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생활글

여자는 이런 남편을 원한다.

풍월 사선암 2009. 10. 21. 21:58

 

여자는 이런 남편을 원한다.

 

월급은 많지 않아도 너무 늦지 않게 퇴근 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퇴근길에 동네 슈퍼 야채코너에서 우연히 마주쳐 핫~ 하고 웃으며 저녁거리와 수박 한통을 사들고 집까지 같이 손잡고 걸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 그날 있었던 열 받는 사건이나 신나는 일들부터 오늘 저녁엔 뭘 해 먹을지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말하고 들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들어와서 같이 후다닥 옷 갈아입고 손만 씻고 한사람은 아침에 먹고 난 설겆이를 덜그럭 덜그럭하고 또 한사람은 쌀을 씻고 양파를 까고 배고파 해가며 찌게 간도 보는 싱거운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다 먹고 나선 둘 다 퍼져서 서로 설겆이를 미루며 왜 네가 오늘은 설겆이를 해야 하는지 서로 따지다가 결판이 안 나면 가위 바위 보로 가끔은 일부러 그러나 내가 모르게 져주는 너그러운 남자였으면 좋겠다.


주말 저녁이면 늦게까지 TV채널 싸움을 하다가 오밤중에 반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약간은 서늘한 밤바람을 맞으며 같이 비디오 빌리러 가다가 포장마차를 발견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뛰어가 떡볶이에 오뎅 국물을 후룩후룩 너 더 먹어 나 배불러 해가며 게걸스레 먹고 나서는 비디오 빌리러 나온 것도 잊어버린 채 도로 집으로 들어가는 가끔은 나처럼 단순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어떤 땐 귀찮게 부지런하기도 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일요일 아침 아침잠에 쥐약인 나를 깨워 반바지 입혀서 눈도 안 떠지는 나를 끌고 공원으로 조깅하러가는 자상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오는 길에 베스킨라빈스에 들러 피스타치오 아몬드나 체리 쥬빌레나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콘을 두개 사들고 두 개 중에 너 뭐 먹을래? 묻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약간은 구식이거나 촌스러워도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어머님의 아들이었으면 좋겠다.

 

가끔 친엄마한테 하듯 농담도 하고 장난쳐도 버릇없다 안하시고 당신 아들 때문에 속상해하면 흉을 봐도 맞장구치며 들어주는 그런 시원시원한 어머니를 가진 사람, 피붙이같이 느껴져 내가 살갑게 정 붙일 수 있는 그런 어머니를 가진 사람, 나처럼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를 닮은 듯 나를 닮고 날 닮은 듯 그를 닮은 아이를 같이 기다리고픈 그럼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아이의 의견을 끝까지 참고 들어주는 인내심 많은 아빠가 될수 있는 사람이었음 좋겠다.


어른이 보기엔 분명 잘못된 선택이어도 미리 단정 지어 말하기보다 아이가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 줄 수 있는 사람 가끔씩 약해지기도 하는 사람이었음 좋겠다.

 

아이들이 잠든 새벽 아내와 둘이 동네 포장마차에서 꼼장어에 소주 따라놓고 앉아 아직껏 품고 있는 자기의 꿈 얘기라든지 그리움 담긴 어릴 적 이야기라든지 십몇 년을 같이 살면서도 몰랐던 저 깊이 묻어두었던 이야기들을 이젠 눈가에 주름 잡힌 아내와 두런두런 나누는 그런 소박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던져버리지 않는 고지식한 사람이었음 좋겠다.


무리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지켜나가는 사람, 술자리가 이어지면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할 줄 아는 사람, 내가 그의 아내임을 의식하며 살듯 그도 나의 남편임을 항상 마음에 새기며 사는 사람, 내가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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