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전 독일인의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
"한국에 대한 할아버지의 애정이 이제야 빛을 보는 것 같아 기쁩니다." 독일인 슈테판 잔더(63) 씨는 14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국립민속박물관에 전시된 100년 전 한국의 풍경을 담은 사진 들을 보면서 감개무량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13일 개막한 '독일인 헤르만 잔더의 여행' 사진전은 슈테판 씨가 2년 전 민속박물관에 기증한 할아버지 헤르만 구스타프 테오도르 잔더(1868∼1945)의 한국 관련 유품을 바탕으로 마련된 것. 일본 주재 독일대사관 무관이었던 헤르만 잔더는 1906년과 1907년 한국을 여행하면서 서울 부산은 물론 오지인 함경북도 성진과 길주를 여행하며 당시 풍속과 일상을 담은 사진을 찍고 풍속화를 모았다. 이번 전시회에는 그가 기증한 378점 가운데 168장의 사진과 엽서, 친지에게 보낸 편지 등 300여 점이 공개되고 있다 한다.
▲ 무악제 헤르만 잔더가 1907년 9월 무악재를 넘다가 찍은 사진. 멀리 북한산이 보인다.
▲ 뎐당국(전당포)과 노점 전당포 이자는 무려'월 5 퍼센트' 노점의 남자는 갓을 고치고 있다 / 1907년 3월
▲ 함경북도 길주 지역의 '도쿄관'이라는 여관의 일하는 여성들 그는 성진과 길주지역 조사를 위해 1906년9월16일에서 24일까지 이곳에 묵었다.
▲ 생동 마을의 우마차 성진에서 길주로 가는 여정에 들렸던 생동마을. 1906년 9월
▲ 경부선 안양역의 잔더씨 경부선 열차를 타고 안양역에서 정차 했을 때 촬영한 사진. 1906년 9월.
▲ 세종로의 당시 모습, 경복궁 광화문 앞거리 1907년 3월 자료 조사를 위해 한국에 왔을 때 촬영한 광화문 거리.
▲ 부산항 1906년 9월 10일 배편으로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당시의 부산항 전경.
▲ 남경세 헤르만 산더는 함북 성진에서 손에 상처가 난 남자를 치료해 줬다. 그 남자의 이름은 남경세. 1906년 9월 24일
▲ 추수한 곡식 성진 지역에서 재배하던 조와 수수의 길이를 재고 있는 모습. 1906년 9월
▲ 장승 곁에서 함경북도 성진에서 길주로 가는 도중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장승을 조사하고 있는 모습. 1906년 9월
▲ 성진에서 길주로 가는 길에…1906년 9월. 성진에서 길주로의 여정을 함께 했던 사람들. 출발 전 모습. 왼쪽부터 짐 나르는 말, 헤르만 산더, 통역인, 타고 갈 말과 작은 한국인들.
◀ 할아버지의 뜻을 살리려 한국에서 전시회를 여는 슈테판 씨. “할아버지는 1906년 첫 방문 때 한국과 한국인에게 흠뻑 빠졌던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가 독일에 보낸 편지를 보면 ‘한국인의 삶과 감정은 물론 일본 통치 아래에서 겪는 고통 등을 제대로 담은 책을 쓰고 싶다’고 적혀 있습니다.” 헤르만 잔더는 이듬해 개인 자격으로 한국을 찾아 상당한 양의 궁중 의상을 비롯해 다양한 민속자료를 모았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그 자료로 한국 박물관을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으로 대부분이 소실돼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이제야 일부나마 빛을 보게 돼 다행입니다.” <solbrightkim님이 보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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