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양식/정보,상식

전공의 지원에 대한 현실적 고민

풍월 사선암 2008. 11. 28. 22:27

 

전공의 지원에 대한 현실적 고민

 

어디서 인턴을 할 것이냐는 전혀 고민이 되지 않는데 - 전 모교가 좋습니다 - 무슨 과를 할 것이냐는 늘 마음속에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여태껏 살면서 내 마음에 드는 무엇 하나는 항상 있었고 그래서 선택의 어려움을 겪지 않았는데 지금은 상황이 사뭇 다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전공과 나의 성적과 선발인원과 이러저러한 외부 요인들이 어우러져서 결정되는 것이다 보니.. 


그래도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과를 몇가지 생각해 두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겠지요. 어디가 좋을까요. 아니, 어떤 기준으로 결정을 해야 할까요.

 

교수님들도, 전공의 선생님들도, 파견 나간 병원의 원장님들도 대부분은 같은 의견을 내놓습니다. 할 수 있으면 환자 많이 보지 않아도 돈 잘 벌고, 의료 분쟁 없는 과로 하는게 좋다고. 하지만 다 그런 과를 할 수는 없으니 자기 적성에 맞고, 자기가 제일 하고 싶은 과로 정하면 된다고.


그 간단한 원칙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떼돈을 벌고 싶은 것도 아니고, 그저 부족하지 않게 살 정도면 만족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아닐까요. 고생해서 공부하고 수련하다 보면 돈과 여유로움에 대한 욕심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일까요.


성적이 좋은 인턴들의 지원 성향을 보면 소위 잘 나간다는 과가 어디인지 알 수 있습니다. 내과는 개업하기에 가장 무난한 과라서 그런지 예나 지금이나 꾸준히 인기가 있고, 안과, 피부과 같은 미용 의료가 뒤를 잇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재활의학이 급부상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반면 일반외과나 극한 직업으로 소개되기도 했던 흉부외과는 지원자가 턱없이 모자랍니다. 산부인과도 마찬가지구요. 학교 분위기에 따라 신경과 지원자가 많은 경우도 있지만 절대적 인기과와는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지원자가 몰리는 과는 한없이 몰리고, 미달인 과는 반도 채우지 못하고 심지어 지원자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도표를 보고 있자면 갈등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과'와 '사람들이 선호하는 과'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인기가 없는 과에서는 도대체 얼마나 힘들게 일을 하길래, 보수가 얼마나 형편 없길래 저렇게 나락을 향해 치닫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과별 진료비 평균 수입이 두배나 차이나는 현실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고 해도 될까요.

2008년도 레지던트 전기 지원 현황


혼자서는 해답을 찾을 수 없어서 얼마전 가정의학과의원에 파견 실습을 갔을 때 원장님께 여쭈었습니다.


'어떤 전공을 하느냐에 따라 수익 차이가 크겠지만 힘들다는 과를 하게 되면 도대체 얼마나 힘이 들길래 저마다 꺼리는 것이냐'는 질문에 선생님은 '돈에 대한 욕심이 크지 않다면 자기가 하고 싶은 전공으로 하는게 제일 좋다. 잘 버는 과와 비슷한 돈을 벌려면 몇 배 더 많은 환자를 봐야겠지만 하고 싶은 일이면 일이 많아도 덜 힘들지 않겠느냐. 사실 돈에 대한 욕심을 좀 줄이면 가장 좋고..' 라는 답을 주셨습니다. 


얘기를 가만히 듣자니 나중에 정말 다른 과에 대한 흥미를 더 찾을 수 없다면 소아과를 해도 좋겠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나마 마음속에 남는 과가 있다면 작년 임상과목 수업을 하는 동안에도 가장 흥미가 있었고, 올해 실습을 하는 동안에도 꽤 만족스러웠던 소아과니까요. 여러 외과 파트는 실습은 재미있었지만 '평생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여겨지지는 않았습니다. 내과 파트는 그냥 '그럭저럭' 정도라고 할 수 있구요.


어느새 병원 소아과뿐만 아니라 동기들 사이에서도 '소아과 지원자'로 소문이 나버렸고, 우연히 교수님을 뵙게 되면 '김선생은 소아과 지원이지?' 하면서 자꾸 상기시켜 주십니다. 나중에 고민할 겨를도 없이 소아과에 발목을 잡힐지도 모를 일이라며 걱정을 하기도 했는데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용기가 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소아과를 생각 중입니다'라고 이야기 하려는 순간 이어지는 선생님의 마지막 말씀.


 "... 산부인과, 소아과는 빼고."

 

< 퍼온 글 >