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생활/등산,여행

남한산성 5개 탐방로

풍월 사선암 2010. 2. 19. 09:53

[위크엔드] 경기관광공사가 개발한 남한산성 5개 탐방로

 

역사 담은 성곽 따라 눈 쌓인 솔숲으로…

 

'산성종로'서 다섯 갈래, 왕복 2~4시간 등산 코스… 역사·식생도 제각각

 

경기도 광주·하남·성남시에 걸쳐 있는 남한산성은 역사와 자연을 품고 있는 수도권의 명소 중 명소다. 최근 경기관광공사가 '이야기가 있는 남한산성 길'을 주제로 왕복 2~4시간쯤 걸리는 탐방로 5개를 개발했다. 남한산성 탐방의 중심이 되는 '산성종로', 일명 '산성로터리'에서부터 다섯 방향으로 뻗어나간 탐방로는 역사적 배경도 자연 식생도 제각각이다. 당장은 눈 쌓인 산길을 걷기 힘들어도, 한 번에 하나씩 5개 탐방로를 차례로 돌다 보면 곧 봄이 돌아올 게다.

 

경기관광공사 홈페이지(www.ethankyou.co.kr)나 남한산성도립공원(www.namhansansung.or.kr)을 참조하면 각 코스에 대해 보다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떠나기 전 소설가 김훈의 작품 '남한산성'을 일독해도 좋을 것이다.

 

◆역사와 함께 소요하는 '생명의 길'

경기관광공사가 추천하는 첫 번째 탐방로의 테마는 '역사'와 '자연'이다. 산성종로를 떠나 침괘정~영월정~취성암~어정~성곽~청량당~수어장대~무망루~이승만 대통령 기념식수를 거쳐 매바위까지 다녀오는 2.5㎞ 코스로, 꼬박 2시간 걸린다.

 

남한산성 성곽을 따라 펼쳐진 설경(雪景)이 눈부시다. 산성에 오르면 고난의 역사와 자연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남한산성 여행의 출발점인 '산성종로'는 옛날 종각(鐘閣)이 있어서 종로로 불렸다. 남문에서 북문으로, 동문에서 행궁으로 이어지는 길이 모두 이곳을 지난다. 여기서부터 이어지는 침괘정(枕戈亭), 청량당(淸凉堂), 수어장대(守禦將臺)는 각각 경기도 유형문화재 5·3·1호로 조선 인조에서 영조로 이어지는 역사를 담고 있다. '창을 베개로 삼는다'는 뜻을 지닌 침괘정은 본래 '침과정'이라 불렸으며, 조선시대 무기 제작을 관장했던 곳이다. 청량당은 인조 때 남한산성 동남쪽 축성을 맡았던 이회 장군과 부인을 모신 사당이며, 수어장대는 산성의 관측과 군사 지휘를 위해 세운 누각이다.

 

자연을 가장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구간은 침괘정에서 수어장대 가는 길목에 있다. 수령 100년이 넘은 소나무가 즐비한 울창한 솔숲을 걷노라면 은은한 솔향이 코끝을 간지럽게 한다. 영월정(迎月亭)에 서면 임금이 길을 떠나 머무르던 행궁(行宮)터가 한눈에 들어오고, '앉아만 있어도 술이 깬다'는 취성암(醉醒岩) 부근 공기도 제법 청량하다.

 

◆행궁과 함께하는 '법도의 길'

두 번째 탐방로의 핵심은 '행궁'이다. 산성종로를 떠나 행궁을 돌아보고, 숭렬전(崇烈殿)에 올랐다가 영월정을 지나 내려오는 1.7㎞ 코스로 2시간 남짓 걸린다.

 

남한산성의 행궁은 보통 '남한행궁' '광주행궁'이라 했다. 두 번째 탐방로를 따라가면 남한행궁을 한남루~외삼문~중문~하궐 외행전~일장각~통일신라 군창지~내삼문~상궐 내행전~재덕당~남행각~북행각~좌승당~이위정~좌전 순서로 꼼꼼히 살펴볼 수 있다.

 

행궁과 함께하는‘법도의 길’에 있는 숭렬전. 백제 시조 온조왕과 남한산성 축성의 총책임자였던 이서 장군을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행궁 하궐·상궐을 다 보고 나면 숭렬전으로 향하게 되는데, 이곳은 남한산성 축성 책임자였던 이서 장군과 백제 시조 온조왕을 함께 모시는 사당이다. 인조 임금이 남한산성에서 청나라와 맞서 싸울 때 온조왕이 나타나는 꿈을 두번 꾼 뒤 남한산성 축성의 총책임자였던 이서 장군이 숨지자 '온조왕이 그를 시종 삼아 데려갔구나' 하고 생각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기억과 함께하는 '반추의 길'

남한산성은 1636년 발발한 병자호란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곳이다. 산성종로에서 연무관~현절사~동장대지~제3암문~봉암성~동림사터~벌봉을 돌아오는 세 번째 탐방로 4.1㎞는 그 병자호란을 되새기며 걸어보는 길이다. 3시간 이상 걸린다.

 

남한산성 축성과 나란히 세워진 연무관(演武館)은 무술 연마를 하던 군사 훈련장이다. 현절사(顯節祠)는 병자호란 때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버티다가 청나라에 끌려가 숨진 윤집·오달제·홍익한의 영혼을 위로하려고 세운 사당이다.

 

동장대 옛터와 벌봉 주변은 모두 병자호란 당시 치열한 전투가 치러진 현장이었다. 우거진 활엽수림으로만 남은 일대 풍경을 감상하며 옛일을 떠올리면 사람의 역사가 무상하기 그지없다.

 

◆성곽과 함께하는 '의지의 길'

네 번째 탐방로에선 산성의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역사 지식으로 무장한 사람의 눈엔 인조·숙종·영조·정조시대를 거치며 변하는 성곽 기술도 눈에 띈다. 산성종로를 떠나 남문~영춘정~제6암문~수어장대~병암 남성 신수기비~서문~연주봉 옹성~제5암문~북장대지~북문을 거쳐 4.3㎞를 돌아보는 데 3시간 남짓 걸린다.

 

'지화문'(至和門)이란 편액이 붙은 남문 근처는 탐방객이 몰려 늘 북적인다. 병자호란을 맞아 남한행궁으로 거처를 옮길 때 인조도 이 문을 통해 남한산성에 들었다고 한다. 암문을 지나 다다르는 연주봉 옹성은 구조가 독특해 남한산성 성곽의 꽃이라 할 만하다. 여기서 소나무 우거진 노송지대를 거쳐 북문까지 오면 된다.

 

◆산성 따라가는 '옹성 미학의 길'

마지막 다섯 번째 탐방로는 남문에서 동문을 향해 갔다 산성종로로 돌아오는 3.5㎞ 구간이다. 남문~제1남옹성~제2남옹성~제3남옹성~수구문~동문~지수당~남한산성 역사관~해공 신익희 동상을 통과하는 데 4시간쯤 걸린다. 남한산성에는 모두 5개 옹성이 있는데 그중 제2남옹성이 가장 크고, 제3남옹성이 가장 작다.

 

'좌익문'(左翊門)이라 이름 붙었던 동문은 남문과 함께 남한산성 사대문 가운데 사용 빈도가 가장 높은 축이었다. 1801년(순조 1년) 천주교도 약 100여명이 처형된 신유박해가 터졌을 당시, 남한산성 동문 밖이 처형장으로 쓰였다고 한다. 동문 밖 도로 주변에는 벚나무가 많아, 봄이면 흐드러진 벚꽃이 장관을 이룬다.

 

조선일보 김진명 기자 / 입력 : 2010.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