국까지 쫓아가 이번 한미 FTA가 미국에게도 불리하다는 친절한 해설까지 제시해 한미 양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손학규는 지난 재보궐선거 때 순천과 김해를 민노당 등에게 팔아먹더니 이번에는 민주당을 친노파에게 싸구려로 넘기려 하고 있다. 한나라당을 배신하고 호남을 배신하고 이제 민주당마저 배신하려 하고 있다. 우리는 배신자들의 말로가 어떤지 잘 알고 있다.

 

이들에 비하면 차라리 노무현이 훨씬 양심적이고 솔직하다. 나는 열린당 창당 때문에 그와 사이가 나빴고 대립하였고, 그는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 하여 현역의원이던 나를 자신의 검찰을 시켜 11일 간이나 구속하기도 했으나, 말은 바로 하고자 한다. 그는 대통령이 되자 멋있고 철학이 있는 지도자로 보이고 싶어 하였고, 학벌 콤플렉스를 이기기 위함이었는지 아무에게나 훈계하거나 가르치려 들었고 또 말을 함부로 하는 등 포퓰리즘에 빠지기도 했으나, 그의 대부분의 과오는 가족과 참모들의 책임이 컸다. 분명한 것은 그는 적어도 그를 영웅으로 떠받들어 정치적 이익을 챙기고 배신을 떡 먹듯 하는 친노파 대부분 보다 훨씬 정직하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었다.

 

노무현의 기막힌 실언은 의도적인가 아니면 압력에 의한 것이었나

 

나는 노무현이 대통령으로서 생애 최초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거의 유일하게 그를 수행한 현역의원이었다. 뉴욕에서 예정된 교포환영행사 준비에 주도권을 둘러싸고 현지 교포들 간에 다툼이 있다하여 대통령보다 이틀 앞서 뉴욕에 도착, 분쟁을 해결하고 환영행사장에서 대통령 일행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날따라 뉴욕 날씨가 더럽게 사나웠다. 사진 찍기 위해서라면 미국 방문할 생각이 없다고 콧대를 세우던 노무현의 기를 죽이기라도 하려는 듯 착륙예정인 JFK공항 근처에는 뇌성벽력이 치고 난리가 났었다. 이러다가 우리 대통령이 어떻게 되는 건 아닌가 하여 펜타호텔에서 나는 좌불안석이었다. 그때만큼 인간 노무현을 진심으로 걱정하던 적이 없었다. 공항 상공을 다섯 바퀴인가 선회하다가 무모한(?) 조종사의 죽기살기식 착륙강행으로 톡톡히 미국상륙 텃세를 치루고 천행으로 호텔에 도착한 대통령은 나를 보자 손을 덥석 잡고 말했었다.

 

김 선배, 아주 죽을 뻔 했습니다.”

 

대통령 운이 세서 살아나신 겁니다. 큰 일 날 뻔 했습니다.”

 

그렇게 덕담을 건넨 다음날 코리아 소사이어티 오찬연설에서 노무현은 드디어 미국방문 최초 아니 그의 정치생애 최대의 실언을 쏟아냈다.

 

신사숙녀 여러분. 19506.25전쟁 때 미국 여러분들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나는 지금쯤 북한의 어느 정치범수용소에 갇혀있을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나는 옆에 있던 서갑원 정무비서관에게 내질렀다.

 

무슨 원고가 이 모양이야!”

 

원고에는 그런 내용이 없습니다.”

 

배포돼 있던 원고에는 과연 그런 내용이 없었다. 노무현 스스로가 추가해 삽입한 것이었다. 장내가 크게 술렁거렸다. 통역을 통해 그 내용을 들은 도널드 P 그래그 회장을 비롯한 미국 인사들은 만면의 미소를 띠고 있었다. 아니 세상에 이런 아첨발언이 있나. 말하자면 한국전쟁 때 그들이 한 번도 이름을 듣지 못했던 코리아라는 땅에 와서 미국의 젊은이 5만여 명이 목숨을 바쳐 코리아를 지켜주었기 때문에 한국이 오늘의 평화와 번영이 있을 수 있었기에 이를 잊지 않고 감사히 여긴다는 식의 발언이 일국의 대통령으로서의 체통에 걸맞은 형식이었거늘. 아니 만약 한국이 공산화되었다면 노무현은 자유를 위한 투쟁에 참가하다 정치범으로 투옥이 됐을 거란 발상이 도대체 어떻게 나올 수 있단 말인가. 6.25 당시 다섯 살짜리 어린 아이가 말이야.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수행기자들의 시달림을 받았다.

 

김의원님, 코멘트 부탁합니다.”

 

노 코멘트.”

 

아니 천하의 김경재가 노 코멘트라뇨.”

 

이죽거리지 마. 노 코멘트도 코멘트의 일종이야.”

 

그렇게 버티던 나는 십여 명이 넘는 한국기자들의 등살에 드디어 노대통령의 문제연설에 대해 딱 한 마디 논평을 했었다.

 

참으로 기가 막힌다.”

 

믿기지 않는다면 그 당시 도하 각 신문들을 참조해 보라. 나는 다음 날 워싱턴을 방문하는 대통령 일행을 수행하면서 슬쩍 대통령에게 격식을 차려 물었다.

 

대통령님. 그 연설은 어떻게 해서 나온 겁니까? 혹 어제 아침에 왔다는 미국정부 관리나 아니면 현지 외교관들의 어드바이스를 받으신 겁니까?”

 

하하 김선배, 내 발언이 지나쳤습니까?”

 

노무현은 그렇게 웃고 말았지만 미국의 날씨와 정보의 위세에 눌린 듯한 모습이 나에겐 너무 서글펐고 남의 일 같지 않았던 기억이 새롭다.

 

한국정치의 좌파들은 스스로 조롱의 대상이 되려는가

 

나는 한국의 반미주의자들이 좀 더 세련되고 전문화되고 철학적이기를 기대한다. 쇠고기파동 때만 해도 그러하다. 박정희 덕분에 귀국하지 못하고 16년간이나 미국에서 살면서 미국쇠고기를 먹었던 나는 미국쇠고기가 세계에서 제일 나쁘다는 횃불데모 조직가들의 주장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어떤 고약한 미국업자들이 한국민을 무시하고 싸구려 늙은 젖소고기들을 수출했을 수도 있다. 이제 미제라고 무조건 좋고 믿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한국민의 체통과 음식주권차원에서라도 따질 것은 따지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걸 악용해 거짓 괴담을 만들어내고 반미운동을 거쳐 정권퇴진운동으로까지 나가는 것은 너무 지나치고 옳지 않다고 보았다.

 

같은 논리의 연역에서 이번 FTA비준 문제도 거시적인 국익차원에서 통과시키고 나중에 문제가 제기되면 그때 다시 국론을 정하는 것도 늦지 않다. 우리는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가 아닌가. 이것을 을사늑약이라고까지 비약시키는 것은 선동정치일 뿐이다. 책임 있는 정치인의 자세가 아니다. 노무현을 팔아 정치를 하는 사람들, 제발 노무현의 성취와 좌절의 반만이라도 헤아리도록 노력하라. 특히 노무현의 작품인 FTA를 노무현의 숭배자들이 반대한다면 이건 천하의 웃음꺼리가 아니겠는가. 말년의 노무현은 스스로 부끄러워 할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그와 앙숙이었으면서도 그의 영혼의 순수함을 믿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그를 계승한다는 자들은 부끄러워 할 줄도 모른다. 정말 이건 웃기지도 않는 일이다. 그렇게도 이 나라 야당에 대여 전략가들이 없는가?

 

민주당은 다시 한번 짓밟히기를 기대하면 영원히 짓밟힐 수 있다

 

아니다. 알고 있다. 민주당은 여당이 이걸 통과시키기 위해 물리력을 동원해 민주당을 짓밟고 가주기를 기다린다는 것을 국민들은 훤히 알고 있다. 국민들은 폭력으로 난장판이 된 국회에서 민주당이 울며불며 또 구두짝을 던지며 신파 삼류영화의 동정을 끌어내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이제 그런 정치의 계절은 지나간다. 그러기에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목마름이 더 절실해 지고 있다. 민주당은 다수결원칙에 떳떳이 승복하고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치를 펼 수 있는 어쩌면 마지막 선택을 놓치지 말라. 이것이 40년 민주당원임을 긍지로 삼고 있는 나의 어쩌면 마지막 충고다.

 

최종편집 2011.11.18 / 김경재 전 민주당 최고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