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애송시

대동강(大同江) - 송인(送人)

풍월 사선암 2011. 8. 26. 09:00

 

대동강(大同江) -송인(送人)-

 

雨歇長堤草色多 送君南浦動悲歌

우헐장제초색다 송군남포동비가

大同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綠波

대동강수하시진 별루년년첨록파

 

비 개인 긴 둑에 풀빛이 진한데

남포에서 그대를 보내니 노랫가락 구슬퍼라.

 

대동강 물은 어느 때나 마를 것인가?

해마다 이별의 눈물만 푸른 물결에 더하여지네.

 

雨歇 : 비가 그치다. '()'은 쉴 헐

長堤 : 긴 둑.

草色多 : 풀빛이 짙다. '풀빛이 선명함'을 일컬음.'

             다()'는 짙다. 푸르다. 선명하다의 뜻.

送君 : 친구를 보냄.

南浦 : 대동강 하구에 있는 진남포.

動悲歌 : 슬픈 노래가 움직인다.

             슬픈 감정이 북받친다.

何時盡 : 어느 때 마르려는가? 마를 때가 없을 것임(反語法)

別淚 : 이별의 눈물. 슬픔의 원형적 이미지로 구상화함.

添綠波 : 푸른 물결에 보태어 주다.

別淚年年添綠波 : 結句'신운(神韻)이 감돈다'고 할 만큼 표현이 뛰어나다.

이 구절은 대동강에서의 이별이 빈번함을 암시하고 있기도 하다.

 

[연대] : 고려 인종때

[형식] : 칠언절구

[압운] : , ,

[출전] :<대동시선(大東詩選)>

[별칭] :<동문선>.<파한집 >에는 '송인'으로 실림

[구성] : 기승전결의 4단 구성

[주제] : 이별의 슬픔

[표현기교] : 대조법(1구와 제2), 도치법, 과장법

[구성] :

   . 1: 비온 뒤 정경(희망, 밝음) - 열린 세계

   . 2: 이별 (슬픔, 어둠) - 닫힌 세계

   . 3: 무정하기만 한 대동강

   . 4: 임을 보내는 깊은 슬픔('別淚'-시상을 대표하는 시어)

 

[감상]이 작품은 이별을 제제로 한 한시 중에서는 압권(壓卷)이란 평을 받는 작품으로, 당나라의 왕유(王維)'送元二使安西'에 견주기도 한다. 또한 대동강에서 이별을 노래했다는 점에서 고려 가요 '서경별곡'과도 일치한다. 1-2행에서는 자연의 싱그러움과 서정적 자아의 슬픈 이별을 대조시켜 이별의 한을 더하고 있다. 3행에서는 과장법으로 반전, 이별의 한을 대동강 물에 비유하여 설의법으로 극대화하 였다. 4행에서도 과장법을 써서 서정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예로부터 4행은 신운(神韻)이 감돈다고 할 정도로 극찬하였다.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이수복 <봄비>

 

[작자]정지상(鄭知常)-본관 서경(西京). 호 남호(南湖). 초명 지원(之元). 서경 출생. 1114(예종 9) 문과에 급제, 1127(인종 5) 좌정언(左正言)으로서 척준경(拓俊京)을 탄핵하여 유배되게 하고, 1129년 좌사간(左司諫)으로서 시정(時政)에 관한 소를 올렸다. 음양비술(陰陽術)을 믿어 묘청(妙淸) ·백수한(白壽翰) 등과 삼성(三聖)이라는 칭호를 받으면서, 서울을 서경으로 옮길 것과 금()나라를 정벌하고 고려의 왕도 황제로 칭할 것을 주장하였다. 1130년 지제고(知制誥)로서 산재기(山齋記)를 지었으며, 뒤에 기거랑(起居郞)이 되었다. 1135(인종 13) 묘청의 난 때 이에 관련된 혐의로 김안(金安) ·백수한과 함께 김부식(金富軾)에게 참살되었다. ()에 뛰어나 고려 12시인의 한 사람으로 꼽혔으며 역학(易學) ·불전(佛典) ·노장철학(老莊哲學)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림 ·글씨에도 능했으며 저서로는 정사간집(鄭司諫集)이 있다.


[참고1]왕유(王維)의 - 送元二使安西(송원이사안서) -

渭城朝雨輕塵(위성조우읍경진) 위성 아침 오는 비 길 먼지를 적시네

客舍靑靑柳色新(객사청청류색신) 푸르도다, 여관 뜰 버들가지 빛이야.

勸君更盡一杯酒(권군갱진일배주) 여보게나 이 사람 다시 한 잔 드세나

西出陽關無故人(서출양관무고인) 인제 양관 나서면 어느 친구 있으랴.

 

친구 원이를 멀리 안서 땅에 보내면서 위성까지 따라가 지은 것이다. 김만중은 <서포만필>에서 정지상의 '송인'을 왕유의 작품에 견주어 '해동(海東)의 위성삼첩(渭城三疊)'이라 일컬었다. '위성삼첩(渭城三疊)'은 칠언절구인 왕유의 '송원이사안서'를 이르는 말로서, '양관삼첩(陽關三疊)' 또는 '위성지곡(渭城之曲)'이라 일컫기도 한다.

 

元二 : ''은 성, ''는 둘째 아들이라는 뜻으로 왕유의 벗 이름.

安西 : 지금의 신강성, 이 작품이 씌어진 당나라 때에는 안서 도호부를 두어 국경을 지켰다.

渭城 : 장안 북서쪽에 있는 지명으로 당시에는 이곳까지 전송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 적시다.

客舍 : 지금의 여관

柳色新 : 버들잎이 비에 젖어 더욱 싱싱해진 모양,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길 떠나는 이에게 버들가지를 꺾어주면서 전송하는 풍습이 있었음.

 

[감상]원래 이 시는 당나라 때 송별의 노래로 널리 애창되었고, 세 번 되풀이하여 부르기 때문에 '양관삼첩'이라 했다고 한다. '원이 친구를 보내며'라는 뜻을 지닌 이 시는 전반 2행의 서경과 후반의 2행의 서정이 멋지게 짜맞춰진 서정시로, 기승에서는 위성의 아침 정경과 객사의 주변 풍경을 펼쳐 보임으로써, 친구와의 이별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는 듯한 태도를 보여주는데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길을 떠나는 이에게 버들 가지를 꺾어 주면서 송별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는 데 이런 일을 유추해서 생각하면 비가 내려 산뜻해진 버들잎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별의 슬픔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친구의 장도를 축하하고 격려하는 태도를 취한다. 송나라의 시인 소동파는 왕유의 시와 그림을 두고 "시안에 그림이 있고, 그림 안에 시가 있다."고 평가한 바가 있는데, 위의 시에서도 이러한 회화적인 특징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그러나 왕유의 시가 이처럼 경치의 제시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이러한 서경을 확대하여 자신의 내면을 제시한다. 예컨대, 위의 3행에서 친구에게 술잔을 건네 이별의 아쉬움을 말없이 드러낸 다음, 4행에서 양관 땅을 나가면 만날 수 없개 되는 친구의 사정을 이해해 준다. 왕유 시의 특징은 이와 같은 자연 관조의 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 자연의 순리를 믿고 그것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삶의 자연스러운 섭리를 지나치게 화려한 표현보다는 소박하고 관조적인 어조로 그리고 있다.

 

이러한 시의 구성은 일반적으로 '선경 후정(先景後情)'의 원리로 설명될 수 있다. 먼저 눈으로 관찰한 경치를 객관적으로 제시한 다음, 그러한 풍경을 가슴 속에 받아들인 시인의 내면이 주관적으로 묘사된다. '선경''후정'은 이처럼 시의 중요한 대립쌍에 놓이면서 대구법(對句法)을 형성한다. 객관과 주관의 조화를 꾀한 중용의 정신이 선경 후정의 원리 속에서도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참고2]鄭知常(정지상)의 - 送人(송인) -

庭前一葉落 (정전일엽낙) 뜰 앞에 잎새 하나 떨어지자마자

床下百筮悲 (상하백충비) 평상 아래 온갖 벌레 구슬피 우네

忽忽不可止 (홀홀부가지) 훌쩍 가는 그대 잡지도 못하는데

悠悠何所之 (유유하소지) 하염없이 그 어디로 떠나가나요

片心山盡處 (편심산진처) 산도 다한 저 끝에 외로운 내 마음

孤夢月明時 (고몽월명시) 달도 밝은 밤이면 외론 꿈만 꾸겠지

南浦春波綠 (남포춘파록) 남포에 봄 물결 푸르게 되거든

郡休負後期 (군휴빈후기) 그대는 재회 약속 저버리지 마소서

訪道者 不遇(방도자 불우)  - 賈島(가도) -

松下問童子(송하문동자)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에게 물으니

言師採藥去(언사채약거) 대답하기를 스승님은 약초 캐러 가셨는데

只在此山中(지재차산중) 바로 이 산중에 계시겠지만

雲深不知處(운심불지처) 구름 서린 산이 깊어서 어딘지는 몰라요.

 

가도(779~843, )는 한퇴지 백낙천 유종원과 같은 시대 사람이다.

 

次東林韻(차동임운)  - 鞭羊彦機(편양언기) -

雲走天無動 (운주천무동) 구름 가나 하늘은 움직이지 않고

舟行岸不移 (주행안불이) 배가 가나 언덕은 움직이지 않네

本是無一物 (본시무일물)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何處起歡悲 (하처기환비) 기쁨과 슬픔은 어느곳에서 이는가

 

청허선사의 제자로 승속무애(僧俗無碍)의 경지를 열어보인 편양언기(鞭羊彦機)대사의 차동임운(次東林韻)이란 유명한 선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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