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생활글

할머니의 마지막 사랑

풍월 사선암 2011. 8. 16. 09:55



 
 

 

할머니의 마지막 사랑

   

내가 아직 초등학생이었을 때..

우리 할머니는 중풍에 걸리셨다..

중풍은 있는 정 없는 정 다 떼고 가는 그런 병이다.

학교에서 집에 들어오면 코를 확 자극하는 텁텁한 병자냄새..

얼굴 높이에 안개처럼 층을 이룬 후텁지근한 냄새가

머리가 어지럽게 했다..

 

일년에 한두번 밖에 청소를 안 하는 할머니 방은

똥오줌 냄새가 범벅이 되어 차마 방문을 열어보기도 겁이 났다.

목욕도 시켜드리지 않아서 할머니 머리에선 항상 이가 들끓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할머니가 고혈압으로 쓰러지시고 난 후

처음 1년 동안은 목욕도 자주 시켜드리고

똥오줌도 웃으며 받아내었다.

2년 째부터는 집안 식구들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3년째에 접어들자 식구들은

은근히 할머니가 돌아가시길 바라게 되었다.

 

금붕어를 기르다가 귀찮아져서 썩은 물도 안 갈아주고

죽기만을 기다리듯이 말이다.

경우에 따라서 무관심은 살인이 될 수도 있었다.

온몸에 허연 곰팡이가 피고 지느러미가 문드러져서 죽어가는

한 마리 금붕어 처럼 할머니는 그렇게 곪아갔다.

손을 대기도 불쾌할 정도로그래서 더욱 방치했다.

나중엔 친자식들인 고모들이 와도 할머니방엔 안 들러보고

갈 지경이었다..

 

돌아가실 즈음이 되자 의식도 완전히 오락가락 하셨다.

그토록 귀여워하던 손주인 내 얼굴도 알아보지 못하셨다..

할머니가 건강 하셨을 때..

나는 할머니랑 단 둘이 오두막에서 살았었다..

조그만 전기담요 한 장에 할머니와 난 나란히 누워

별을 세며 잠이 들었었다..

아침은 오두막 옆에 있는 밤나무에서 떨어지는

밤을 주워서 삶아먹는 걸로 대신했다..

 

할머니는 나에게 굵은 밤을 먹이려고

새벽부터 지팡이를 짚고 밤을 주우셨다..

할머니가 내 이름을 잊는 일은 절대로 없을 줄 알았는데..

하지만 이성이 퇴화 할수록 동물적인 본능은 강해지는 걸까..

그럴수록 먹을 건 더욱 밝히셨다..

어쩌다 통닭 한 마리를 사다드렸더니

뼈까지 오독 오독 씹어드셨다.. 섬짓하기 까지 했다...

병석에 누운 노인이 그 많은 통닭을 혼자서 다 드시다니..

 

가끔 할머니에겐 돈이 생길 때가 있었다..

고모들이 할머니 방문 앞에 얼마씩 놓고 간 돈이다..

이상의 소설 '날개'에서 아내가 남자의 골방 머리맡에

잔돈을 놓고 가듯 말이다.

그러면 나는 할머니에게 돈을 달라고 졸랐다.

할머니는 그 돈을 조금씩 조금씩 나에게 주셨다..

한꺼번에 다 주면 다음에 달라고 할 때

줄게 없을까봐 그러셨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돈이 필요할 때면 엄마보다 할머니에게 먼저 갔다..

엄마가 '먹이'를 넣으러 왔다 갔다 할 때 말고는

그 방을 출입하는 사람은 내가 유일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느 날이던가 결국 할머니의 돈이 다 떨어졌다..

나는 돈을 얻기 위해 할머니를 고문했다..

손톱으로 할머니를 꼬집었다..빨리 돈을 달라고...

그렇지만 얻을 수 없었다.. 할머니는 정말로 돈이 없었으니까...

 

그때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셨다..

꼬집혀서 아팠기 때문이 아니라

나에게 뭔가를 줄 수가 없어서 였을 것이다..

가끔 할머니는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시려고 노력하셨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꼼지락 꼼지락 하시는게

무언가를 주려고 하시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나는 내 이름도 제대로 못부르는 할머니를 피하기만 했다..

할머니에게서 더이상 얻을 돈이 없다는 것도 이유 중에 하나였다..

간혹 한밤중에도 '.. 흐흐.. ..'하는

할머니의 신음같은 목소리가 내방까지 들려오면..

나는 흡사 귀신소리라도 듣는 듯

소름이 돋아 이불을 얼굴까지 덮어쓰고 잠을 청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가을날.. 할머니는 낙엽처럼 돌아가셨다...

그제서야 고모들도 할머니방에 발을 들여놓았다..

할머니는 돌아가신 후에야 목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할머니의 몸을 씻으려고 걸레같은 옷을 벗겨내었을때...

할머니의 옷 안주머니에서 무엇인가가 나왔다..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거무튀튀한 물체였다..

그것은.... 통닭다리 한짝이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주머니에 넣고 만지작 거리셨는지

손 때가 새카맣게 타있었다..

이 감추어둔 통닭다리 한 짝을 나에게 먹이려고

그토록 애타게 내 이름을 부르셨던가..

한 쪽 손을 주머니에 넣고 꼼지락 거리며

내 이름을 부르시던 할머니..

마지막 순간까지 이 손주 생각을 하셨는지....

 

TO 할머니..

나 통닭먹을 때 마다 할머니 생각한다..

특히 다리 먹을 때마다

항상 그때 할머니가 준 거라고 생각하고 생각 하고 먹어..

그러니까 이제 그런거 안감춰도 돼..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만나면

또 주머니에 밤이며 떡이며 잔뜩 숨겨놓고 있을 거지?

그러지 말고 할머니가 다 먹어..

할머니 먹는 거 좋아하잖어..

난 여기서 잔뜩 먹을께...

거기선 아프지 말고 잘 지내...

이제 영원히 못 만나겠지..?

동안 할머니한테 못해드린거 미안해..

하늘나라에서..만약 그때 만나면...

착한 손주 될께...

..이제 정말 안녕할 시간이다..

그런데 할머니..나 이상하게..

자꾸 눈물이 나와...

자꾸..자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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