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생활/건강,의학

우리 몸에 부족한, 지덕체(知德體)

풍월 사선암 2009. 11. 28. 18:06

 

 

 

 

오래 못 살까 봐, 건강을 잃을까 봐 불안한 당신. 하이에나처럼 정보를 찾아 헤매지만 어쩌면 ‘모르는 게 약’일 수 있다. 기본 베이스만 깔려 있으면 세상 살기 어렵지 않다. 우리가 집착하는 건강 상식들이 정말 합리적일까? 햇빛이 차단되는 깊은 숲에 사는 동물들은 모두 비타민 D가 부족해 구루병에 걸려 있나? 옛날 사람들은 비타민이나 단백질 따위의 용어들을 전혀 몰랐어도 ‘가난’하거나 ‘흉작’이 아니면 적당한 영양 상태를 유지했다. 결국 아는 것이 많거나 지식을 탐닉한다고 똑똑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여기서 똑똑하다는 건 자신의 마음을 읽을 줄 알고, 필요한 기본 요소를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실천하며, 세상이 주입하는 정보대란에 휩쓸리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뿐이랴, 전문가들의 극성스러움과 위협적인 잘난 척 및 지식 과시도 우리를 괴롭힌다. 그들의 태도는 한결 같다. ‘이건 해서는 안 돼. 왜냐하면 큰일 나거든. 하지만 넌 이미 이것에 중독되어 탈출하기 어려울걸? 그건 정말 중독성이 강하거든’ 식이다. 예를 들면 니코틴 중독이나 금단 증상에 대해 너무 친절하게 설명해주어 자연스럽게 금연이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차라리 ‘담배를 너무 많이 피웠더니 냄새가 심해. 더 이상 피우지 말아야겠다. 난 담배를 끊을 수 있어. 그건 정말 쉬운 일이야’라고 생각해야 훨씬 의욕적으로 금연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너무 많은 지식의 주입은 우리를 그냥 포기하게 만든다. 우리가 필요한 건 감정적인 똑똑함이다. 마음의 자각은 몸을 회복시킨다. 내면으로부터 건강이 시작되면 몸도 따라오게 되어있다.

 

 

 

‘착한 몸’을 가지려면 이기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자연에 순응하라는 의미다. 혹자는 어째서 이기적인 것이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냐고 반문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는 자신을 가장 먼저 생각하여 행동하지 않으면 자연스러운 건강과는 아주 무관한 생활을 하게 된다. 다음의 예를 참고하라.


“9년 전 병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뒤 귀농했어요. 자연 그대로가 좋아서 제초제, 농약, 비료는 이름도 모르고 살며 유기농으로 농사지으며 자연식을 하고 있지요. 컨디션 괜찮으면 움직이고, 쉬고 싶을 때 쉬는 생활이랄까요? 소싯적엔 날씬했어요. 병원 생활 오래 하고 수술 여러 번 하고, 간경화에 복수까지 차 있어 지금은 몸매가 엉망이네요. 하지만 몸매보다는 살아 있는 것이 감사합니다. 요즘은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장강희(52세)


‘착한 몸’은 결코 네티즌들이 쓰는 의미 변질된 용어처럼 ‘멋진 몸매’가 아니다. ‘자연’스러운 몸을 뜻한다. 왜 자연인가 하니, 인간 역시 자연에 소속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자연은 마주 보고 있는 입장이 결코 아니다. 인간은 자연에 속해 있기 때문에 자연이 돌아가는 과정, 즉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이상 결코 착한 몸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지구가 건강하면 그 안에서 자라나는 작물과 공기와 물을 취하는 사람도 건강할 수 있다는 의미까지 포함된다. ‘사람이 병 안 걸리고 사는 법’이 아니라 ‘지구가 병 안 걸리고 사는 법’을 추구한다면 우리 모두 오래도록 착해질 수 있다.

 

 

 

짐승들은 뻔뻔하다. 배고플 땐 호시탐탐 강렬한 눈빛으로 기회를 노리면서도 배부르면 사슴이 옆을 스쳐 지나가건 말건 거들떠보지도 않는 호랑이, 방금 혼나서 삐쳐 있었지만 주인이 놀아준다고 하면 얼른 꼬리를 흔들며 신나게 점프하는 개…, 평소에는 쿨한 표정으로 거드름을 피우다가 자기가 하고 원할 때만 다가와서 애교부리는 고양이.

이들은 그 무엇보다 자기 내면의 욕구에 귀 기울이고, 그것이 비록 앞뒤가 맞지 않는 뻔뻔한 행동일지라도 거리낌 없이 해버린다. 그래서 인간들이 그들을 괴롭히지 않는 이상 언제나 행복하고 튼실하고 건강하다.

그러나 사람은 배가 부른데도 ‘더 먹어!’라는 윗분의 말씀에 꽁꽁 싸서 입에 넣는다. 너무 기뻐서 떠나가라 웃으며 어깨춤을 추고 싶지만 자제한다. 묻고 싶지만 놀림받을까 봐 질문을 꿀꺽 삼킨다. 체면을 아는 유일한 동물이니까? 사회생활을 해야 하므로? 하고 싶지 않은 걸 억지로 해야 하고, 하고 싶은 걸 못하는 일련의 상황들은 하나하나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스트레스를 받은 육체는 바이러스와 발암물질에 감염되기 쉽고, ‘부러운 몸’과는 점점 멀어진다.

그렇다면 동물처럼 뻔뻔한 사람이 부러운 몸을 갖게 된다는 것인데, 과연 현대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면서 이런 방식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이 가당키나 할까? 쭈뼛쭈뼛하며 과연 할 수 있을지 어색하게 구는 사람은 그들의 먹잇감이다. 시작부터 당당하게, 공격을 받아도 금방 잊으면 가능하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야 진정 내 몸과 마음에 맞는 삶을 살 수 있다. 부러운 몸은 이 생활의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