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k Sinatra - My Way
프랭크 시나트라를 떠올리면 자동적으로 함께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원래는 1967년 프랑스의 클로드 프랑소와가 샹송 <평상처럼 Comme D' Habitude>이란 제목으로 만든 노래였는데, 폴 앵카가 즐겨 불렀었다고 한다. 그런데 1968년 프랭크 시나트라가 연예계 은퇴를 준비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위해 이 곡에 영어로 가사를 붙여 프랭크 시나트라에게 선사한 것이다. 이 노래는 1969년 발표 당시엔 싱글 차트 27위에 진입하는 평범한 반응밖에 얻지 못했지만, 그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곡이 되었고, 프랭크 시나트라 자신도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한다. 이 곡을 프랭크 시나트라에게 헌사한 폴 앵카는 <My Way>는 "프랭크가 노래해야만 빛을 발하는 곡"이라고 말하고 있다. 1971년 월 13일 프랭크 시나트라는 L. A의 아만슨 극장에서의 자선공연에 출연한 것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다. 그러나 그는 1973년 11월 그를 위한 TV스페셜에 출연하고, 동명의 앨범 <올 블루 아이즈 이즈 백Ol' Blue Eyes Is Back>을 통해 다시 컴백한다. 그는 이후 다시 은퇴를 선언하지만 1993년에는 그의 가까운 친구들(주로 후배들이지만, 재미있는 것은 평소 진보적인 정치성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U2의 보노가 그와 함께 듀엣에 참가했다는 것이다)과 함께 <듀엣> 앨범을 발표한다. 이 앨범은 3백만장의 판매고를 넘겼고, 이듬해인 1994년엔 <듀엣2>를 제작해서 발표하는데 1995년 그래미상 트래디셔널팝 퍼포먼스 상을 수상한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삶의 흔적을 살펴보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가난한 이탈리아 이민 2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빙 크로스비와 같은 가수가 되길 꿈꾸었던 프랭크 시나트라. 그는 빙 크로스비를 능가하는 가수가 되었고, 영화에도 출연하여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때 그를 버렸던 쇼 비즈니스계를 뒤에서 조정할 수 있을 만한 실력자로 컸다. 그는 정치적으로 리버럴한 입장을 지닌 정치인들을 지원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미국내 우익을 위해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1998년 5월 14일 LA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자신의 유산 중 일부를 학대받는 아동들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하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살아생전에는 미성년자였던 나탈리 우드와 성관계를 갖기도 했다. 그의 마지막 유언은 "I'm losing"이었다고 한다. 프랭크 시나트라가 살았던 20세기는 인류 역사상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은 전쟁과 학살, 혁명과 반동이 일어났던 시대였다. 그런 20세기의 초반부터 후반에 이르는 기간을 살다 간 한 명의 가수로서 그는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후세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때로 그의 삶의 행적에서 성공과 출세를 향한 야심으로 가득한 한 인간의 일그러진 욕정을 읽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그의 노래를 듣지 않는 일, 그의 삶과 질적으로 다른 삶을 살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My Way - ( Frank Sinatra, 1915 - 1998, 미국 ) 이제 끝날 시간이 다가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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