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생활글

조언(助言)의 때

풍월 사선암 2011. 5. 14. 08:44

 

<배영순 교수의 방하 한생각>조언(助言)의 때 

 

우리가 친구간에도 그리고 부자간에도 조언을 할 때가 있다. 그렇게 하면 안되는데라는 안타까움에서 조언을 하게 된다. 그러나 조언이란 것이 쉬운 게 아니다. 조언을 해서 상대가 잘 받아들이면 좋겠지만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게 되면 조언을 한 사람도 마음이 상하고 상대방도 마음이 상하고 서로의 관계만 상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가령 맞선을 보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사람 됨됨이를 보고 선택하는게 아니라 자신의 출세조건을 중심으로 상대를 고르고 있다고 하자. 그랬을 때, 옆에 있는 친구가 너는 결혼도 비즈니스로 하는 거냐고 따갑게 조언을 했다고 하자.

 

그랬을 때, 당사자는 논리적으로는 납득을 할 것이다. '네 말이 맞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 사람 욕심은 이미 계산적인 것에 기울어 있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는 동의한다 해도 자기 계산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조언의 한계다.

 

더 심할 경우 친구가 '너는 사랑을 사기치는 사기꾼이다'고 했다고 하자. 그러면 당사자는 웃을 것이다. 그러나 웃는다고 웃는게 아니다. 속으로는 자존심 상해할 것이다. 친구라는 놈이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사기꾼'이라고 하다니...그렇게 속으로 원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정직하게 조언을 한 친구는 친구대로 원망을 갖게 된다. 정직하게 조언했는데 말을 들어먹지 않는다고 원망을 갖게된다. 이제 '내 말도 안듣는구나' '이제는 말을 말아야지', 그렇게 되어버린다. 그래서 조언이 어렵다. 조언(助言)이 도와주는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관계를 해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래서 '조언이 조언이 아니다'는 소리가 나온다,

 

친구지간의 조언만 어려운게 아니다. 부자지간에도 그렇다. 자식이 뻔히 옆길로 가는 것을 보면서 조언을 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 조언이 받아들여지기는 참으로 어렵다. 자식이란게 앞에서는 ''라고 하지만 돌아서면 딴 짓을 한다. 마음은 아프지만 어쩔 수 없이 시행착오의 여지를 주고 기댜려야 한다. 스스로의 시행착오를 통해서 조언을 인정하는 시점을 기다려야 한다. 그 시행착오를 막으려고 강제적으로 부모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 하면 그야말로 '교각살우(矯角殺牛)' 가 되어버린다. 뿔을 바로 잡으려다가 소를 죽일 수도 있다. 그래서 조언이란게 이렇게 어렵다. 그러니까 조언이란게 성립하려면 논리적인 타당성만으로 결코 안된다. 상대가 스스로 수용할 수 있는 시점에만 가능하다.

 

그리고 조언을 하는 입장에서 경계해야할 것이 있다. 조언을 했다면 그것으로 끝나야 한다. 그 사람이 받아들이지지 않으면 안타까워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식으로 자존심을 앞세우면 안된다. 그러나 우리들은 '내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에 기분을 상한다. 이점이 문제다. 만약 '내 말을 듣지 않는다'고 기분이 상한다면 그 조언은 그 친구를 위한 조언이 아니라 자기 주장일 뿐이다. 그것은 조언(助言)이 아니다.

 

이점도 하나 더 이야기할 수 있다. 정말 친구가 소중하고 친구가 잘못되는 것이 안타까워서 조언을 하는 사람이라면 조언을 해야햘 때를 안다. 밥을 먹어도 때가 있고 약을 먹어도 때가 있듯이 조언을 할 때를 안다. 그리고 그 때를 기다릴 줄 안다. 그때를 알고 기다릴 줄 안다면 그 자가 정말 친구다. 그 때를 안다는 것, 그만큼 그 사람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배영순(영남대 국사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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