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생활글

수다는 모든 관계의 시작... 말하기 예술 아닌 듣기의 예술

풍월 사선암 2011. 7. 17. 08:34

수다는 모든 관계의 시작... 말하기 예술 아닌 듣기의 예술

수다란 무엇인가

 

윌리엄 글래드스턴(1809~98)과 벤저민 디즈레일리(1804~81)는 둘 다 영국 총리를 지냈다. 둘은 서로 싫어했는데 정책뿐만 아니라 성격·기질도 대조적이었다. 마침 이 둘 모두와 식사한 적이 있는 여성이 있었는데 그는 이들을 이렇게 평가했다. “나는 글래드스턴이 영국에서 가장 똑똑한 남자라는 것을 느꼈고, 디즈레일리는 내가 영국에서 가장 똑똑한 여자라고 느끼게 해줬다.” 이처럼 대화는 좋건 나쁘건 대조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무심코 하는 수다도 의외의 결과를 잉태하고 있을지 모른다.

 

 

수다의 사전적 정의는 쓸데없이 말수가 많음이다. 누군가 수다를 떤다고 할 때 남성보다는 여성을 연상하기 쉽다. 신경정신의학자인 루안 브리젠딘은 '여성의 뇌'006)에서 여자는 하루에 2만 단어, 남성은 7000단어를 사용한다는 통계를 인용했다. 개정판을 낼 때에는 이 대목을 삭제해야 했다. 20077월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된 한편의 논문 때문이었다. 논문 제목은 여자들은 실제로 남자들보다 말이 많은가?’였다.

 

논문을 위해 대학생 396명이 실험에 참가했다. 연구 결과 여학생은 하루에 16215단어, 남학생은 15669단어를 사용했다. 통계적으로는 무의미했다. 남녀 차이보다 개인차가 더 컸다. 실험 참가자 중 가장 수다스러운학생은 47000단어, 제일 과묵한학생은 695단어를 썼다.남녀 간에 수다의 소재·방식에 차이가 있다는 일부 연구는 있다. 여자는 사람, 남자는 사물에 대해 주로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남자는 정책결정이 걸린 문제에 대해서는 여자보다 말을 더 많이 한다” “여자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때 남자보다 더 편한 마음으로 할 수 있다와 같은 주장이 있다. 남녀평등 시대에 남녀 차이에 대한 이런 주장들이 버틸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전적 의미와는 별도로 수다에는 가벼운 대화라는 뜻도 담겼다. 영어로는 스몰 토크(small talk)’. “데이비드 흄의 철학에 불교적 요소가 발견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식의 말할 거리는 빅토크(big talk)’. 미국인들은 하루에 수십 번씩 스몰토크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제는 날씨·스포츠·영화·음식·가십·휴가·TV 프로그램과 같은 것들이다.

 

수영이나 자전거 타기와는 달리 수다 떠는 법을 특별히 따로 배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회학의 한 분야로 1960년대에 부상한 대화분석(conversation analysis)에 따르면 실제 방대한 분량의 대화를 축적해 분석해보니 대화는 무질서가 아니라 고도의 구조가 지배하는 세계였다. 사람들은 한 명씩 이야기하라’ ‘남의 말 끊지 말라’ ‘말 너무 많이 하지 말라’ ‘누가 질문하면 대답하라와 같은 규칙들을 잘 지키며 규칙이 깨지면 정상으로 회귀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게 밝혀졌다.

 

규칙은 잘 지켜지지만 문제는 무엇을 수다에 담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보다 말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국인들도 스몰토크 때문에 고민한다. 게다가 이들은 침묵을 우리보다 더 불편하게 생각한다.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선 커뮤니케이션 관리 컨설턴트’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와 같은 직함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4분 이상 말하지 말라와 같은 조언을 한다.

 

미국식 수다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을 독점하지 않고 번갈아 가며 이야기하는 것이다. 가능하면 상대편이 말을 더 많이 하는 게 좋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말하기보다는 듣기가 좋다고 대화의 달인(conversationalist)’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이 말하게 만들 것인가.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 좋은 질문을 하는 것이다. 사람 이름과 얼굴을 잘 기억하는 것으로 유명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수다와 가십의 달인으로도 명성이 높다. 그는 간단한 질문 몇 가지로 상대편을 우주의 중심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디즈레일리와 같은 재주다. 대화 전문가들에 따르면 예·아니오로 대답할 수 없는, 3~4개의 개방형 질문을 평소에 준비하는 게 좋다.

 

현대는 금기가 사라지고 가능한 한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대다. 수다의 세계에서도 금기가 사라지고 있다. 보통 종교·정치·섹스·돈 이야기를 수다거리로 삼지 말라는 권고도 있지만 터부는 이미 허물어졌다.

 

가십(gossip), 남 말하기도 마찬가지다. 미국 경영학자들은 가십이 개인이나 조직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심지어 옥스퍼드대 인류학자 로빈 던바는 언어가 발달한 이유는 가십을 하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했다. 150명 정도로 구성된 무리의 결속과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정보의 교환을 위해 가십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가십 중에서도 험담이다. “없는 데서는 나라님 욕도 한다는 속담도 있지만 연구자들에 따르면 가십은 대화의 2분의 1에서 3분의 2가량을 차지하며, 가십 중에서도 험담은 5~30% 정도다. 연구자들은 험담마저도 스트레스 감소, 자긍심 함양, 유대감 증진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수다 중에서도 제일 나쁜험담마저 좋은 구실을 한다면 수다만으로도 언어생활은 충분한가. 그렇지 않다고 행복학 연구자들은 주장한다. 행복하려면 수다로 충분치 않고 내용과 깊이가 있는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다는 깊이 있는 대화의 전 단계다.

 

수다는 모든 관계의 시작이며 우정·비즈니스로 가는 지름길이다. 수다는 예술이다. 그런데 수다는 말하기의 예술이 아니라 듣기의 예술이다. 영국 소설가 레베카 웨스트에 따르면 대화라는 것은 없다. 오직 독백이 있을 뿐이다. 플라톤과 모차르트가 실제로 했던 말들을 짜깁기해도 그럴듯한 대화를 꾸밀 수 있다. 레베카 웨스트의 주장을 극복하는 수다의 완성은 언어적 상호작용의 실현에 있다.

 

김환영<whanyung@joongang.co.kr> | 225| 20110703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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