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좋은글

연서(戀書) - 프란체스카

풍월 사선암 2011. 2. 18. 10:36

 

연서(戀書)

 

 

-프란체스카-

 

이 세상에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백사람 있다면

그 중의 한명은 나! 입니다.

 

이 세상에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열사람 있다면

그 중에 한명은 나! 입니다.

 

이 세상에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한사람 밖에 없다면

그 건 바로 나! 입니다.

 

이 세상에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그 건 내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프란체스카(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부인)

<1900. 6. 15 오스트리아 빈~1992. 3. 19 서울>

 

오스트리아의 사업가 루돌프 도너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상업전문학교를 마치고, 스코틀랜드에 유학하여 국제통역과 속기사의 자격을 취득했다.

 

19332월 당시 발간된 서적을 통해 한국을 처음 알게 되었으며, 어머니와 함께 유럽을 여행하던 중 이승만을 만났다. 이후 어머니를 비롯한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1934108일 미국 뉴욕의 클레어몬트 호텔에서 윤병구 목사와 존스 헤인스 목사의 공동 주례로 이승만과 결혼했다. 이 결혼으로 그녀는 한국 독립운동가 및 정치가의 아내로서 굴곡이 많은 길을 걷게 되었다. 이승만의 내조자로서 미국 본토와 하와이 일대에 있는 청소년들의 민족교육과 독립운동에 힘썼으며, 한인기독학원의 교사로서도 큰 공헌을 했다.

 

19458·15해방 뒤에 한국에 왔으며, 정부가 수립되고 이승만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이후 대통령의 부인으로서 검약정신을 몸소 실천하며 조용한 생활을 했다. 1960년 이승만 하야 후 그가 죽을 때까지(1965. 7. 19) 헌신적으로 남편을 돌보아 미국에서 '베스트 와이프'(Best Wife)라는 별칭을 받았다.

 

남편과 사별한 뒤 고향인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돌아가 지내다가 1970516일 환국하여 이화장(서울 종로구 이화동)에서 양아들 이인수 가족과 함께 생활했다. 이화장에서는 다정하고 이해심 많은 한국의 할머니로 살았으며, 한 양산을 30년 동안 사용할 정도로 늘 검소해 일반국민들에게 모범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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