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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탄생 진흙인형과 세포

풍월 사선암 2011. 11. 16. 12:15

인간의 탄생

진흙인형과 세포

 

옛 사람들은 인간이 어떻게 만들어 졌다고 생각했을까?

세포는 왜 작을까? 세포는 영원할 수 있을까?

 

어떤 현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할 때 사람들은 이를 이해하고자 다양한 방법을 시도합니다. 누군가는 드러난 사실들을 기존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상상의 나래를 붙여 이야기를 꾸미곤 합니다. 또한 누군가는 이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과학적 개념을 밝히는 방법으로 궁금증을 해소하려고 하지요. 두 방법 모두 상황에 대한 이해를 이끌어 낼 수는 있지만 전자는 믿음을, 후자는 논증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다릅니다. 같은 상황이라고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같은 이야기를 설명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달라지기 때문이죠. 오랫동안 우리는 자연 현상을 설명할 때, 전자의 방식을 이용해 왔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오감이 인지할 수 있는 부분적인 사실만으로 심오한 자연의 이치를 모두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각종 신화나 전설, 설화 등은 이런 방식으로 자연을 설명하는 내용이 담긴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이런 옛 이야기들이 설명하던 자연의 이치를 과학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앞으로 제가 쓰는 글에서는 이야기로 상상하던 자연을 현대 과학이 어떤 방식으로 설명하는지를 비교해 보며, 같은 현상에 대한 두 가지 시각의 차이를 즐겨보도록 하지요.

 

불을 훔치는 프로메테우스

 

거인족 출신으로 손재주가 뛰어났던 프로메테우스는 어느 날 진흙을 빚어 하나의 형상을 만들었다. 이 진흙 형상에 아테나 여신이 생명을 불어넣자, 생명이 없던 진흙덩어리는 스스로 움직이며 살아가는 존재로 탈바꿈되었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두 발로 걷고 머리를 들어 똑바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존재, 이들의 이름은 인간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다른 동물들을 공격할만한 날카로운 발톱이나 이빨도 없었고 위험에서 자신을 보호할 단단한 갑옷이나 등딱지도 없어 매우 약한 존재였다.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이 만들어낸 인간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겨, 몰래 신들만이 사용할 수 있었던 불을 훔쳐내 인간에게 주었다. 이후로 인간은 이 땅에 사는 동물 중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스 신화 중에서 '프로메테우스와 인간'

 

인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무엇으로 구성되었는지는 인간이 스스로를 자각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알고 싶어 했던 의문입니다. 그리스 신화 뿐 아니라, 많은 부족들의 신화에서 인간은 신이 자신의 형상을 본떠 만든 진흙 피조물로부터 출발했다고 하는 부분들이 보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단지 진흙덩이에만 머물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신이 부여한 생명, 혹은 생기(生氣), 영혼 등이 더해졌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인간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알지 못했던 시절에는 인간을 진흙을 빚어 만든 토기에 비유해서 이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 과학은 인간이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는지를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지요.

 

◀로버트훅 1635~1703 (), 안톤 판 레이우엔훅 1632~1723 ()

 

예전 사람들이 인간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을 비롯한 생물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는 세포(細胞)’인데, 세포는 매우 작아서 육안으로는 구별할 수 없으니까요. 사람들이 세포의 존재를 알아채는 데는 광학적 발전이 선행되어야 했습니다. 렌즈 가공 기술의 발달로 배율이 높은 현미경이 만들어진 이후에야 사람들은 세포를 볼 수 있었지요.

 

처음 코르크 조각에서 벌집처럼 생긴 구조물을 발견하고, 이에 다닥다닥 붙은 작은 방이라는 뜻의 셀(cell)이라는 이름을 처음 붙여준 이는 영국인 로버트 훅(Hooke) 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로버트 훅의 현미경() 로버트 훅이 그린 세포의 스케치()

 

영어의 cell이 우리말로는 세포를 뜻하기에 최초로 세포를 발견한 이를 훅이라고 말하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훅은 살아있는 진짜 세포가 아닌 죽은 식물세포의 세포벽만을 보았을 뿐입니다. 살아있는 세포는 텅 빈 방이 아니라, 오히려 내부가 꽉 찬 주머니를 닮았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세포를 처음 본 사람은 네덜란드의 레이우엔훅(레벤후크, Antonie van Leeuwenhoek)으로, 그는 현미경 관찰을 통해 우리 주변은 단지 너무 작아 눈에 보이지 않는 생물들로 가득 차 있으며, 인간이 몸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특히 레이우엔훅은 정액 속에 작지만 재빠르게 움직이는 정자가 들어있음을 알아낸 사람이기도 합니다. 레이우엔훅 이후 현미경을 열심히 들여다본 많은 사람들에 의해 지구상에 살아 있는 생명체를 구성하는 기본단위는 세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각각의 생명체를 이루는 세포의 개수와 특성들은 저마다 달랐지만, 세포질을 둘러싼 원형질막을 가진 작은 주머니가 생명체의 기본 구성단위라는 사실은 동일했습니다. 세포는 처음 지구상에 생명체란 것이 처음 등장하던 시기부터 생명체를 구성하는 기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크기가 너무 작았기에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인식되지 못했던 것이죠.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듭니다. 도대체 세포는 왜 이렇게 작은 것일까요? 몇몇 예외는 있지만, 대개 세포의 크기는 겨우 20~30(마이크로미터, 백만분의 1미터)에 불과합니다. 과학자들은 세포가 이렇게 작은 크기로 존재하는 것은 세포가 생존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외부와 소통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으로 파악합니다. 세포는 생명활동을 수행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외부와 소통합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세포는 생명활동을 수행하기 위해 영양분과 산소 등의 물질을 외부에서 받아들이고 노폐물을 배출하면서 살아갑니다. 세포에서 외부와의 소통은 세포막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세포막의 면적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경우, 세포가 작으면 작을수록 세포의 단위 체적당 표면적의 비율이 커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체적 8인 정육면체는 가로세로높이가 모두 2m인 정육면체 하나로 만들 수도 있지만, 가로세로높이 1m짜리 정육면체 8개를 모아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 때 전자의 표면적은 2×2×6=24인 반면에, 후자는 1×1×6×8=48로 전자에 비해 두 배나 넓습니다. 체적이 같은 경우, 이를 구성하는 단위들의 크기가 작을수록 동일 체적에 비해 표면적이 넓어지고, 표면적이 넓으면 그만큼 외부와의 소통이 수월해지고 생명활동에 필요한 물질의 교환 역시 좀더 수월하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세포가 작아야 하는 이유는 세포는 외부의 충격이나 질병 등에 의해 사멸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는 다세포생물에게서 중요한데, 만약 세포가 주먹만큼 크다면, 사고나 질병 등으로 인해 세포 하나가 죽는 경우 우리 신체는 주먹만한 부위의 손실을 입게 됩니다. 때문에 세포 한 두 개를 잃는 것으로 인해 생존에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세포의 크기가 작으면 작을수록 손실 부위를 줄일 수 있어서 생존하는데 더욱 유리합니다. 이런 이유 등이 합쳐져 세포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게 진화되어왔고, 우리는 세포로 이루어져 있으면서도 그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죠.

 

◀인간 염색체 끝 부분의 텔로미어(흰색 부분)

 

세포는 이처럼 작아야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육안으로는 대개 확인이 불가능할 정도로 작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몸 하나에 존재하는 세포의 숫자는 조 단위를 넘나들기 마련이지요. 이 엄청난 숫자의 세포가 모두 처음에는 단 한 개의 세포에 불과했던 수정란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세포가 지닌 엄청난 분열 능력에 새삼 놀라게 됩니다.

 

보통의 세포들은 분열 방식을 통해 숫자를 늘립니다. 세포의 분열 능력은 매우 왕성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무한하지는 않습니다. 헤이플릭(Leonard Hayflick)이 발견한 것처럼, 인간의 세포는 약 70-100회 정도 분열한 뒤에는 더 이상 분열하지 못하고 스스로 사멸하곤 합니다. 이는 인간의 세포 속에 들어 있는 DNA의 구조와 DNA 복제효소의 방향성 때문입니다.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세포 안에 든 DNA도 나뉘어져야 합니다. 따라서 세포는 분열 전에 원래 가지고 있던 DNA를 주형으로 삼아 같은 DNA를 복제해서 세포 분열시 한 세트씩 나눠가지기 마련이죠. 인간의 DNA는 막대 모양이고, DNA 복제효소의 특성상 한 번 복제할 때마다 DNA의 끝 부분이 조금씩 닳게 됩니다. 한 두 번 분열했을 때야 DNA의 끝이 조금 닳는 것 정도는 문제되지 않지만, 분열을 거듭하다 보면 DNA의 끝 부분의 소실량은 점점 많아지게 됩니다.

 

물론 인간의 DNA에는 이렇게 세포 분열시마다 DNA가 닳아서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방지하고자 DNA 양쪽 끝에 텔로미어(telomere)’라고 하는 DNA 보호용 구간을 두기 마련이지만, 세포 분열이 반복되면 텔로미어가 더 이상 DNA를 보호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고, 이 순간이 되면 세포는 이를 감지해서 스스로 사멸하여 DNA 손상으로 인한 발생 이상으로 개체 전체에 이상을 미치는 것을 방지합니다. 아무리 세포 성장에 완벽한 조건을 갖추더라도 세포는 이처럼 내적인 한계로 인해 분열에 일정한 한계를 갖습니다. 그리고 이는 인간의 육체가 모든 환경 변수들을 완벽하게 통제하더라도 영원불멸할 수 없는지를 설명해 주기도 합니다. 인체를 구성하는 세포들의 수명에 한계가 있으니, 그 세포들로 이루어진 인체 역시 생의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신화의 설명-진흙으로 만들어진 인간

 

예전 사람들은 최초의 인간이란 고운 진흙으로 만들어진 인형에 생기를 불어넣은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인간이란 세포로 이루어진 존재이며, 세포의 여러 가지 특성이 인간을 구성하는 몇몇 특징들을 만들어냄을 알고 있습니다.

 

옛사람들이나 현대인들이나 인간이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는지에 대해 궁금해 했던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한 쪽은 이를 신화로, 다른 쪽은 과학으로 풀어낸 방법이 다른 것 뿐이죠. 이처럼 때로 과학은 신화가 상상만 하던 것들을 설명하고, 때로는 현실화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답니다.

 

글 이은희 / 과학저술가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 [과학 읽어주는 여자], [하리하라의 과학 블로그] 등 많은 과학 도서를 저술하였고, 2003년에 과학 기술도서상을 수상하였다. 연세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과학기술학 협동 과정에서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